아름다운 선과 색으로 우리 고유의 정갈한 멋을 지닌 한복.
옛 여인들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배가시켜주던 장식품이 있었으니 바로 조상들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노리개다. 색 고운 한복 위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 허리에 달려 맵시를
더해주는 노리개는 금은과 다채로운 보석들에 명주실을 늘어뜨려 예로부터 궁중은
물론 상류사회와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던 장신구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 시대 귀부인들이 허리띠에 금탁(金鐸)이나 금향낭(錦香囊)을
찼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 후기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자 허리띠에만 차던 것을 옷고름에도
찼다고 전해지며 그 후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 옷고름에 달아 장식했다.
노리개는 그 개수에 따라 단작(單作)과 삼작(三作)으로 나뉜다.
단작노리개는 삼작노리개 중 1개를 따로 달거나, 처음부터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노리개를 말하고,
삼작노리개는 3개의 노리개를 한 벌로 꾸민 것으로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으로 구분된다.
삼작노리개 중 가장 호화롭고 큰 대삼작노리개는 주로 궁중에서 사용하였고 중삼작노리개는
궁중과 상류 계급에서, 소삼작노리개는 젊은 부녀자나 어린이들이 주로 사용하며 한복 위를 치장했다.
주로 국가의 궁중 의식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는 특별한 날 노리개를 달아 한복 위를 장식했고,
간단한 것은 평상시에 달기도 했다. 노리개를 장식하는 패물은 진귀함과 규모에 따라 예복용과
평복용으로 구분된다.
대례복에 차는 대삼작노리개에는 손바닥 크기가 넘는 산호가지와 백옥나비 위 구슬을 배열하여
금속 세공을 한 나비 한 쌍과 밀화불수를 달아 진귀한 조형미를 보여주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것을 궁중에서는 철에 따라 음력 5월 단오절부터는 백옥이나 비취로 된 외줄노리개를 달고,
음력 8월 추석부터는 삼작노리개를 달았다고 전해진다.
가례나 탄신일 등 특별한 축의가 있는 날에는 왕비를 비롯하여 귀부인들까지 삼작노리개를 달았으며,
평상시에도 왕비가 대비전에 문후를 드릴 때는 금박 스란치마에 당의를 입고 삼작노리개를 달았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주로 은삼작을 달았는데, 혼례 때 사용한 후 백지에 싸고 비단보에 싸서 보물 상자에
간직해두었다가 친척의 혼례 때 꺼내 썼다고 한다. 방아다리나 투호, 박쥐, 나비, 호리병 등의 모양으로
은 세공한 장식을 달아 노리개의 멋을 살렸다.
단지 멋을 위한 것을 떠나 실용성과 부덕을 나타내주는 것들도 있었으니….
사향을 넣어 몸에 지니고 은근한 향기를 풍기던 향갑, 바늘을 손쉽게 찾기 위한 금속 바늘집 침낭,
규방 부녀자의 호신용을 겸했던 장도 등을 얘기할 수 있다.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식이기도 했지만, 정신적인 배경으로는
부귀다남, 불로장생, 백사여의 등 시대적인 행복관을 바탕으로 한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또한 양반 계급에서는 집안에 전래하는 노리개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 가풍을 전하기도 하였으니
당시 노리개의 귀함을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