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하고도 일곱 해를 넘긴 내가 이용하는 골동품이 우리 집 작은 방에 떡하니 잘 모셔져 있다. 바로 ‘파아노’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왼손을 잘 쓰지 않는다. 더욱이 학창 시절에 사고로 왼쪽 팔다리에 마비가 되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라도 왼손을 많이 써줘야만 한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그다지 쉽지 않다. 그래서 왼손을 쓸 수 있는 게 뭘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피아노를 치면 되겠구나 싶다.
손가락 운동도 할 겸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요&가곡 반주집’을 사서 연습한다. 피아노만 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꼭 피아노 연습하는 티를 내는 나이다. 그래서 노래를 불러가며 쳐댄다. 나는 즐겁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라이브(live)로 내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는 미안하기 짝이 없다. 잘 불러도 딸이고, 못 불러도 딸인데, 어찌 할 도리는 없으리라. 사실 어머니는 목소리가 아주 고와서 노래를 참 잘 한다. 성당에 같이 가서 성가를 부를 때면 고음의 노래도 멋지게 소프라노로 잘 이끌어 낸다. 그럴 때마다 딸인 나는 ‘이런 좋은 거는 꼭 안 닮더라!’ 하며 푸념하곤 한다. 이런다고 다시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알지만, 그런 엄니의 멋진 점을 닮지 못한 딸로서는 못내 억울하다.
나도 작년까지만 해도 고음도 잘 올라가고 사람들이 곧잘 노래를 잘 부른다고 했었는데, 올해는 내가 생각해도 영 아니다 싶다.
‘피아노 치기’는 오른손은 잘 되는데, 마비되었던 왼손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도를 쳐야 함은 알고 있는데, 레나 미를 치고 있고 그러니 당연히 음이 곱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거나 말거나 노래는 내가 친 대로 이어간다. 이럴 땐 혼자 치고 노래하니 천만다행이라고 한숨도 곁들인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쬐금이지만 더 낫고 내일은 또 오늘보다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하나 붙들고 쳐댄다. 우리는 늘 ‘나는 누구보다 뭐를 더 못하니까 내 삶이 늘 이렇지 뭐!’하며 남과 비교하며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는가. 그게 아니다. ‘내가 어제보다는 오늘 더 낫잖아. 이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희망이고 기쁨이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복한 삶이고 나의 존재 자체가 기쁨 아닐까.
왼손이 마비되기 전의 나는 피아노에 있어선 시에서는 엄지척일 정도로 잘 쳤고 좋아했다. 지금 와 돌이켜보건대, 내 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복이 많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작지만 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거였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첫 번째 곡은 양희은이 부르는 ‘아름다운 것들’이다.
♬아름다운 것들♬
꽃잎 끝에 달려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할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만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이젠 가곡을 한 곡 치며 내 목을 좀 가다듬어 볼까? 30여 년 앞서 피아노 학원에 다닐 적에 성악도 하신 피아노 선생님이 늘 즐겨 불러서 듣고 알게 된 ‘님이 오시는지’이다.
♬님이 오시는지♬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마음 외로워 한 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녘을 지나
달빛 먼길 내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베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며 님이 오시는가
내 마음 떨리어 끝없이 헤매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바람이 이네
특별히 이 노래를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것은 피아노 학원에서 연말 잔치 때 선생님의 독창 무대 곡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뒤늦게라도 피아노를 치면서 손가락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인 나보다 더 열의를 보인 공로자가 있다. 그의 열의가 어느 정도인지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손가락 운동을 해주는 것이 마비된 손을 풀어주는 데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병원에서 떨어진 피아노 학원을 수소문하여 찾아내어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날마다 데리고 다녔다. 바로 ‘어머니’다. 당시에 병원에 물리치료실에서는 나의 어머니는 이미 ‘팥쥐엄마’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첫날에 치료사가 치료하는 걸 딱 보고는 치료 외의 시간에 내 옆에 딱 서서 더 혹독하게 피도 눈물도 없이 훈련시키곤 하셨다. 당시에는 피아노 학원에 매일 가는 것도 가기 싫어서 이틀 가고 다리가 아프다느니, 머리가 아프다느니 하며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땡땡이쳤었다. 내가 가기 싫어서 그러는 줄 뻔히 다 알면서도 휠체어를 밀어준 어머니, 학교에 못가는 딸이 안쓰러워 자존심까지 지켜주신 가장 가슴 찡한 돈, 어머니(어money).
요즘도 피아노 연습을 건너뛰면 잔소리를 하신다.
“지민이 니 요새는 또 왜 띵가띵가 안 치노?”
하고 압력을 넣지만 그 말이 그다지 싫지는 않다.
아직까지도 ‘도’를 ‘레’나 ‘미’로 치는 서툰 나이지만 어머니(어money)의 남다른 딸사랑과 애꿎은 잔소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어머니! 진짜 진짜 사랑합니데잉^^^^^^”
더 힘을 ‘콕’ 주어 강조한다.
“Really, 정말이거등예!”
이래도 이젠 어머니는 들은 체도 않는다.
‘니는 딸도 아니야!’라며, 내가 죽도록 미워 미워 죽겠다고 하는데, 농담 아니고 진짜면 나는 우짜노!
첫댓글 축구는 지고 있어 속이 상하지만
예쁜 글로 마음을 달래 봅니다.
"이지민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이지민 화이팅~!"
감사합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용!!
개명을권유:빈마음=>찬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