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주 금요일 부산출장 마지막 미팅이 취소되어, 동백섬과 해운대 바닷가를 천천히 둘러 보았다. 흐린 날씨이나, 공기가 이제는 완연한 봄임을 느낄수 있었다.
느즈막히 아침식사하고 호텔을 나선다. 남동 쪽 제일 아래 부산 동네에서 서울까지 차로 5시간 30분. 주유한번 하고 쉼없이 달린다. 집에 도착하여 업무정리하고, 아내와 늦은 저녁을 먹고, 오지 갈 준비를 한다. 3박 4일 출장 후 바로 오지 무박을 간다고 하면, 다들 제정신이냐고 핀잔을 줄법도 하다. 하지만 좋으니 간다.
오지버스 타고 자고 또 자고, 어느덧 버스는 새벽 4시 들머리에 도착한다. 오늘 비가 예정이되어 있어, 모두들 준비를 단단히 한다. 어제 따뜻한 남쪽으로 부터 온 나는, 봄 등산복을 입고, 스패츠없이 산행을 시작한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고, 걱정하던 팀원들은 산행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겉 옷을 벗는다. 계절이 바뀔 무렵에, 적당한 등산복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성가신 일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약간 보수적으로 그리고 배낭무게 인색하지 않게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다.
고기리에서 새벽 4시 30분 시작한 산행은 쭉쭉 올라, 어느덧 고기봉에 다다른다. 왼쪽 능선이 서서희 붉게 물든다. 봉우리에 머저 오른 팀원들이 일제히 해가 뜬다고 소리친다. 거친 숨 쉬며 가까스러 봉우리에 오르니, 이제 막 해가 솟는다.
이 해뜨는 시각에 오지 공주인 하늘비님이 칠레에 있는 친구로 부터 생일축하 문자를 받았다. 깜빡 잊고 있던 본인의 음력생일을 남미 저 먼곳에 있는 친구가 일깨워 준다. 신난 공주는 해맑은 얼굴로 오늘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줄 것을, 아래것들에게 명령한다. "공주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ㅎㅎ
고도를 올릴 수록 응달 사면 눈의 깊이가 상당하다. 내렸던 눈은 녹고 다시 얼고를 반복하여, 표면은 단단하고 아래는 푹신하여, 한걸음 옮길 때마다 다리가 빠른 속도로 푹푹 빠진다. 부드러운 눈을 밟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산행이다. 그리고 훨씬 힘들다. 오늘 구간은 눈의 깊이도 상당하여, 한번 빠지면 무릎러쎌을 하든 누워서 다리 뺀 후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야 했다.
고리봉 부터 세걸산 구간은 깊은 눈으로 인해, 산행속도가 거의 나지 않았다. 지난주 산정무한님을 대표 러셀 주자로 잘 써먹은 기억으로, 오늘은 오랜만에 나온 수담님을 대표 러셀 주자로 앞세운다. 오지의 아랑드롱이신 수담님은 입담도 최고이지만 팀을 위해 팍팍 티나게 열심히 하는 재주꾼이다. 오늘 힘든 러셀을 책임지고 깊은 눈속 더덕전투를 승리를 이끈 무적 707 사나이.
세걸산에 이른 시간이 12시 30분이다. 나도 그렇겠지만, 다른 팀원들도 쿵 쿵 빠지는 충격러셀에 어지간히 힘든 모양이다. 난 이미 마음속으로 바래봉은 포기했었지만, 다른 팀원들이 말을 먼저 꺼내 주길 간절히 기다리고있었다.
세걸산을 지나니 날씨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깊은 눈 산행에 심리적으로 타격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스패츠 없는 나는 벌써 등산화에서 찬물이 올라오고 딱딱한 눈과 지속적인 충격으로 인해 정강이도 얼얼하다. 계속 신경쓰이는 왼쪽 무릎은 따뜻한 부산에서는 전혀 통증이 없었는데, 산행 내도록 잔 통증올라와 무척 신경이 쓰인다.
내리는 비와 습기로 다져진 딱딱한 눈을 헤치는 수고로움으로, 팀원들은 지칠대로 지쳐간다. 대간거사님은 흔쾌히 바래봉을 양보하여 팔랑재 하산을 결정한다. 다행이다. 다행이지만 팔랑재도 아직 한참이다.
열심히 팔랑재를 향하여 산행을 지속했으나, 비오는 날씨에 해는 어둑해지고, 1121봉에 다다라서는 몸도 마음도 그만갈 것을 종용한다. 먼저 뱀사골 방향으로 질주한 신가이버대장님을 돌려 세우기 위해, 잠시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 한다.
비가 오니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나름 정리하고 싶었다. 11월에 내리면 겨울비라고들 한다. 3월에 내리면 봄비라고들 하겠지? 하지만 눈 덮인 산에서 내리는 3월 1일의 비는 무엇으로 정의할까? 일보님이 잘 정리해 주신다. "봄을 부르는 겨울비" 대간거사님의 봄비 김추자/박인수 노래를 듣고. 이은하의 봄비도 흥얼거리며.....
긴 산행 끝내고, 오지버스 기다린다. 산정무한님께 실례한 축축한 담배한개피로 즐겁고 또 고단했던 오늘 산행을 잠시 돌아본다. 남원으로 이동하여 지난번 들렀던 흑돼지 맛집 식당에서 힘들게 캔 더덕주와 음식으로 저녁먹고, 조촐한 하늘비님 생일파티로 마무리한다.
첫댓글 썩은 눈이라 진행하기가 퍽 힘들었네요.
그래도 눈 들면 사방 설경이 보기 좋습니다.^^
썩었다고 하지만 푸짐한 지리산의 심설을 맘껏 밟으셨겠군요. 구름 속에 갇힌듯한 지리산과 지리의 하늘이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