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2024.1.1
교우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미사의 제1독서인 민수기가 전하는 대로,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가부장으로서 자손들을 축복해 주었는데, 이 축복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을 전해주는 전달 행위였습니다(민수 6,23-27).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실 수 있는 주님으로서 온 세상 만물을 지어내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내리신 가장 큰 축복은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일입니다. 이미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을 이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일이 그렇게도 큰 축복입니다(갈라 4,4-5). 이 아드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천사들은 목동들을 통하여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내리실 축복의 내용을 이렇게 전해주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그러므로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말씀의 흐름은 이렇게 간추릴 수 있습니다. 축복은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가부장들의 말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던 그 축복이 드디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으니, 이것이 강생의 신비요 또한 신성이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이 신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열매가 세상과 인류의 평화입니다.
평화는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문명이 발달하여 무기가 발달할수록 전쟁의 피해도 엄청나게 커져갔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전쟁에 직간접으로 끌려 들어가는 바람에 인명 피해도 수천 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 20세기 전쟁을 ‘세계 대전’이라 합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결과로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국제연합을 창설하는 노력으로 나타났지만, 또 다시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에, 교황 요한 23세는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즈음하여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하여 가까스로 평화를 지켜냈습니다. 이를 기념하고 또 지속적으로 평화를 촉구하기 위하여 그 후임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에 직접 국제연합을 방문하여 “무기 없는 평화를 이룩하자!”는 취지로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향하여 연설하였고, 이에 대한 뜨거운 호응을 바탕으로 1968년부터는 평화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기리는 새 해 첫 날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경우에나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키지만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을 치유하는 몫은 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을 존중해야 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영성이 성모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천사들이 전해준 말을 알려 주었을 때, 마리아는 자신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전해준 말을 비롯해서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일어난 일들과,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후에 일어난 일까지 모두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루카 2,19). 이러한 자세는 실제로 일어난 일들 속에 드리워진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려는 태도로서 관상의 영성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관상의 영성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사목헌장, 4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이 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선의의 모든 이들에게 이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 ‘인공 지능과 평화’를 주제로 한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어 “재능과 총명과 온갖 일솜씨”(탈출 35,31)를 채워 주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인간의 지능은, 우리가 창조주께 받은 존엄을 표현합니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 지능의 창조적 잠재력이 빚어낸 빛나는 성과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사회 질서와 형제적 친교와 자유를 증진하는 데에 이바지한다면 인류의 발전과 세상의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 덕분에 인류의 삶을 괴롭히고 커다란 고통을 불러일으켰던 수많은 질병을 치료하였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현실에 대하여 이제껏 없었던 통제력을 행사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손에 방대한 선택권을 쥐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정보 기술 특히 디지털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흥미로운 기회이면서 동시에 중대한 위험을 제기하여 민족들 간의 정의와 화합의 추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정보 기술의 진보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미 국제 사회와 그 다양한 역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도구들은 이제 커뮤니케이션, 공공 행정, 교육, 소비, 개인 상호관계, 그 밖에 우리 일상생활의 수많은 측면의 양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기술은 인터넷을 통하여 퍼진 디지털 흔적(digital footprint)으로부터, 상업적 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정신적 관계적 습관을 좌우하게 하는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알고리즘과 디지털 기술을 설계하는 이들이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가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들을 검토하고 인공 지능의 유형들을 이용하거나 그 영향 아래 놓인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기구를 강화하거나, 필요하다면 설립하여야 합니다.
인공 지능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인공 지능이 제기하는 도전은 기술적이기도 하지만 인간학적, 교육적, 사회적,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공 지능은 데이터 축적과 구조화와 확인 과정의 혁명은 물론 고된 노동에서의 해방, 더욱 효율적인 제작 공정, 더 편리한 수송과 더욱 준비된 시장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는 빠른 변화에 대해서 잘 알고, 기본 인권을 보호하며, 온전한 인간 발전을 증진하는 제도와 법률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변화를 관리하여야 합니다. 인공 지능은 인간이 지닌 최대의 잠재력과 가장 높은 열망에 봉사하는 것이지 인간과 경쟁하여서는 안 됩니다. 인공 지능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왜곡 심화로 이어지는 허위 정보 캠페인에 동원되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 밖에도 이러한 기술이 중대한 위험을 생겨나게 하는 분야로 사생활 보호, 데이터 저작권, 지적 재산권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오용에 따른 또 다른 부정적 영향에는 차별, 선거 개입, 감시 사회의 증대, 디지털 배척, 점점 사회와 유리되는 개인주의의 팽배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요인이 분쟁을 부채질하고 평화를 방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엄청나게 넓고 다양하며 복합적이어서 완전히 파악하고 분류할 수 없습니다. 가장 발전된 알고리즘의 도움으로도 인간 정신의 풍요로움은 결코 완전히 규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보장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통계적 근사치만을 제공할 뿐입니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측량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실재는 생각보다 더 중요합니다.”(‘복음의 기 쁨’, 233항). 우리의 계산 능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계량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은 언제나 존재할 것입니다.
나아가, 인공 지능이 분석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결코 그 자체로 공정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알고리즘이 정보를 추론할 때는 언제나 왜곡의 위험이 따르며 정보가 생겨난 환경이 지닌 불의와 편견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더 빠르고 복잡해질수록 그것이 특정한 결과를 산출하는 이유를 이해하기란 더 어려워집니다.
‘지능형’ 기계는 맡겨진 과제를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만, 그 작동의 목적과 의미는 여전히 고유한 가치 체계를 소유한 인간이 결정하거나 마련할 수 있습니다. 특정 결정들을 내리는 기준들은 명확성이 떨어지고, 그 결정의 책임이 은폐되며, 생산자는 공동체의 선익을 위하여 행동할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는 처음부터 죽을 운명을 타고납니다. 기술을 통하여 모든 한계의 극복을 제안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강박적인 열망 안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위험에 빠집니다. 또한 우리는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면서 ‘기술 독재’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위험에 빠집니다. 피조물로서 우리가 지닌 한계에 대한 인식과 수용은 성취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반기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좀 더 긍정적인 시각에서, 인공 지능이 온전한 인간 발전을 증진하는 데에 사용된다면 이는 농업, 교육, 문화에 중요한 혁신을 가져오고, 모든 나라와 민족의 삶의 수준을 높이며, 인간의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증진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를 활용하여 가장 작은 형제자매들과 취약한 이들,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을 포용하는 길이 인류애의 참된 척도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참으로 인간적인 전망과 바람은 분명 알고리즘의 윤리적 발전을, 곧 가치관이 신기술의 길을 인도하도록 하는 알고리즘 윤리(algor-ethics)를 목표로 하는 학제 간 대화의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연구에서 출발하여 실험, 설계, 생산, 배포,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윤리 문제들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교육 기관과 의사 결정 책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여야 하는 설계의 윤리적 접근법입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발전하는 유형의 행보가 궁극적으로 인류의 형제애와 평화에 기여하는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인공 지능 유형들의 급속한 발전이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불의의 사례들을 늘리지 않고, 전쟁과 갈등을 종식시키며 우리 인류 가족을 괴롭히는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다양한 종교를 따르는 이들, 그리고 선의를 지닌 모든 이가 조화를 이루어 함께 일하여 디지털 혁명이 제기하는 기회는 받아들이고 도전에는 맞서며 미래 세대에게 더욱 위대한 연대와 정의와 평화를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하느님 뜻안에서~
새해!
새날!
온누리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신부님!
말씀의 통공으로 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해에도
주님안에서 건강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복된 나날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
네, 수녀님! 새 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