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8일(토)
* 시작 기도
주님...
그토록 주님을 기쁘시게 하던 솔로몬이 어느 순간 그 마음이 바뀌어 주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조변석개 하는 솔로몬이 있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과 감정을 믿을 수 없사오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나의 의지가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오늘이 어느새 토요일입니다.
정말 한 주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갑니다.
오늘 하루를 주님의 품안에서 주를 향유하는 날 되기 원합니다.
말이 아닌 거룩한 불구자요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나를 도우소서.
주의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일어나오니 날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주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32:1-12
제목 : 인간의 연약한 실존(失存),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g여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400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피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나의 묵상
야곱은 라반과 불가침조약 곧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 모든 가솔들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하여 갔다.
그런데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났다.
그래서 야곱은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다.
그 뜻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야곱의 마음에 항상 걸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형 에서였다.
에서의 분노가 풀렸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가 마침 세일 땅 에돔 들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는 형 에서에게 화친의 의미로 몇몇 종들을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고 일렀다.
주의 종 야곱은 라반과 함께 지금까지 있었는데 거기서 많은 소와 나귀와 양 그리고 노비를 얻었다.
그래서 몇몇 종을 내 주께 보내어 주께 은혜를 받기 원한다고 하라고 일렀다.
그 후에 그 종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보고하였다.
지금 주인의 형 에서가 군사 400명을 이끌고 주인에게 올고 있다는 보고였다.
이에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
그래서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일행과 소유물들을 두 떼로 나누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 떼는 피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나더러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시면서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주께서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내가 전에 요단을 건널 때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두 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산이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 간구합니다. 나를 내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서 네 씨로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더러 이제 이곳을 떠나 네 고향으로 가라고 명하신 후에 야곱은 라반과의 조약 이후에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난다.
그래서 야곱은 그 땅의 이름을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의 ‘마하나임’이라 부른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신다는 가장 분명한 실체를 보여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야곱은 그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의 마하나임이라고 이름까지 짓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일 땅을 지날 때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것이 야곱의 연약함이요 또한 오늘 믿음 없는 우리들의 실존(失存)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가라고 하신 명령을 받아 고향으로 가는 길이고,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겠노라는 말씀도 받았으며 그것의 실체로 하나님의 천사들까지 보여주었는데 야곱은 완전히 쫄아서 겁에 질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종들이 형 에서를 보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향하여 오고 있다는 말에 더욱더 기가 질려서 온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모든 식솔들과 소유물들을 두 떼로 나눠서 한 떼가 에서의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한 떼를 데리고 도망을 가리라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 대책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잊지 않는다.
이런 야곱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를 통하여 나를 보기 때문이다.
영락없는 나의 모습이다.
나는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을 분명히 알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이 그 믿음이 흔들렸던가?
그것은 진실로 그 언약을 믿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나의 믿음은 희미하고 연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날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생명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오직 생명을 주는 영생에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생을 벗어나면 우리의 믿음이 제 아무리 크고 강하다 해도 그것은 온전할 수 없으며 바닷가에 쌓은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파도가 한 번 지나가면 맥없이 무너지고 마는 모래성이다.
따라서 믿음의 근거는 내게 있지 않다.
오직 우리 주님께 있다.
야곱은 그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 따라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여전히 두려움이 엄습한다.
왜냐하면 왠지 하나님은 멀고 에서의 복수는 가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길을 나선 야곱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신 표징이 ‘마하나임’ 곧 하나님의 군대였다.
이를 통하여 그는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음에도 여전히 육신의 불안과 살육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11b)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것 말고는 모두가 다 풀의 꽃처럼 시들고 떨어질 뿐이다.
아무리 그 영화가 높고 화려할지라도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충격은 더 클 뿐이다.
나는 영생에 대해서 알지 못한 고로 그저 죽으면 천국 가는 것쯤으로 치부하였던 자이다.
그래서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전전긍긍하던 자였음을 고백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는 목사로 살면서도 죽어서 정작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얼마나 창피한 일일까, 하는 나 중심적인 초라함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십자가복음과 장사복음 부활복음 그리고 현현복음이라는 통합복음을 알게 되었고 이 복음을 통하여 영생은 그저 죽어서 가는 천국만 아니라 그 이상의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누리는 생명의 교제와 사귐이다.
그저 죽어서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 에 치심한다면 이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다른 종교도 죽고 난 뒤에 좋은 곳에 가기를 원하고 또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착한 일 하고 남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면 죽어서도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느 종교와 같이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바라거나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이 땅에 살면서부터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생의 진정한 의미이다.
육신의 죽음, 곧 살육에 대한 위협으로 인하여 큰 두려움과 겁박에 짓눌렸던 야곱은 언제 어디서나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온전히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현재적으로 두려움과 겁에 질렸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면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변하지 않음에 대하여 탁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연약하고 미련하여 늘 하나님을 시험했던 나는 믿음이 있노라 하지만 정작 믿음이 없는 자요, 초라한 자였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복음 앞에서 오늘도 두 손을 들고 나는 항복을 선언하며 오직 우리 주님의 승리하심을 찬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모태신앙인으로 자라던 나는 사실 믿음이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였나이다.
믿음은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지만 그 믿음의 실체가 하나님께 있지 않고 내게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늘 흔들리는 갈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연약한 실존(失存)인 나의 실체입니다.
내가 아무리 나의 믿음을 의지하여 걸어갈지라도 그 믿음은 온전할 수 없나이다.
하지만 날 붙들고 계시는 우리 주님의 그 인자와 사랑을 믿는 자로 서게 하소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오늘도 말씀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먹고 또 먹는 자 되기 원합니다.
나에게서 생명의 근거를 찾는 자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과 그 말씀 안에서 생명의 근거를 찾게 하소서.
그것까지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것임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오니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흔들리지 않는 그 나라를 오늘도 바라나이다.
영육간에 연약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눈자락을 높이 들어 땅에서 그 나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고정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