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소 견학
鐵을 꿈꾸고,
鐵을 만들고,
鐵을 완성한 사람들
한 시대를 같이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과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한다.
일생을 통해 그들과 겹치는 기간은
30여 년
격렬하게 부딪친 기간은
포항제철소의 건설기(1970~1980)
10여 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육성이
선진국의 발판이라면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여
그중 산업의 쌀이라는
철을 생산하기 위한
제철소 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
영일만 일대를 제철소 부지로
선정하여
공장건설이 한창일 때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공장이 완공되어
본격적으로 철강이 생산될 때는
뭔가 팔아먹기 위해서
제철소 주변을 맴돌았다.
이런 추억을 가진 역사의 현장으로
다시 가 보는 행운의 기회가 생겼다.
지금까지 막연히 알고 있던
제철소의 건설역사,
자금조달, 공장규모, 생산설비,
원료수입, 제품생산, 공급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성장한
일련의 모습을 한나절에 보고 듣고 하니
가슴이 벅차 할 말을 잊었다.
포스코 홍보센타 VIP 영상관
단정하게 차려 입은
홍보실 직원이
현관에서 부터 깍듯하게 안내를 한다.
포스코 정도의 세계적인 기업의 홍보 활동은
어떻게 하나
그것도 한편으로는 궁금 사항이다.
최근에 홍보관을 다시 꾸몄다고 귀뜸한다.
영상관으로 들어서니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서일호 처장님 일행
포스코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화면에 놀란다.
약 10분간에 걸쳐
포스코 전반적인 현황을
영상과 조감도를 중심으로
브리핑 받고
궁금한 사항을 질문을 마친 뒤
홍보센터 입구에 있는
포스코 역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견학에 들어간다.
포스토 홍보센터 VIP 방명록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기념재단 서일호 사무처장
포스코 역사관
대통령의 직책은
온통 나라 걱정,
사장은 회사 걱정,
가장은 집안 걱정,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마는
걱정거리가 차원이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가난한 나라를 부유한 나라로
바꾸는 것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방법은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그것도 중화학공업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경제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무지막지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말 되게 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인간의 한계가 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것이 역사관에 수록 된 내용이다.
'鐵鋼은 國力'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접하니
마치 살아서 내 앞에 서 계시는 것 같다.
포스코 역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포스코 역사관 방명록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기념재단 서일호 사무처장
박정희 대통령의
포항제철 창립 10주년 기념 휘호
'철강은 국력'
박정희 대통령이
철강산업의 당위성을
온 국민에게 호소하는 연설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주식회사 창립
박정희 대통령의 구상으로 시작된
제철소 건설 사업은
종합제철소 입지를
포항으로 선정하고
종합제철소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포항제철주식회사 창립한다.
건설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한일협정 체결
한일국교 정상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사업에 사용하기로 하고
공사 착공에 들어가
4기(1970~1983)에 걸친
설비 준공으로
조강 생산 연산 910만 톤의
세계 철강 대국으로 자리 잡는다.
포항제철주식회사 현판
'롬맬하우스 하우스'로
命名된 건설 현장사무소는
눈에 많이 익은 건물이다.
당시 건설현장 사무소는
다 이런 모습으로 지어졌다.
지금 제철소 부지(230만 평)는
영일만 일대 해안을 중심으로
작은 촌락을 철거하고
모래사장에 건설되었다.
롬맬하우스는
세계 제2차대전의 영웅
'사막의 여우' 롬맬의
불굴의 전투 정신을 본받자는 의미로
극한의 상황을 설정한 것이며
'우향우 정신'은
군사문화로 일사불란하게
지휘에 따른다는 각오의 다짐이다.
브리핑 챠트
포스코 역사관은
철의 역사,
한국의 철 문화,
제철소 창업기,
포항 건설기,
광양 건설기,
대역사 완성(조강 연산
2,100만 톤),
새로운 역사 쓰기 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들어도 금방 까먹는 세대
젊은이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도록 독려나 하자.
공정표
야전 군용침대
포스코 역사관 견학을 마치고
안내인을 따라
공장 견학에 나선다.
여의도의 3.5배나 되는 면적에
꽉 들어찬 건물과 시설물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공장 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차량으로 이동(시속 40km 이하,
철도 건널목에는 5초간 정차)하며
걷는 사람은 없다.
견학 코스가 짜여 있는데
이해하기 쉽게 철강을 생산하는
공정을 순서대로 쫓아다닌다.
철강의 원료인 철광석
(분말 형태로 수입)과
철광석을 녹이는
유연탄을 수입하여 하역하는
부두와 야적장,
야적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고로까지 이동,
고로에서 제선(쇳물 축출)과정을 거쳐
제강(불순물 제거)공정으로 이동하여
압연공정에서
최종 철강 제품이 생산된다.
제선, 제강, 압연 세 공정을 갖춘
제철소를 종합제철소(일관제철소)란 한다.
오늘 견학의 백미는
제강을 마친 쇳물이
압연공장에 도착하여
주조기를 통과한
직사각형의 두꺼운 철판(슬래브)이
여러 개의 압착 롤러를 통과하면서
얇게 만들어져
완제품으로 포장되는 단계
까지 봤다.
압연공정 전체 길이가 800m,
여기를 통과하는 시간이
1분 30초
한마디로 '억' 소리가 절로 난다.
안내인과 정문에서 헤어지면서
공장 견학을 마친다.
엄청난 실화를 보고 듣고 나니
한동안 안내인의 설명이
귓전에 맴돈다.
세계 제1의 철강회사답게
공장 안은 쾌적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홍보센터 뜰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향나무가 볼품없이 자라났다고 어쩔줄 모른다.
백록대
포스코 견학의 주요 목적은
박정희 대통령의 흔적을 찾아디니는
일환의 과정이다.
백록대, 청송대, 영일대는
제철소 공사 현장을 방문하면서
관계자들과 회의도 하고
식사도 하며 잠도 주무신 곳이다.
백록대 숙소 박정희 대통령은 3회 이용
백운록대 숙소에 손님으로 모신
세계 각국 국가 원수와 귀빈들
백록대 숙소 제철소 초기 사진 전시
백록대 숙소 응접실
백록대 숙소 침실
백록대 숙소 정원
전망대 가는 길
영일대 주변 산책로는
벚꽃길의 명소로 소문이 나
4월이 되면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팔손이 나무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와 시가지
포항제철소 전망
박정희 대통령이 백운대 숙소를 이용할 때
망원경으로 제철소 공사 현장을 지켜보던 전망대
영일대
영일대는 제철소 건설 외국인 기술자의 숙소,
영빈관,
박태준 회장의 건설 지휘소,
대통령 숙소, 등으로
당시 포항에는 이런 것들을
수용할만한 시설물이 전무한 상태로
제철소 건설을 지원하는
시설물로 건설했다.
현재는 호텔로 운영.
건설 당시 긴박했던 역사의 현장은 사라지고
건물 외관, 호수, 주변 녹지만이
말없이 지키고 있다.
영일대 후문 양옆으로 서 있는
향나무의 주인은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을
상징한다고 관리인이 일러주고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이
희로애락을 나누며 걷던
호수길은 푸르름만 더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1970년 4월 1일)
금송이 양지 밭에서 잘 자라고 있다.
사랑한다, 존경한다, 그립다,
보고 싶다, 다 좋은 말이지만,
그분의 뜻을 진정 가슴속에 새겨
실천해 감으로써
그가 꿈꾸고 우리가 바라는
조국이 이룩될 때까지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정진해야 할 때다.
그분이 잠들어 계시는 곳이
집과 가까워 생각나면
곧장 달려가 한 바퀴 돌아보고 온다.
우시게 소리로
'나보다 많이 왔다 간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해' 하고 큰 소리친다.
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포항제철소
靑山
추천 0
조회 60
21.06.03 11:5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