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월호에 위 제목으로 제 글이 실렸습니다. 제주항공 사고 직후 <오마이뉴스>와 <민들레>에 참사의 원인이 규제 완화와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지방공항과 항공사에 있다는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를 읽은 <르디플로> 성일권 발행인이 아예 [철새는 죄가 없다]는 제목으로 원고 청탁을 했거든요.
이번 기사에서는 대한항공 괌 국제공항 추락 사고의 원인을 짚어보고 왜 이런 사고가 한국 항공사와 공항에서 빈발하는지 분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국토교통부는 철새가 원인이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말 못하는 철새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느낌입니다. 원래 철새 서식지에 공항을 짓지 말아야 했고, 지었다면 조류 퇴치 장비와 팀을 제대로 갖춰야 했죠.
기사의 두 대목을 아래 인용했는데, 제 기사 말고도 <르디플로> 2월호에는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 김포발 대한항공이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43분(현지시각) 미국령 괌 국제공항으로 접근하던 중 산에 부딪혀 승객과 승무원 254명 중 22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날 밤 <한겨레신문> 당직 야간국장이던 나는 부랴부랴 호외를 제작했다. 소련 요격기에 격추된 대한항공 007편을 빼고는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된 그 추락 사고뿐 아니라 한국 항공사나 공항에서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항공산업 관련 기득권세력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원인을 돌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악천후나 새떼, 사망한 조종사 개인의 실수로 돌리는 것은 전래의 수법이다. 그러나 악천후나 새떼 같은 자연 요인이나 조종사의 사소한 실수에도 사고가 나지 않는 수준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게 항공안전의 요체다. 항공사고는 났다 하면 대참사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괌 사고도 악천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우리 언론이 초기에 언급하지 못한 원인도 지적했다. 한국 민항기 조종실 특유의 서열 문화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했다는 거였다. 심야 악천후 상황에서 운항 고도가 너무 낮아졌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느낀 부기장이 ‘착륙 포기하고 복행하자’(Go Around)고 건의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게 한 원인일 수는 있어도 더 큰 요인은 딴 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기장이 “착륙 포기합시다”라고 건의한 것이 충돌 7.47초 전이고 재차 ‘착륙 포기’를 외친 것은 충돌 4초 전이었다. 기장이 ‘착륙 포기’를 선언하고 비행기를 밀어 올린 것은 충돌 2.3초 전이었다.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는 괌 공항의 거리측정장치가 공항활주로에서 무려 5km나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고 계기착륙장치도 고장 난 채 3개월째 방치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무거운 책임을 대한항공으로 돌렸다. 그러면 이번 제주항공 무안공항 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 습지는 원래 인간 아닌 새들의 고향
새만금, 제주 성산읍, 흑산도, 가덕도 등에 추진하고 있는 신공항들도 철새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인근에도 철새 도래지 4곳이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은 제2공항이 들어서면 조류 충돌수가 기존 제주공항에 비해 최소 2.7배에서 최대 8.3배가 높을 것이라는 검토 의견을 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5년간 국내 조류 충돌 수는 623건이나 됐고 이에 따라 회항한 항공기도 7편이었다. 비행기가 390km 정도 속도로 이착륙할 때 900g쯤 되는 작은 청둥오리 한 마리가 충돌해도 4.8t의 충격을 주게 된다고 한다.
이런 위험성을 고려해 조류 탐지 레이다를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국내 15개 공항에는 설치된 데가 없다. 백령도 레이더 기지에 상황장교로 근무할 때 새떼를 ‘남하하는 의아선박’으로 오해하기도 했는데, 속도와 경로 등을 통해 구별할 수 있었다. 열화상 카메라로 조류를 탐지하기도 하는데 현재 김포∙김해∙제주공항 등에만 설치돼 있다. 조류 탐지∙퇴치 인력은 인천국제공항에 40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이착륙이 뜸한 공항에는 4~2명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 (정치인들의 개발공약으로 버스정류장처럼 많이 건설된 지방공항은 '규모의 경제'가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대규모 적자와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