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년 전 귀뚜라미의 날개는 무슨 말을 한 걸까
고대 귀뚜라미 화석서 발견된
생물 최초의 의사소통 흔적 등 진화와 함께한 ‘소리의 생태계’
인류 급증하며 환경소음 늘어… 노화 촉진 등 생태계에 악영향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노승영 옮김/608쪽·3만3000원·에이도스
지구상 생물들은 소리로 소통하고, 포식자를 피해 생존을 도모하며 번식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개구리는 번식기에 우는 것이 종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고, 고래는 반사되는 메아리를 통해 물체의 질감까지 구분한다. 에이도스 제공
고요한 세상이었다. 45억 년 전 탄생한 지구에 울려퍼진 소리는 바람소리에 불과했다. 35억 년 전부터는 꿈틀거리는 세균의 웅얼거림, 동물의 조용한 움직임 소리가 이어졌다. 여러 생명이 우발적인 소리를 냈지만 소통을 위한 소리를 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혁명은 10억 년 전 일어났다. 고대 귀뚜라미의 한 종인 페르모스트리둘루가 주인공이다. 이 귀뚜라미의 화석에 박힌 날개에는 하늘을 나는 기능과 관계없는 날개맥이 있다. 두 날개를 비비면서 마찰음을 만들었고, 다른 귀뚜라미들이 다리에 달린 청각 기관을 통해 소리를 들어 소통했던 것. 인류가 찾아낸 가장 오래된 소리의 증거다.
지구를 둘러싼 소리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고대 귀뚜라미의 화석이 발견된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부터 수많은 생명의 목소리가 가득한 보르네오 열대림과 수생 생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 세계 강과 바다, 호수, 우리 주변 도심까지. 소리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마이크를 들이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탐험기와 같은 즐거움을 준다.
저자는 전작 ‘숲에서 우주를 보다’ ‘나무의 노래’ 등으로 익히 알려진 미국의 자연 작가다. 진화학, 생물학 등 풍부한 자연과학 지식과 유려한 글솜씨를 함께 버무린다. 이 책은 202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10억 년 전 귀뚜라미로부터 시작된 소리의 생태계는 약 1억5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 ‘육지 혁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번창했다. 이 시기 꽃식물의 진화가 이뤄졌고, 먹이 생태계가 풍부해지자 여치, 메뚜기, 나방, 딱정벌레 등 각종 곤충의 번식이 시작됐다.
청력도 한몫했다. 비슷한 시기인 1억6000만 년 전부터 포유류에서 귓속뼈가 진화하고 달팽이관이 길어져 새로운 감각 세계가 열린 것이다. 듣고 말하는 능력이 발전하면서 지구가 소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모든 생물은 소리를 내고 듣는 방식을 각자의 몸에 맞게 진화시켰다. 늑대거미와 깡충거미는 짝을 유혹할 때 내는 진동의 주파수를 사냥터인 낙엽층의 소리 전달과 맞게 조절한다. 코끼리는 ‘우르릉’ 하는 소리로 먼 거리를 가로질러 서로를 부르는데 이 소리는 땅을 통과해 흐른다. 코끼리들은 발에 있는 감각세포를 거쳐 다리뼈를 통해 속귀로 소리를 듣고 소통한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농경사회가 시작되자 수렵 채집 시기에 비해 F와 V 같은 순치음(脣齒音)이 3배가량 늘었다. 연한 음식으로 식단이 바뀌면서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 방식이 달라진 탓이다.
기후와 식생 역시 영향을 미친다. 높낮이가 있는 모음은 건조한 공기에서 후두에 부담이 되므로, 건조 기후의 언어는 자음을 많이 쓰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한국어와 영어 등의 언어가 자음이 풍부한 이유다. 반면 열대림 지역에서 발달한 언어는 상대적으로 모음이 풍부하다. 자음을 알아들으려면 주파수가 높고 진폭 변화가 급격해야 하는데, 이런 특징은 빽빽한 숲지대에서는 쉽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생태계 위기를 소리의 위기로 보는 관점도 새롭다. 지구를 뒤덮는 선박과 각종 탐사선이 쏘는 에어건(음원)의 확산 등으로 바다의 소음이 증가하면서 바닷속 환경소음은 측정이 시작된 20세기 중반 이후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다고 한다. 소음 속에 자라난 새들을 분석한 결과 노화 정도를 보여주는 염색체의 유전 지표인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 등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공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한다. 소통의 근원인 소리를 추적하면서 불통의 시대에 귀 기울이는 법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