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제가 글을 올렸었습니다.
글 벗 운운하는 것이었지요.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며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로 작금의 세월호 참사를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애시당초 '인천 부두항에서 출발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까지 했습니다.
허나 제가 애시당초 생각했던 이 말은 한참 후 합수부가 발촉되며 뒤늦게 나왔습니다.
중년 이후를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경조사에 우리는 많이 참석하게 됩니다.
애경사야 그렇다 친다손 해도 조사의 경우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기실 염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어떤 이는 같이 통곡을 하며 그 상가식구들과 여러 날 같이 하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대체로 일반적인 조문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지요.
사회적 비용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그날그날 쓰는 비용이 앞으로의 발전을 기약하는 것이면 만사오케이지요.
헌데 낭비성이 강한 소비라면 그건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시리즈에서 언급하였듯이 소비 중 으뜸은 '자산을 사라'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보자면 금번 세월호 참사에서 뿐만이 아니고 우리들 중 많은 분들이
조사에 가서 유족들을 위로할 때 하루빨리 마음 추스리시어 일상의 생활로 복귀하기를
염원하고 또 당부하지요.그게 바르다는 겁니다.
바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하면서 정상궤도로 진입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라는 게지요.
유족들을 비롯하여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 충격이며 심각한 후유증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참을 수 없는 슬픔이기에 그럴수록에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그 아픔을 뒤로 하고 자신의 자리로 빨리 돌아가야 망자에게도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실질적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동정심에 언제까지 호소하기 보다는
실용주의적 가치판단이 사회적으로 좀 더 바람직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인 게지요.
제가 삼십 초반 정말 친한 벗을 교통사고로 잃었었지요.
제 친한 벗 오인방은 목놓아 울었습니다.그 때 사고당한 제 벗 아버님께서 의연하게
"저 멀리 유학가서 어쩔 수 없이 영원히 귀국할 수 없는 처지라 이해 해" 그러시더군요.
그러시면서 "그 애가 다행히 결혼을 안해 가정이 없었기에 천만다행이야" 그 말씀을
하실 때 저희는,천하 없는 큰 아들을 잃은 슬픔 가운데서도 저리 말씀하실 수 있음에
감복을 아니할 수 없었지요.
사나이 진득한 정은 그렇게 우러나오더이다.
PS:지난번 말씀드린 콘도사업과 관련한 얘기입니다.
그 친구가 이번에 한국관광공사에서 주최한 제 4회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서
일차 관문을 통과하여 최종 PT(Presentation.일종의 사업설명회)만 남겨놓고 있지요.
5월 10일 인데 통과되면 무상으로 지원금 3천만원이 나옵니다.
이것이 성사되면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영 프로젝트에 응모할 예정이지요.
여기서는 그 단위가 억대로 올라갑니다.여기 유형의 자본투자없이 성공한 예를 들어봅니다.
며칠 전 공영방송에서 미국의 젊은 창업자(Air Tropical Travel Club 창업주)가 나와서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물론 동시통역 이어폰을 들으며 방청객들에게 질의응답시간이
주어졌지만 그 프로의 여성 아나운서는 능숙한 통역 및 그 질의응답을 유도했지요.
질문자들 역시 능숙한 영어로 질문하고 아주 자연스레 우리말처럼 대화하지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미모의 젊은 아나운서의 영어실력에 감탄한 분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허나 제 주위에는 그 이상의 능력자들이 즐비하다는 게지요.
이러한 건 이제 너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이번 콘도사업 같이 하고자 하는 그 친구만
보더라도 딸 아이가 세계 최고의 개발학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학에서 석사과정 유학중인데
졸업 후 UN에 근무할 생각이지요.그 애는 7개국어를 구사합니다.우리나라에는 그런 재원들이
기실 적지 않습니다.그러니 어지간히 공부한다 는 소리 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지요.
당연히 그애는 대학시절 토익 만점을 취득했습니다.허나 그 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고급언어를 구사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공중파 그 여성 아나운서가 프리토킹하는 그 모습에 아무런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질 않습니다.극히 기본적인 사항이니까요.
우리가 글을 접하면서 문맥이 깔끔하고 흠잡을 곳 없는 글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점이죠.
아무튼 조금 우려감이 드는 것은 우리 거의 대부분 자녀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면 요샛말로 왕따당하기 십상이지요.
전직 전산과 대학교수인 제 친구(콘도사업)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자기 딸이나 제 딸애가 그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100% 성공할텐데...'
여기서나마 못난 자식자랑해봅니다.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요~
첫댓글 머무르다갑니다
내주변분들, 나와 인연이 다았던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고맙다는것을 새삼 느끼는 나날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희망을 보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그런 긍정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다에서 나오지도 못한 아이를 두고 어떻게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할까요?자식을 삼킨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출렁대는데 그 속에 자식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런 위로도 조언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가족의 귀엔 들리지 않습니다 아직은~~~~~~~
그 안타까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지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 ㅎ ㅎㅎ
왜 자학모드야
난 학식높고 외국어 잘하는 친구가 없어서인가
그대가 제일 좋기만 하네
내겐 너무나 멋진 지~니
@지~니 내 눈에 들면 최고여!!
제 주변의 거의 모든 벗들은,저 빼고 극히 가정적이고 범생이들이랍니다.
이번 참사중 가장 심금을 울린 어느 학생의 문자 "기다리래"...
저 역시 울컥했습니다.그러면서도 전 그 말을 생각하며 또다른 희망을 봤습니다.
어른들을 불신하는 우리풍토에서 저렇게까지 잘 따르는 학생들이 입은 피해,우리는
이 때문에 괴로워하고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역설적인 생각인 게지요.옳고 바르게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바로 희망의 씨앗인 게지요.
그런 아이들 말입니다.가슴이 많이 메어집니다...
아버님께서 의연하게 "저 멀리 유학가서 어쩔 수 없이 영원히 귀국할 수 없는 처지라 이해 해"
얼마나 인격을 쌓고 쌓으면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자식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고 합니다. 삼도천[三途川]이 눈물로 인하여 저승으로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제 친구 아버님인 그 분 한분으로 인해 능력없는 당신 형제들 모두가 기반을 다지고 살 수 있었지요.
역량있는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는 금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들 머리속에
강하게 인지된 사실이지요.저는 일찍부터 그걸 보며 자라온 터이라 이번 참사가 그토록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이지요.무능하고 무책임한 일부 어른들 때문에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어린 학생들... 고스란히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고 있지요.
그러한 무책임함이 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기생하며 자라고 뿌리내리는 참담한
현실 앞에 자칫 무관심으로 이어질까 심히 걱정스러운 나날입니다.감사합니다.
세월호 사고의 한 실종 학생 어머니가 전체 가족들 앞에서
"우리 조금만 참자" 고 했다가 "미친 년" 이란 욕설을 들었습니다.
욕을 들은 그 어머니는 목멘 소리로 "그래요 저 미친 년이에요.
딸이 물속에 들어 있어요. 그래도 우리 참아요" 라고 답했습니다.
난 그 어머니의 마음을 높이 삽니다.
우리 사는 사회는 일반적인 통설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희생 하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요.바이블에서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가장 귀하다고 했습니다.왜 주님을 위해라 하지 않았을까요?
아이러니지만, 불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라 할까요... 어떤 상황하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평상심의 자세,정말 큰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참자고 하신 그 어머니는 정의로운 분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분이십니다.세월호가 그 역할을 하는 평형수만 제대로 채웠어도,아니 그 어머니와 같은 분이
선장이셨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