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두루미 맛집 논34-4
옹산에서 사람이 죽었다.
사람들이 시신을 발견해 웅성대고
게르마늄 팔찌를 찬 여자가 죽었다
용식이는 충격받은 얼굴로 울부짖고
털썩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까불이의 쪽지를 본다.
저 게르마늄 팔찌의 주인은 동백이고, 사람들은 용식의 좌절을 보고 그 사람이 동백이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며 드라마의 초입이 시작되었다. 또는 주인공인 동백이 아닌 용식의 엄마 번영회 회장이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그 어느 쪽도 드라마의 순진무구한 히어로 용식에겐 해피앤딩이 되지 못한다.
그때 향미가 걸린것이다. 까멜리아의 여자 알바생, 어느하나 때묻지 않은 구석이 없어보이는 젊은 여자. 동백과 동년배이자 신체적 특징이 비슷한 사람.
서스럼 없이 남자들 테이블에 앉아 술을 얻어먹는,
라이터 따위를 훔치는 모자르고 하찮은 인물.
되바라지고
속물이면서
어느 남자를 꾀어
헛튼짓을 하면서도 부끄럼도 염치도 없는 사람
향미는 용식의 주인공이 아니니, 향미는 누군가의 1등이 되지 못하는 설정값의 인물이니 사라져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해피앤딩을 맞을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이 싹튼다.
동백이 해준 보증금을 까먹고, 동백이 익숙하게 월급을 가불 해주는, 그러고도 동백의 가게에 몰래 숨어살며 싱크대를 막아놓는 향미. 동백에게 기생하는 향미는 이미 죽음이 결정된 드라마에서 가장 죽어도 괜찮은 인물이다.
규태에게 있어서도 향미는 불안한 골칫덩이가 아닌가. 규태가 범인이라면 까부는 향미를 죽였을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끊임 없이 손한번 제대로 잡지않은 규태를 협박한다
자신의 은인인 동백의 소중한 아들, 필구의 출생의 비밀을 팔아 이득을 취하려한다.
사실 향미가 범인일지도 모른다. 향미가 가려는 코펜하겐에 뭔가 있을것이다. 사실 향미는 트렌스젠더가 아닐까. 어쩐지 말투도 목소리도, 때마침 코펜하겐은 그런 수술로 유명하지 않은가,향미는 남자들을 등쳐먹고 그 이전에도 술집에서 일하다 빚을 두고 도망쳐 나온 여자다.
동백이가 죽으면 드라마가 안되고 용식이 엄마가 까멜리아와 까불이 사이에 휘말려 죽으면 용식이와 동백이가 안된다. 누군가 꼭 죽어야한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서사를 가진것은 떡집아줌마도 아니고, 제시카도 아니고, 배추파는 아줌마도 아닌 향미다.
드라마 속에서는.
그래서 향미는 이 드라마의 가시다.
향미는 가시다. 목에 걸려서 쿡찌르는 가시.
-오지게 걸렸구나
“아니지, 오지게 걸린게 아니라 오빠 발등 오빠가 찍은거지”
“나같은 애들은 원래 벌거벗은 임금님 옷 같은거야, 착한 남자들 눈엔 안보여. 그러게 오빠 왜 헛짓거리를 해 “
향미는 똑똑한 여자다. 영악하고 통찰력이 깊다.
향미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눈치없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을 것이다. 해볼 수 있는 가장 쉬운것들이 나쁜 남자들 주머니에서 고물 털어내는 것인 인생이었을 거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향미는 그저 지나가는 누구와도 같은 역할이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든 있건말건 신경도 안쓰이는 인물. 그런갑다 할 수 있는 인물. 아무도 경계하지 않는 사람 아무도 내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 하찮은 인물.
규태의 부인이 모텔을 찾아왔을때도 그랬다.
향미는 놀라고
숨지만,
“안녕하세요, 여기서 보니까 되게 이상하다 저 완전 심쿵했어요”
“누구셨드라? 저 알아요?”
“변호사님이시잖아요, 노사장님 사모님 우리 몇번 봤는데”
“까멜리아에서, 저 거기서 일해요 근데 변호사가 대낮엔 모텔엔 웬일이세요?”
“저는 여기서 살았어요 집이 없어서 남친이 끊어줬거든요”
“어디 가시던길 같은데 “
“가던길 가라구요?”
“근데 사람들은요, 맨날 나보고 가던길 가보래요. 다들 나는 열외라고 생각하나봐”
“사람 자꾸 삐둘어지고싶어지게”
규태의 부인에게는 그저 대낮에 모텔에 있어도 궁금하지 않은 여자다. 그럴싸 하게 그럴법 한 장소. 향미같은 여자가 있어도 이상할게 없으니 말을 걸어와도 이 여자가 왜 여기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규태의 상대일 것이라고 생각치도 못한다.
그게 향미의 드라마속 위치다. 이것은 주인공인 동백과도 흡사하다. 동백 역시 술집여자라는 오해를 받고 왕따를 당하지 않은가. 모두가 동백에 대해 수근거리고 동백을 괴롭힌다
“여자가 이런곳에 오는건 실례죠?”
“?”
까불이 사건의 목격자로 동백을 알고 찾아온 기자는 당연히 까멜리아가 접대부가 있는 ‘그런’ 술집일거라고 생각한다.
까불이가 살인을 저질렀을때도
동백은 직업여성으로 오해받아 집안에 갇힌다.
사람들은 수근거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나한테 직업여성이라고 했어요”
“연쇄살인은 다 드러운년들이 당한다고 이번엔 살았으니까 앞으로 행실 똑바로하라고.”
“진짜가 뭔지는 아무도 안궁금해해요, 그냥 믿는게 진짜인거지. 그래요 그 댓글들 5년이 지났는데도 다 생각나요 까불이는 날 안죽였는데 사람들은 나를 몇번이고 찔렀어요”
우리는 동백의 서사를 보며 직엽여성이 당연히 죽을 만한 타겟으로 인식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우리는 주인공 동백이 당한 일에 마음아파하고 더욱 까불이가 죽인여자가 동백이가 아니길 바란다.
향미가 죽는게 깔끔한 결말이 아닌가. 향미가 하고다니는 짓들도 그렇고 동백이에게 하는 짓도 그렇고 드라마속에서 죽을만한 사람은 향미뿐이다.
싹수가 노란 향미는 죽어도 슬퍼할 이가 없을 것 같다. 정상적인 (나쁜일에 연루되지않은) 주인공들의 삶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죽어도 될만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것
사실 이 드라마는 그 마음을 꼬집는 드라마다.
드라마속의 동백이는 고통받는 미혼모, 여성을 단편적으로 나타낸다면 향미는 좀더 복합적으로 현실에 버려진 여성을 의미한다.
동백은 드라마 속에서 고통받는 여자지만
향미는 드라마 속에서도 밖에서도 고통받는 여자인것이다.
드라마속의 동백이 그럴싸하게 죽일만한 타겟으로 여겨지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속으로는 향미를 수없이 죽였다. 시청자에게도 향미는 지나가는 사람이다.
직업여성은 죽어도 되고 돈뜯어 먹는 여자는 죽어도 된다. 지나가는 여자이고, 늘 죽어왔고 늘 사라졌던 그런 여자다 시청자 모두는 내심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향미가 사라져야 해피앤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안일함.
이 드라마에 가시가 있다면 향미고 이 드라마의 큰 뼈는 향미다. 주인공 동백의 삶보다 아픈것은 향미다.
드라마속 동백이는 구박대기 왕따 걸핏하면 술집여자로 오해당하는 불쌍한 사람이지만 티비 밖의 모두는 그녀를 응원한다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향미는 드라마 속에서도 밖에서도 그냥 지나가는 싹수 노란 여자일 뿐이다. 그게 향미가 자초한 일일까 향미만 잘못된걸까.
뉴스에는 가정폭력 남편을 죽인 아내의 이야기가 시끄럽다. 그러나 사라지고 죽어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워진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술집 종업원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될만해서 그렇게 된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사회를 나타내는 것은 드라마 속의 기자도,악플도 아니다.
향미이길 바란 시청자 모두는 드라마 안과 밖의 가해자다.
향미의 존재가 불편해진 날부터 나는 드라마가 아파졌다.
그래서 향미는 가시다.
죽어마땅한 향미는 이 세상에 없다.
문제시 일기장으로 옮김.
제발 지우지말아줘 또 보러올게
두고두고읽고싶은 글이다 동백꽃보기전에도 이상하게 다른 관련게시글은 클릭안해도 뭔가 너무 끌려서 홀린듯이봤었는데
이 글 생각나서 북마크 해둔 거 뒤져서 왔어
생각날때마다 보러오는중..진짜 문학이야
개슬퍼 향미 죽을때 진짜 오열했어 ㅜㅜ 그후로 향미 생각만 하면 마음아프고 드라마 여운 길게 남음..
생각나서 왔ㄴㅔ 이글은 볼때마다 눈물이 나....
오랜만에 생각나서 또 읽으러 왔어. 오늘도 잘 읽고가.
좋은글 더 읽고 싶은데 탈퇴한 회원이라니 아쉽다
글 너무너무 잘 읽었어
좋은글 잘읽었어 나도 은연중에 동백이는 안돼 행복해져야해 차라리 향미이길 바랐던 마음이 있었는데 여시글읽고 다시생각해보게 됐어 글 고마워!
여시 나 동백이를 여시 글로 향미에 대해서만 알고 드라마를 아예 모르다가 이제서야 동백이를 정주행하게 됐거든 근데 드라마 보다가 아 향미가 죽겠구나 하고 추측하게 되니까 여시가 써준글이 생각나는 거야 드라마 밖에서도 향미를 가시라고 여긴 사람들이란 문구가 생각나서 내가 여시의 글을 떠올리기 전에는 결국 나도 향미를 가시라고 여긴 가해자였구나 싶어서 마음이 참 그랬어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잘 읽고 가
와 진짜 명문이다...
향미...ㅜㅜ다른시선에서 보게됐어 고마워
명문이다…잘읽고가…
갑자기 이 글이 생각나서 드라마부터 다시 보고 찾아왔어 나는 왜 향미이길 바랐을까 드라마 내내 동백이는 향미를 믿으려했고 믿어줬는데 나는 왜 향미를 고깝게 봤을까 나한테 향미가 왜 못마땅했을까 나에게 무슨 정의가 있다고? 드라마 초반 남편이 향미에게 돈을 뜯겼다며 분노하던 떡집아줌마의 같잖은 선민의식에 더 분노하며 봤던 나에게도 혹시 그 같잖다 생각했던 선민의식이 깔려있던걸까싶어서 나를 다시금 정신차리게하려고 찾아왔어 읽고 또 읽어도 좋은 글이다 고마워 정신이 해이해지면 다시 찾아올게
여전히 띵글
여성의 날
다시 한번 읽게 된다.
향미이길 바라는 그 마음을 꼬집은 드라마라는 말이 참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기도 미안한 느낌이 들어
드라마 보면서 불편했던 마음을 꼬집어주는 글이다ㅜㅜ 생각나서 다시 보러 왔어
오랜만에 생각나서 다시보러왔다! 글쓴여시 다른글들도 보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