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조금 시들해지자 경동시장은 아침부터 모처럼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한약재를 사러 나온 중년아저씨, 딸에게 장가 올 예비사위 보약을 마련하러 나온 아줌마, 코흘리개 아이와 손잡고 나와 반찬거리를 챙겨 넣는 젊은 주부, 머리에 채소를 함박 이고 진 주름진 시골 할머니, 플라스틱 바가지며 잡다한 부엌용품을 가득 실은 리어카 장수, 텃밭에서 캐온 상추 몇봉지와 고추 몇 웅큼을 놓고 전봇대 아래 좌판을 벌인 허리굽은 할머니 등 등 오랜만에 사람들의 숨결들이 서로 맞 닿고 있었다.
아들이 곧 군에 입대를 하는 하동아지매가 경동시장을 찾았다
아들의 입대를 걱정보다 더 잘됐다고 생각하는 하동아지매는 경쾌한 기분이었다..
평소 아들에게 지극 정성으로 보약을 먹이고는 있지만 아들이 술을 자주 마시는 통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도 남들 다 간다는 군대를 막상 아들이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기만 했다.
안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동아지매는 아들이 군에 가서 혹시라도 아플까...약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경동시장 여기 저기 생선가게를 기웃거리던 하동아지매는 어느 장어집 앞에 발을 멈췄다
크고 시커멓고 힘 좋은 장어들이 정옥아지매를 노려보고 잇었다.
‘짱어가 그리 몸에 좋다 카는데.. 그래 저놈들을 몇 마리 사다가 고아 맥여야지...’.
“아저씨 그 장어 한관만 주이소. 우리 아들 푹 고아 먹이게..”
‘네 그러세요. 물 좋은 놈입니다요“ 주인은 반갑게 장어자랑을 널어 놓는다.
장어들은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비상! 비상! 무서운 아줌마 나타났다! 비상!’
‘아니 우리를 고아 먹인다구?’
‘그러면 뼈도 못추리잖아..이거 큰일이네 구이를 해 먹는다면 뼈라도 남는데...잘못 걸리면 진짜 죽음이야’
장어들은 주인 뜰채에 안 걸리려고 여기 저기서 버둥을 쳤다.
재수없는 장어들.....
몇 마리가 결국 검정 비닐봉지에 감금당했다.
비싼 장어를 한관이나 사서 비닐 봉지에 가득 담은 하동아지매의 발걸음은 급했다.
어서 집으로 가서 아들에게 고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오고 있었다
좋아하는 막걸리라도 한사발 들이키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아들을 위하여....
하동아지매는 아들에게 장어를 고아 먹일 생각에 조그마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동아지매는 들고 있기가 무겁기도 하고 해서 장어봉지를 버스 바닥에 놓아 두었다.
버스가 기우뚱거리고 빵빵거리며 달리자 장어들은 놀랐는지 꿈틀거리며 봉지 밖으로 탈출을 시도 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는 버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손님을 태우고 내리고 그렇게 가고 있었다.
하동아지매도 즐거운 상상에 젖어 장어들의 탈출공작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이윽고 장어들의 대탈출이 시작되었다.
어설프게 묶여진 비닐봉지 틈새를 뚫고 장어 두마리가 꾸역 꾸역 버스바닥으로 기어나왔다.
그 순간 갑자기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으악! 이게뭐야! 뱀이다!”
“까~악!”
버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장어가 바닥에서 꿈특거리며 다니자 영락없는 흑뱀 두마리가 설치는 꼴이었다.
그때 남자승객 두사람이 장어를 잡아 이리 쥐고 저리틀고 했지만 매번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통에 잡기는 힘들었다.
난리 법석이 따로 없었다.
“여기있다” “아니 저기로 갔다”
버스가 어디로 달리는지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하동아지매도 장어사냥에 나섰지만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창피함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어서 저 못된 장어들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 치고 싶었다.
군대 갈 우리 귀한 아들에게 좀 먹이려는데 이 노무 장어들이 왜 이리도 소란인가 말인가.
‘잡히기만 해봐라...그냥 고아버린다’
그때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버스 바닥 가까이 앉았다.
아무 말 없이 빈 양파자루를 손에 쥐더니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미끄러운 장어를 꽉 틀어 잡았다. 희안했다.
미끄러지지 않고 용케도 장어를 쉽게 잡았다
승객들은 신기한 듯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어는 저렇게 잡는구나....
역시 나이 든 할머니의 지혜는 배울점이 많다는 표정으로 모두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하동아지매는 그때서야 허둥거리던 정신을 바로잡고 겨우 잡아 넣은 장어봉지를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한바탕 난리를 치던 장어와 장어아지매가 버스에서 내리자 승객들은 아주 재미있었다는 표정으로 장어아지매가 가는 뒷 모습을 한참 쳐다 보고 있었다.
‘저 장어....버스 바닥에 마구 뒹굴었지만 그래도 맛있겠지?’
버스가 출발하자 승객들은 아무일 없었던 듯 다시 평소의 버스속 일상으로 돌아갔다
장어 탈출소동은 미수로 끝났다.
하지만 하동아지매의 아들을 위한 장어잡이는 이제 시작이었다.
하동아지매가 장어를 고우려고 물을 끓이고 있는 그 시간...
‘전국장어생존협의회’ 회원 장어들은 하동아지매에게 잡혀간 장어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