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장마가 그쳤다. 오랜만에 맑은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쨍그랑, 방울소리가 들려 왔다. 놀라 걸음을 멈추니 아, 내 발등에서 강렬한 햇살방울이 막 튀어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줄 몰라 엉거주춤해 있는 나를 향해 쏴아, 매미 소리도 최후의 통첩처럼 울어 제쳤다.
장마가 너무 길어 올 여름은 여름이어도 여름이 아니었는데, 이제 이렇게 진짜 눈부신 여름이 온 것이다. 더딘 걸음으로 왔으니 이번 여름은 저 꿈속의 타히티처럼 강렬한 불꽃으로 타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수재민이나 곡물들에게도 이런 낭만적 상상이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니 맘좋고 여름 환상에 빠져들어도 좋을 듯하다.
여름이 좋다. 무더운 여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여름의 원색이 나는 좋다. 이글거리는 눈앞의 햇살을 보며 거기 한치의 불순물도 들어 있지 않음을 무지 사랑하고 싶다. 가장 푸른 잎과 가장 붉은 정열이 서로 순정을 엮고, 그런 여름은 항상 가슴 뛰는 그리움을 가져온다.
내게 있어 그러나 이 여름을 가장 여름답게 부채질하는 것은 시방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저 요란한 매미 소리가 아닌가 한다. 쉼 없이 울어만 쌓는 저 짜랑짜랑한 목소리는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천연의 호르몬이다. 이상하지, 왜 나는 매미 소리만 들으면 이리도 정겹고 반가울까. 충분히 짜증스러울 수 있는 그 소리를 여태 한 번도 귀찮아하거나 시끄럽게 여겨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 악을 쓰듯 울어대는 매미를 아파트 주민들은 신고까지 하는데, 나는 그들을 늘 전령사처럼 환영하는 것이다.
듬성듬성한 그물망에 바람처럼 날아와 명쾌한 기력을 쏟아내는 그 시원한 목소리는, 바다와 계곡과 펄펄 살아 오르는 나무들의 기운보다 내게 훨씬 우월한 보양식이 되어 준다. 매미 소리가 없는 여름은 꽃에 나비가 춤추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푸른 것은 더욱 푸르게, 시원한 것은 더욱 시원하게, 타오르는 것은 더욱 타오르게 여름을 매무시하는 이 열정은 언제나 나를 ‘두드리는’ 한 줄기 소나기이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시원한 여름 소나기에 땅 위의 모든 생명들은 일순 신선한 눈뜸을 하다.
그리고 ‘소리’는 때로 그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고 큰 깨달음이 되어 준다. 그것의 분질에 이르는 그것의 정령이 소리라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 옛 선비들이 달밤에 연꽃 피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세계를 연마해 간 것도 그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한다.
깊은 골짜기의 수정 같은 물처럼 모처럼 온 세상이 청정한 본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장마 때의 그 무서운 빗줄기에 세상이 완전히 몸씻기를 하고, 거기에 또 저 시원한 매미가 하루 종일 울어 씻어낸 깨끗함이 쌓인 때문이리라.
아침 나뭇가지에 날아와 맑게 지저귀는 까치 소리보다 훨씬 상큼한 소리가 한 여름 나의 매미 소리이다. 나처럼 시끄러운 것 싫어하는 사람이 시끄러움의 상징인 매미에게 이리 관대하다니, 의아할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곤충채집 숙제에서 매미 표본을 잘 만들어 상을 탔고, ‘매미’ 에 대한 글짓기에서도 큰 상을 탔던 즐거운 추억이 매미 편을 드는 나의 동심 같은 이유일까?
“날으는 몇 마리의 나비를 주시든지…….” 내 맘에 한 마리의 나비도 날지 않고 있는 이즈음, 나는 미당선생님의 ‘기도’가 줄줄이 그리웠다. 지겨운 장마처럼 그 메마름이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때마춰 찾아와 준 카랑카랑한 매미 울음이 사랑처럼 나의 여름 감성에 흥건히 와 안긴다.
지칠 줄 모르고 저리 울어대는 올 여름의 매미가 따로 반가운 이유도 하나 있다. 유례없는 폭우에 시달린 수많은 수재민의 현실을 쨍쨍 잘려 주는 것은 저 매미 울음 찬란한 따가운 볕이다. 그때는 그리도 그리웠건만 이제야 나타나 뒤늦은 물기를 말려 주고 있는 저 땡볕은 바로 농익은 매미 울음이 몰고 온 것이다. 매미 울음이 없다면 어찌 한여름의 볕이 여물까. 쨍쨍 우는 매미 소리가 쨍쨍 빛나는 햇살처럼 젖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안도감이 올 여름 매미 소리에 대한 또 다른 나의 즐거움이다.
요즈음 이색 캠페인 하나가 눈길을 끈다. 수해가 난 강원도 지역으로 적극 여름유가를 떠나가라는 것이다. 그들을 도우는 길이 그것이니 미안해 하지 말고 요란하게 찾아가 소비를 하라 이른다.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나 부르는 얄미운(?) 매미 옆에서 실은 결실의 여름이 익어 가듯, 어긋나 보이는 것끼리 서로 도움이 되는 상생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쨍쨍 매미가 울고 있다.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나의 여름을 날으고 있는 저 매미는 아직 내게 그리움과 사랑이 남아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무성한 수풀로 일어나는 내 그리움의 세계를 가장 잘 증언해 주는 저 매미 울음은 아직 나에게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 남아 있다는 절규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매미가 운다.
그 시끄러움이 나를 적막처럼 에워싼다. 내게 끝없는 내밀의 세계가 몰려 온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