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좋은 시 다시 읽기
삶을 바라보는 다층적 시선
백애송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자연에 빗대어, 사회현상에 비추어,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통해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시 작품을 통해 즉 문학을 통해 들여다본 삶에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이러한 다층적 시선은 독자로 하여금 사건에 대해 보다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보고 듣는 사람들의 시각이 다양하기 때문에 한 가지의 상황과 사건일지라도 다양한 주제적 측면에서 보여줄 수 있다. 이로 인하여 긴장감도 증가한다.
팔십일억명 넘는 세계 사람들 내뿜는 탄소로
지구 내 몸 점점 더 뜨거워져 기후 위기에 직면
나 지구가 우주에서
가장 신선하고 아름다운 행성이던 때 그리워
풀과 나무는 먼지 한 점 없는 잎새 반짝이고
사람, 짐승, 곤충 맑은 공기 마시며
푸른 하늘 눈에 담았지
물고기 떼 깨끗한 물속에서 사랑 나누었지
사람들 무분별한 개발로 숲 점점 사라져
문명의 이기가 쏟아내는 열기에
빙하 녹아 전염병 돌아 폭염 가뭄 산불로
강물 말라 짐승과 물고기 죽어가
폭설로 집 묻혀 홍수로 밭 잠겨 흉년들어
사람이 쏟아내는 쓰레기로 땅 바다 썩어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모유 먹은 아기
비만과 뇌 발달 이상에 시달려
전쟁, 분쟁, 테러, 재난 끊임없이
나 지구는 아수라장 맥없이 무너져 가
나 지구의 희망 꿈 미래
캄캄한 밤에 갇혔다
인류여 인류여
― 차옥혜, 「인류세」 전문
차옥혜 시인이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따뜻하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생을 이루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이 자연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간과하고 자연을 지배하려 들었던 인간은 최근 급격하게 변화해 가는 자연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쪽에서는 급격하게 온도가 올라가고, 지구의 건너편에서는 태풍이 몰려오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차옥혜 시인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의 마음을 이 시에 담아 전하고 있다.
인류세人類世는 네덜란드의 화학자인 크뤼천이 제안한 용어이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환경에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하였지만, 그 결과 자연의 무분별한 훼손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미세플라스틱, 방사능, 지구 온난화, 해양 오염 등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에 인류의 산업 활동으로 인하여 극심하게 변화해 가는 지구의 환경을 인식하고 이를 인류세라 칭하여 지질시대에 포함시키고자 제안한 것이다. 이후 인류세는 현재 환경 문제로 인한 지구의 위기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
올해 초 국제층서학위원회(ICS) 산하 소위원회에서 인류세라는 공식 용어 채택이 기각된 일이 있었다. 기각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공식 용어로 채택이 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류세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생태학적 차원에서도 중요 용어일 것이라는 점이다. 2024년 3월 기준 세계 인구는 약 81억 명이라고 한다. 실제 이 81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내뿜는 탄소의 양은 얼마나 될까. 이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풀어야 할 과제인 점은 분명하다.
시인은 우주에서 지구가 “가장 신선하고 아름다운 행성이던 때 그리워”한다. 공기에는 “먼지 한 점 없”고 식물들은 반짝이며, 사람이나 짐승, 곤충 모두가 맑은 공기를 마시던 때. 하늘은 푸르고 물고기는 “깨끗한 물속에서 사랑 나누”던 때는 점점 잊혀 가는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숲”이 점점 사라져가고 “문명의 이기가 쏟아내는 열기에” 모든 환경이 바뀌어가고 있다. 빙하는 녹아내리고, 곳곳에 전염병이 돌아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폭염과 가뭄, 산불, 폭설과 홍수로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심지어 “사람이 쏟아내는 쓰레기로 땅 바다”가 썩어가고 있고,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모유 먹은 아기”가 “비만과 뇌 발달 이상”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전 세계는 전쟁과 분쟁, 테러와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결국 “지구는 아수라장 맥없이 무너져 가”고 있다. 이에 시인은 “지구의 희망 꿈 미래”가 “캄캄한 밤에 갇”혀 있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인류에 대해 경각심을 주고자 한다.
이십 년을 살아온 뜰 안 매화를 두고
삼백 오십년 응축된 세월 만나러
진달래와 개나리 수선화는 제쳐두고
산자고 현호색 흰털제비꽃… 야생화를 지나쳐
한쪽 구석 자리한 백양사 고불매를 만난다
다섯 개의 의족으로 선 고불매
기적처럼 수백 년을 비워내 고결하고
손에 손에 카메라를 든 방문객
매화향 곁을 떠날 줄 몰라
코끝 실려 오는 향기 전신을 감아
나도 틈에 끼어 몇 컷 찍어둔다
우화루 쪽마루 앉아 흘러온 몇 백 년을 가늠하는데
속을 다 비워낸 어머니의 세월이
고불매 안에 들어있어
열 자식 품어 키운 그 속 쩍쩍 갈라져
바람 든 허깨비로 살아도
더 고매한 고불매 고귀한 향기
어머니의 따뜻한 기운 봄을 일으켜
많은 사람 불러 모으고 있다
― 표순복, 「비워내고 사는 삶」 전문
표순복 시인의 시에서는 비우는 삶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 비우고 사는 삶은 어머니의 삶과 맞닿아 있다. 시인의 마당에는 이십 년을 함께 해 온 매화가 있다. 그런데 오늘 이 매화는 뜰 안에 두고 “삼백 오십년 응축된 세월 만나러” 백양사로 향한다. 장성에 위치한 백양사 한쪽 구석에는 한국의 4대 매화라 불리는 고불매가 있다. 고불매는 단 한 그루이지만 천연기념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결함과 은은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 고불매는 “기적처럼 수백 년을 비워내” “다섯 개의 의족으로” 서 있다. “손에 손에 카메라를 든 방문객”들은 “매화향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코끝 실려 오는 향기”를 맡으며 시인도 그 “틈에 끼어 몇 컷” 사진을 찍는다. 시인은 이 고불매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본다. “속을 다 비워낸 어머니의 세월이/ 고불매 안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머니는 “열 자식 품어 키운 그 속 쩍쩍 갈라져/ 바람 든 허깨비로 살”았다. 제 속을 비워내고 살았던 어머니의 삶은 “고매한 고불매 고귀한 향기”보다 더 따뜻한 봄기운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어머니의 삶은 비워내는 삶이다. 자식을 위해 제 안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소진하는 삶이 어머니의 삶인 것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겪는 헌신적인 희생과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내는 삶이다. 어머니의 삶은 이처럼 늘 무언가를 비워내고 사는 삶이지만, 어머니의 주위에는 따뜻한 기운이 함께 하기에 고불매보다 더 고결하고 숭고하다고 할 수 있다.
치과에서 어금니 2개 크라운치료를 받았다
식사 때마다 볼이 자꾸 물린다
다시 교정을 했더니, 이번에는 혀끝이 자주 씹힌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습관이 된다’는 의사의 말이
오도독거리는 입안에서
불구의 별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때로는 검붉게 또는 멍 빛으로
어긋난 기회와 시기가 딱 맞는 그 순간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상처 입는 별들의 아픔은 계속 자랐다
서로 사각지대에서 헤매는 날들이
사계절을 우물우물 씹고 있는 동안
백년을 훌떡 훌떡 먹어버리는 세월
그 뒤편으로 상처의 흔적들은 우주 멀리 번져 나가고
엇박자로 흔들리면서 어둠으로 가라앉는 순치馴致의 슬픔
잘게 씹히던 그리움도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별들의 울음으로 가득한 폐허
낯선 프레임에 갇힌 채
쓸쓸한 사막처럼 황량해 지고 있다
― 지하선, 「사무치게 그리운, 불편한 동거」 전문
지하선 시인은 생활에서 시를 길어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의 생활은 단순히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넓은 혜안의 안목으로 살펴 전한다. 치아가 불편해 크라운 치료를 받은 시인은 “식사 때마다 볼이 자꾸 물”리는 불편함을 겪는다. 다시 치과를 찾아 교정을 했으나 “이번에는 혀끝이 자주 씹”히는 현상이 발생한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습관이 된다’는 의사의 말이” 입안에서 불구의 별로 돋아나기 시작한다. “때로는 검붉게 또는 멍 빛으로” 말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과 몇 해 전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상을 보내야 하는 불편함을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적이 있지 않던가. 같은 행동을 지속하게 되면 습관이 된다고 한다. 마스크를 처음 쓰고 다녔을 때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지만, 우리는 곧 이 불편함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어긋난 기회와 시기가 딱 맞는 그 순간을 찾지 못”한다면 “갈팡질팡 상처 입는” 아픔만 계속 자라나게 된다.
“서로 사각지대에서 헤매는 날들이/ 사계절을 우물우물 씹고 있는 동안” 시간만 먹어가고 있다. “그 뒤편으로 상처의 흔적들은 우주 멀리 번져 나가고/ 엇박자로 흔들리면서 어둠으로 가라앉는 순치馴致의 슬픔”을 시인은 기꺼이 맞이한다. “잘게 씹히던 그리움도 까마득하게 멀어”져 사무치게 그립지만, 결국 시인은 자신을 길들여 이를 극복하여 불편한 동거를 해보고자 한다.
주렁주렁 매단 채
미처 눈 맞추지도 못한 꽃
길에 하얗게 쌓여 있다.
산 절개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허공 꽉 움켜쥐었을 아카시
제 가시에 아팠을 것이다.
한 땐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에 산 곳곳
그루터기가 된 몸들
어둠 속에서
햇살 한 줌 끌어당기면
산 한 자락 품을 향기
수없이 꿈틀거렸을 것이다.
해마다 짧아져
봄은 오는 듯 가버린다.
바람이 남은 향기마저 팔랑팔랑 거두는 산길
가쁜 숨 내쉬며
오월도 가고 있다.
― 고희수, 「오월이 가고 있다.」 전문
고희수 시인은 오월의 향기를 전하는 아카시 꽃을 통해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5월에는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도 있지만, 아카시 나무도 있다. “주렁주렁 매단 채/ 미처 눈 맞추지도 못한” 아카시아 꽃이 “길에 하얗게 쌓여 있다”. 아카시 꽃은 향기를 통해 저 멀리에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
아카시는 1970년대 시작된 삼림 녹화 사업에서 기여도가 높은 나무이다. 토질이 나빠 나무가 살 수 없는 땅에 아카시 나무를 심으면 대기에 있는 질소를 땅으로 끌어들여 토양이 비옥하게 된다. 때문에 1970년대 당시 땔감을 채취하여 황폐한 민둥산에 아카시 나무를 심어 토양의 질을 바꾸고자 하였다. 아카시 나무는 온실가스도 흡수하고 여름철에는 비를 흡수하여 홍수를 막기도 한다.
하지만 한때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에 산 곳곳”에서 아카시 나무는 베어져 “그루터기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이곳저곳에서 많이 자라고 있기도 하고, 번식력이 강해 다른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하여 없애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아카시 나무는 “햇살 한 줌 끌어당기면/ 산 한 자락 품을 향기/ 수없이 꿈틀거렸을 것이다”.
해마다 봄은 짧아지고, 오는 듯싶었다가 어느새 가버리고 만다. 오월의 “바람이 남은 향기마저 팔랑팔랑 거두는 산길”에 “가쁜 숨 내쉬며/ 오월도 가고 있다”. 시인은 가버리고 마는 오월의 향기 속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아카시 나무의 흔적을 남겨 두고자 한다. 근거 없는 오해와 선입견으로 사라지고 있는 아카시 나무는 “산 절개지에서”도 “떨어지지 않으려/ 허공 꽉 움켜쥐”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제 가시에 아팠을 것이다”. 오월은 가고 있지만 시인은 이러한 아카시 꽃향기를 기억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차옥혜 시인의 「인류세」, 표순복 시인의 「비워내고 사는 삶」, 지하선 시인의 「사무치게 그리운, 불편한 동거」, 고희수 시인의 「오월이 가고 있다.」를 살펴보았다. 차옥혜 시인은 인류세라는 사회현상에 비추어 전지구적인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았고, 표순복 시인은 자연현상을 통해 어머니의 삶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지하선 시인은 개인의 일상을 통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하였고, 고희수 시인은 오해와 편견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는 오월의 한 단면에 대해 보여주었다.
삶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로 집약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여러 모습이 있고 다층적인 내면이 존재한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인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총체적인 삶의 모습들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쉽게 놓치고 살아가는 일상의 단면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현재의 삶을 재조명하기도 하며 미래에의 전망을 예측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