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좋은 친구입니까?
참고말씀: 삼상20:38,39; 23:16,17; 마10:4; 25:46; 막3:18; 눅6:14; 요1:12,49; 행9:27,28; 11:26; 행13:2-4; 롬10:14; 요일5:12
읽을말씀: 요1:43-45
주제말씀: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첫째,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진짜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친구(親舊)는 한자어로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란 뜻입니다. 어떤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일까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통해 살펴본다면, 어떤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귀감이 되어주는 친구입니까?(지란지교, 芝蘭之交) 아니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변치 않는 우정을 지닌 친구입니까?(금란지교, 金蘭之交) 아니면 내 마음을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알아주는 친구입니까?(수어지교, 水魚之交)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고 깊이 신뢰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친구입니까?(관포지교, 管鮑之交) 아니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며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봐 준 친구입니까?(죽마고우, 竹馬故友)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 같이 게임을 해주거나 운동을 같이하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쉬는 날마다 같이 놀러 다녀주고 취미생활도 같이 하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급식시간에 같이 밥 먹어주고 공부도 같이 하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와 주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예쁜 여자 친구나 잘생긴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주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무슨 일이든 내 편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언제든지 내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줄 수 있는 친구입니까? 아니면 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팔로우(follow) 해주거나 리트윗(retweet) 해주는 친구입니까?
참고로, 팔로우(follow)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특정 이용자를 따라다닌다는 뜻으로, 그 이용자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볼 수 있게 구독하는 것을 말하며, 리트윗(retweet)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에서 다른 사람의 트윗을 그대로 공유함으로써 팔로워들(followers)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평소 어떤 사람을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물론 사람마다 친구의 기준이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은 어떤 사람이 시대와 환경을 초월해서 가장 좋은 친구인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전도한 친구, 곧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준 친구일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 친구 덕분에 우리가 교회에 올 수 있었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 때문에 인생의 결과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원래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는데, 누군가가 이 지옥행 열차에서 우리를 끌어내려서 천국행 열차에 태워주었다면 이보다 더 고마운 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억만 금을 준다고 해도, 이 친구보다 더 귀하진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친구가 한 사람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빌립니다. 빌립은 일찍이 누구를 만나서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1:43) 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동네 사람이었던 어떤 이들도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까? 베드로와 안드레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요1:44)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누구에게 찾아갔습니까? 나다나엘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나다나엘을 예수님을 데려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자신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그래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났고 결국 무엇이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이쯤 되면 나다나엘(바돌로매)은 빌립이 얼마나 고마왔을까요! 그는 빌립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평생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그런 친구가 되지 않으렵니까?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예수님을 소개시켜주는 고마운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서 비전을 찾도록 도와주는 멋진 친구가 되어주세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또한 어떤 사람이 멋진 친구입니까? 상대방이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비전을 찾고 이루도록 도와주는 친구일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입니다. 그는 누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비전을 찾고 이루도록 도와주었습니까? 나다나엘, 곧 바돌로매입니다.
사실 그는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가 예수님의 제자, 곧 사도의 사명을 발견하고 이루도록 힘써 도왔을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공관복음에 열두 사도를 소개할 때마다 항상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마10:4) /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막3:18) /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눅6:14)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친구를 교회에만 데려오는 데 그치고, 그 다음은 나 몰라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친구를 데려왔으면 그 친구가 교회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잘 챙겨주기를 바랍니다. 누구라도 교회에 처음 오면 어색하고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제가 더욱 그렇습니까? 예배시간에 혼자 앉아 있거나, 예배가 끝난 이후에 혼자 남겨지는 순간 등일 것입니다.
가능하면 이후에도 어떤 친구로 계속 남아야 합니까? 드림메이커(Dream Maker)입니다. 즉 그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꿈을 찾고 이루어가도록 돕는 조력자(助力者, helper)가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빌립이 나다나엘(바돌로매)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사명, 곧 사도로써의 사명을 발견하고 이루도록 힘써 도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드림메이커는 여러 가지의 유형이 있을 수 있습니다. ① 러닝메이트(Running mate) 유형입니다. ‘러닝메이트’란 원래 마라톤 등에서 ‘함께 달리는 동료’를 뜻이지만, 어떤 일을 보조격으로 함께 하는 동료나 (훈련 등에서) 연습상대가 되어주는 사람, (미국선거 등에서) 으뜸 직위에 출마하는 입후보자와 짝이 되어 함께 선거에 나서는 버금 직위의 입후보자 등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러닝메이트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혼자서 달리고 있는 친구 옆에서 함께 달려주거나, 연습상대가 필요한 친구 곁에서 함께 연습을 하거나, 혼자서는 버거워 보이는 일에 짝을 이루어서 함께 이루어주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② 페이스메이커(Pace maker) 유형입니다. 페이스메이커란 육상, 수영 등에서 다른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특정 선수가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페이스메이커는 경기 초반에 오버페이스(over pace)로 공기저항을 대신 받아내어, 뒤에 따라오는 선수로 하여금 체력을 비축하며 막판 스퍼트(last spurt, 막판에 전속력을 내어 힘껏 달림)로 좋은 기록을 달성하게 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 어떤 사람이 대표적입니까? 바나바입니다. 그는 사울(바울)을 고향에서 친히 데리고 와서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공동으로 목회했으며, 그와 함께 전도팀을 꾸려서 제1차 전도여행을 다녀오는 등 마음껏 그를 끌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바울은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2차 전도여행 때부터는 (물론 둘 사이의 약간의 불화도 있었지만) 단독으로 전도팀을 꾸려서 진행할 정도로 탄탄해졌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9:27,28)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서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행13:2-4)
우리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좋은 성과를 내도록 앞에서 오버페이스로 공기저항을 대신 받아주거나 방해물을 제거하는 등을 통해 속도를 조율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③ 어시스턴트(Assistant) 유형입니다. 축구 경기에서는 직접 골을 넣거나 넣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공격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를 보통 어시스트(assist)라고 합니다. 인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직접 해결할 수도 있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다른 이가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이 될 것을 알고,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23:17)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위기 때마다 다윗을 격려하고 그가 왕이 되도록 도왔습니다.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삼상20:38,39) /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23:16)
우리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어시스턴트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주 안에서 꿈을 이루어가도록 곁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④ 킹메이커(king maker) 유형입니다. 이는 ‘왕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 나라가 세워지고 새로운 권력자가 탄생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을 말합니다. 인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누군가가 주 안에서 꿈을 이루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거나 길을 열어주는 등의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데, 이러 친구들을 킹메이커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Jehan Cauvin, 1509~1564)과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의 관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알다시피 존 칼빈이 누구입니까?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중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혁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다 파렐이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입니다. 즉 1536년, 존 칼빈이 제네바에 도착했음을 알고 파렐은 급히 칼빈이 머물던 여관으로 달려가서 종교개혁에 즉각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당시만 해도 학자로서 조용히 은거하며 지내고 싶었고 그래서 거절했는데, 파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나는 하나님께서 그대의 휴식과 공부를 저주하시길 바라오!”라고 불같이 소리쳤으며, 공포에 떨며 식겁하던 칼뱅은 자신의 뜻을 거두고 종교개혁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져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킹메이커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주 안에서 꿈을 이루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거나 길을 열어주는 등의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해주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으로 소진될 필요는 없습니다. 즉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꿈을 찾고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면서, 이와 동시에 누군가의 멋진 드림메이커가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러닝메이트로, 때로는 페이스메이커로, 때로는 어시스턴트로, 때로는 킹 메이커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