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그분께서는 우리의 수고로움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 2023/9/23/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추분 ⠀ 루카 복음 8장 4-15절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좋지 않은 땅에도 씨를 뿌리는 농부 사제 서품을 받고 본당을 세 군데 정도 경험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조금씩 사제 생활의 매너리즘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슬슬 강론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본당에서 겪는 일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번아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특히 강론 준비를 하다 보면 과연 이런 강론이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신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공허한 외침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를 늘상 내 마음은 좋은 땅인가 아닌가 하는 묵상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하지만 복음 속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야기에서 사실 주인공은 씨 뿌리는 사람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농부이신 예수님께서는 특이하게도 유익이 될 만한 땅을 골라 씨를 뿌리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도, 밑 빠진 독처럼 보이는 곳에도 똑같이 씨를 뿌리십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나머지의 손실들을 채우고 남을 만큼 풍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라고 말씀하십니다. ⠀ 남창현 토마스데아퀴노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3년 9월호 '소금항아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