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공개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긴 샌드라 불럭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OTT 채널 웨이브에서 다시 찾아내 봤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의 19일 기사 ''블라인드 사이드'가 날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그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를 읽고서였다. 이 신문의 기사가 얼마나 긴지 아시는가? 영어에 익숙한 독자가 34분 동안 고개를 파묻고 읽어야 한다.
영화 주인공이며 나중에 미국프로축구(NFL) 스타로 발돋움하는 마이클 오어(38)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린 이 영화가 잘못 됐으며 이 영화를 토대로 쓰여진 책이 잘못됐다고 얘기한다는 것은 이미 국내 언론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해서 영화가 잘못 다루는 내용을 NYT 기사가 얼마나 현장감 넘치게 폭로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읽어봤다. 기사는 대문자로 시작한다.
THE FOOTBALL PLAYER MICHAEL OHER BELIEVES HIS EARLY LIFE WAS MISREPRESENTED BY THE OSCAR-WINNING MOVIE AND THE BOOK IT WAS BASED ON.
“요기가 허트 마을이 있던 곳이네요.” 마이클 오어는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와 자신이 살았으며, 열한 명의 형제자매 가운데 7명까지 함께 살았던 곳을 지금은 폐기된 주택 건설 청사진 속에서 찾아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난 4월말 우중충한 월요일 오후에 자신의 고교 시절을 드라마로 엮은 '블라인드 사이드'의 전 풋볼 선수 오어는 날 차(GMC 데날리 픽업트럭)에 태워 멤피스 빈민가를 돌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저기, 치즘(Chism) 트레일이라 불린 가게가 있었어요. 내가 훔치곤 하던 장소 중 한 곳이죠. 진짜 음식, 캔디가 아니고요. 피자, 핫도그, 볼로냐. 한번은 햄도 가져갔지요.”(중략)
“여기는 누이들이 살던 곳이네요.” 우리가 코너를 돌자 피크닉 테이블이 앞에 깔린 다 무너져가는 집 앞에서 그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 집은 테레사 수녀가 창설한 단체 자비의 수도사회 소속 수녀들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가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를 먹였다. 난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레몬머렝파이를 처음 먹었기 때문이다."(중략)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큰 참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노란색 집이었다. 그는 진입로 중간 쯤에 차를 세우더니 농끼가 다분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몸을 돌리며 "여기가 제 가족이랑 살던 곳입니다”라고 했다. 그러곤 “제 말 아시겠죠, 네? 저희 가족이요”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이 리 앤과 션 투이가 그들의 두 자녀, 그리고 일년 정도 오어와 함께 살던 곳이었다. 투이네는 그를 데리고 옷들을 쇼핑하러 갔고, 그를 도와 운전면허증을 따게 했고, 그에게 픽업 트럭을 사줬으며 그의 학점을 끌어올리게 가정교사를 했고 그렇게 해서 대학 축구선수로 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했다.
오어는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양부모를 상대로 한 소송을 최근에 제기했다고 국내 언론들이 광복절을 즈음해 보도했는데 사실은 지난해 8월 테네시주 셸비 카운티 프로베이트(검인(檢認)·이혼·해사부(海事部))법원에 제기한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영화와 2006년 마이클 루이스가 쓴 같은 제목의 원작 논픽션이 그린 그의 어린 시절은 다음과 같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오어는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숨졌고, 어머니는 마약에 빠져 가정을 내팽개치는 바람에 노숙을 밥 먹듯 했다. 그런 그에게 손길을 내민 이가 멤피스 지역의 여성 부호 리앤 투이였다. 80개가 넘는 패스트푸드점을 소유한 리앤은 우연히 만난 거리의 부랑아를 외면하지 않고 집에 데려와 재우고 먹였다.
리앤은 또래보다 한참 컸던 오어가 미식축구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보호 본능이 선천적으로 발달해 쿼터백을 보호하는 오펜시브 라인맨으로 적격이었다. 투이 부부는 오어의 대학 진학을 위해 가정교사까지 데려오는 등 헌신적으로 지원했고, 오어는 5년 뒤인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레이븐스 유니폼을 입는다. 영화는 이 실제 장면으로 감동적인 막을 내린다.
오어는 이 영화를 본 이들이 기대했던 대로 NFL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2013년에는 레이븐스 유니폼을 입고 슈퍼볼에 출전해 우승의 감격을 누렸고, 2016시즌을 끝으로 여덟 시즌 만에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투이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오어는 홈리스 흑인 청소년이 부유한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는 영화의 기둥 줄거리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투이 부부가 오히려 자신을 이용해 부를 축적했으며 이를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로 날조한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양부모가 800만 달러정도를 벌어들였다고 주장한다.
AP 통신은 “오어는 20년 전 입양 절차의 일환이란 설명을 듣고 투이 부부가 자신의 후견인이 되는 것에 동의했는데 실제로는 (양부모가 아니라 후견인으로 등재됐기 때문에) 투이 부부와 가족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 했다”며 “오어는 투이 부부가 영화 등을 통해 선 자신들이 양부모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부당한 부를 쌓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오어는 고소장을 통해 투이 부부가 후견인의 권한을 이용해 자신과 두 자녀에게 3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이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작의 로열티로 수백만 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반면, 오어는 “그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영화에 대한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이 부부는 오어를 계속 양아들이라고 부르며 재단을 홍보해 왔고, 작가이자 강사로 활동하는 리앤 투이의 작품을 홍보하는 데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션 투이는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우리 아이들로 돈을 벌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속상하다”며 “하지만 16살 때 마이클을 사랑했던 것처럼 37세의 마이클도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션은 오어가 원한다면 후견인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오어는 현역에서 뛸 때도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영화가 그를 실제보다 덜 똑똑한 사람으로 묘사했으며, 이것이 사람들의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오어는 “사람들은 내가 NFL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경기장 밖에서 일어난 일로 나를 평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를 본 이들도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이 영화가 공개된 것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 년이 안 됐을 시점이다. 인종 화합에 대한 희망을 키우는 영화로 사랑받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마음 편히,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사 가운데 가려진 면과 가려지지 않은 면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오어는 티파니란 여성과 결혼해 다섯 자녀를 낳고 처음에는 내시빌에, 지금은 멤피스에 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리 앤과 션 투이는 미시시피 대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션은 농구 스타 선수였고 리 앤은 치어리더였단다. 션은 100개 이상의 패스트푸드 점포를 소유하고 있으며, 복음파 교회를 창립했으며 개인 제트기 회사 에어 타코를 갖고 있을 정도로 많은 부를 쌓았다. 그는 이들 재산 대부분을 2019년에 2억 1300만 달러에 매각했다. 부부의 딸 콜린스를 페덱스 창업자 프레드 스미스의 아들 캐넌 스미스와 결혼시킬 정도로 멤피스의 명문 집안으로 키웠다.
속된 말로 오어 입장에선 이렇게 투이 가족이 명문 가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던 배경에 자신을 활용한 몫이 있지 않나 생각했을 법하기도 하다.
일 년도 안되는 기간 함께 한 것이라 정이나 사랑이 싹틀 시간은 아니었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양부모 입장에서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생각도 들 것이고, 오어 입장에서는 양부모에게 위선적인 내용이 상당하다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오는 10월 1일 소송 관련 첫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그때쯤 또다시 관심이 집중될 것 같은데 NYT 기사는 법정 밖 합의를 염두에 둔 것처럼 쓰고 있어 그런 식의 결말이 내려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여튼 씁쓸한 것은 씁쓸한 것대로 넘기고, 영화가 주는 감동과 교훈은 따로 간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