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내리는 눈
정소윤
어른들은 도청으로 떠났다. 주인집 언니와 오빠, 나와 다섯 살짜리 동생 현아는 집에 남아 문지기를 해야 했다. 대학생이면 문을 열어주고 군인이면 열어주지 않는 게 우리들의 임무다. 우리끼리 문지기 순서를 정했는데, 오늘은 내 차례다.
우리는 수돗가에 피어있는 채송화를 뜯어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쾅쾅쾅 요란하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당번인 내가 문 앞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누구세요?”
“대학생이야!”
이 말은 광주사람이라는 암호다. 문을 열어주었다.
“고맙다. 꼬마야.”
헐렁한 운동복을 입은 곱슬머리 대학생 삼촌이 허겁지겁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삼촌은 담장 아래 텃밭을 지나 키 큰 살구나무에 등을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살구나무 가지는 멀리 마주 보는 무화과나무 가지와 빨랫줄로 묶여 있었다.
그 사이로 푸른 타일을 입은 네모난 수돗가가 있었다. 숨을 고른 삼촌은 수도꼭지에 물을 틀어 손으로 받아 마셨다.
“삼촌, 이리 오세요!”
주인집 마루에서 딱지치기하던 6학년 우리 오빠와 양말 집 오빠들이 삼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주인집은 기역자 모양의 지붕과 툇마루에 격자무늬 창살의 유리문이 달린 개량한옥이었다.
한옥 가운데는 주인네가 살고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곳에 상하 방이 두 개 있는데 양말 집과 사고로 몸을 다쳐 늘 앉아 지내는 홍구 삼촌네가 세 들어 살았다. 사람들은 홍구 삼촌을 앉은뱅이라고 불렀다. 그 옆에 평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함석지붕의 단칸방 독채가 우리 집이다.
“삼촌, 여기에 숨어요!”
오빠들이 마루 아래를 가리켰다. 삼촌은 몸을 뉘어 팔꿈치로 뒤뚱뒤뚱 기어갔다. 우리들은 마루 밑에서 꺼낸 돗자리를 펼치고 페인트 도구랑 빗자루, 소꿉놀이를 쌓아 삼촌이 보이지 않게 가려 주었다.
잠시 후, 턱턱턱. 대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는 대문으로 뛰어가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학생이에요? 군인이에요?”
나는 다시 대문 밖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문 열어!”
누군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대학생은 아닌 것 같았다. 대문 밑 흙이 패인 곳을 살펴보았다. 구두코가 번쩍이는 군화가 보였다. 군인 아저씨가 분명하다.
“엄마 안 계세요.”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갈 거라고 했다.
“문 열라니까!”
군인 아저씨는 가지 않았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는 문 열어 주지 말라고 했어요.”
제발 군인 아저씨가 돌아가기를 기도하며 말했다.
“안 열면 총으로 쏜다.”
나는 손이 벌벌 떨렸다. 숨이 막히는 것 같더니,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어쩔 수 없이 대문을 열어주었다. 군인아저씨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총을 메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만큼이나 오줌주머니도 부풀어 올랐다.
“화장실 어디 있나?”
군인아저씨가 물었다.
“저, 저기요.”
우리 집과 대문 사이 옥상 계단 아래 화장실을 가리켰다. 다행이다. 군인 아저씨는 광주사람을 잡으러 온 게 아니라 화장실에 가고 싶었나 보다. 나는 다시 대문 앞으로 갔다. 혹시 대학생이 오면 도망가라는 신호를 해주어야 했다.
“대학생 있어? 없어?”
화장실에서 나온 군인 아저씨는 가지 않고 나에게 총을 겨눴다. 총에는 칼날도 달려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엄마가 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어디만큼 있을까? 서부경찰서 지나 돌고개 지나 양동시장까지 가는 걸 보았다.
“어, 없어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군인 아저씨가 총을 더 바짝 댔다.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선전 종이가 날렸다.
“학교에서 선전 종이를 보면 신고하라고 했어요. 그래도 신고 안 했어요.”
나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정말이다. 매일 비행기가 뿌려준 선전 종이가 마당에 쌓였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주워서 종이접기도 하고 종이 인형과 딱지를 만들어 놀면 심심하지 않았다.
“여기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요.”
오빠가 다가서며 말했다. 군인 아저씨가 총으로 오빠를 밀었다. 오빠는 넘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군인 아저씨는 성큼성큼 뒤뜰로 갔다. 벚나무 옆의 장독대와 부뚜막 위로 분홍색 벚꽃이 눈처럼 내려앉았다. 군인 아저씨가 녹슨 가마솥 뚜껑을 열어 보았다. 우리들은 군인 아저씨 뒤로 멀리 떨어져 우르르 몰려다녔다. 현아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지금 나와. 들키면 죄다 쏴 버릴 줄 알아.”
군인 아저씨는 군화도 벗지 않고 주인집 마루로 올라갔다. 주인집부터 차례대로 방문을 걷어찼다. 깔아 놓은 이불을 밟고 다락과 옷장, 텔레비전 상자까지 뒤졌다.
마루에 있는 라디오가 부서지고 노랫소리가 그쳤다. 플라스틱 쌀통은 쌀알을 토하며 쓰러졌다. 홍구 삼촌네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군화를 이기지 못한 문짝이 덜컹거리더니 곧 열리고 말았다. 홍구 삼촌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와!”
군인아저씨가 홍구 삼촌에게 말했다. 홍구 삼촌은 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오빠들이 부축해 주려고 했지만 군인아저씨가 홍구 삼촌을 질질 끌고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살려주세요! 대학생 아니에요!”
홍구 삼촌이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교련복 입은 것들은 다 쳐 죽여야 돼.”
군인 아저씨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홍구 삼촌을 때렸다.
어른들 말이 맞았다. 대학생처럼 보이기만 하면 군인들이 마구 때린다고 했었다. 어린 학생들까지 다쳤다고 걱정했었다.
“일어나. 새끼야. 안 일어나?”
군인 아저씨가 쓰러져 있는 홍구 삼촌에게 소리 질렀다.
어떻게 하면 홍구 삼촌을 구할 수 있을까?
마루 아래 숨어있는 대학생 삼촌과 우리가 힘을 합쳐도 저 군인 아저씨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못 일어나요! 앉은뱅이에요. 제발 봐주세요!”
오빠가 말했다. 우리들도 싹싹 빌었다.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빌었다. 홍구 삼촌을 구할 수 있다면 하루 종일 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살려주세요. 홍구 삼촌은 나쁜 사람 아니에요!”
현아가 군인 아저씨의 바지를 붙잡으며 말했다. 군인 아저씨는 현아도 걷어 차버렸다.
“엉엉엉. 홍구 삼촌 살려주세요! 대학생 봤어요!”
큰일 났다! 현아 때문에 다 들키게 생겼다.
“어디 있나?”
군인 아저씨가 현아에게 물어보았다.
현아는 눈물이랑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군인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엉엉엉. 저기요, 저기서 봤어요!”
현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대문 쪽이었다.
군인 아저씨가 눈을 부라리며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군인 아저씨는 대문을 열고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대문을 꽝 닫고 밖으로 나갔다. 현아가 엉뚱하게도 밖에서 봤다는 대답을 한 것이다.
한참 후에 마루 아래 숨어있던 곱슬머리 대학생 삼촌이 마당으로 나왔다. 오빠들과 함께 홍구 삼촌이 마루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애들아, 살려줘서 고맙다. 꼭 다시 만나자!”
대학생 삼촌은 군인 아저씨가 나갔던 반대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오빠가 물수건으로 홍구 삼촌을 닦아주었다. 상처 난 얼굴과 팔에 소독약도 발라주었다. 우리는 지저분한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현아가 심심하다고 했지만 기다리라고 했다. 엄마가 돌아오면 깨끗한 방을 보여주고 싶었다.
열심히 청소를 끝내고 현아에게 줄 종이배를 접었다. 현아는 커다란 양철 대야에 종이배를 띄우며 노는 걸 좋아했다.
대문 밖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어제보다 더 크게 들렸다.
“광주 시민 여러분 대피하십시오. 특히 노약자는 안전하고 가까운 곳으로 속히 대피하십시오.”
그런데 수돗가에서 물놀이 하던 현아가 보이지 않았다.
“현아야! 어디 있어?”
우리들은 집 안 구석구석 현아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현아가 대문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나 때문이다. 대학생 삼촌이 나간 뒤에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해서 깜박 잊어버렸다.
“광주 시민 여러분 저희 농성경찰서는 끝까지 광주 시민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계엄군이 몰려옵니다. 대피하십시오.”
경찰 아저씨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안 되겠다. 밖에 나가서 찾아봐야지”
오빠가 말했다. 엄마가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오빠와 나는 현아를 찾으러 뛰어나갔다.
진흥원과 삼일 체육사를 지났다. 파출소를 지나 농성국민학교까지 달려갔지만 현아는 보이지 않았다.
“노랑 원피스를 입은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찾는 분은 돌고개 정류장 5번 버스로 가십시오.”
경찰차가 지나가며 확성기로 알려주었다.
분명 현아 같았다. 오빠와 나는 돌고개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 정류장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있었다. 창문 유리가 모두 깨져있었다. 버스 안에는 피 흘리고 다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백제약국 약사님이 약상자를 들고 버스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5번 버스를 찾았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현아를 안고 있었다. 현아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현아야!”
큰소리로 현아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오빠야! 언니야!”
현아도 큰 소리로 울면서 뛰어나왔다. 오빠는 팔뚝으로 얼굴을 닦았다.
아주머니가 어서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오빠와 나는 아주머니를 앞질러 달렸다. 아주머니는 현아를 업고 뒤따라왔다. 경찰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와 함께 경보기도 울렸다.
“계엄군이 도청을 출발하여 이곳 농성동으로 이동합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의 소중한 목숨을 지키십시오.”
뒤를 돌아보니 탱크와 장갑차가 몰려왔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삼촌들을 가득 실은 군용트럭도 보였다. 모두 옷이 벗긴 채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무서워서 똑바로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군용트럭은 서부경찰서 비탈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주머니 덕분에 우리만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두두두둑, 두두두둑.’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다! 비행기.”
우리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가 또 종이를 뿌렸다.
“와! 눈이 온다! 종이 눈!”
현아가 펄쩍펄쩍 뛰면서 떨어지는 종이를 잡았다.
바로 그때, 도청에 나간 엄마가 돌아왔다. 현아는 자랑이라도 하듯 선전 종이를 보여주었다. 엄마가 무섭게 화를 냈다. 내일은 절대 줍지 말라며 종이를 구기고 찢어버렸다.
다음 날도 비행기는 우리 집 마당에 찾아왔다. 우리들은 마당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종이 눈이 내렸지만 줍지 않았다. 경보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홍구 삼촌이 방문을 벌컥 열고 우리들을 불렀다. 어서 피하라고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하늘에서 총알이 쏟아졌다. 총알을 맞은 양철 대야가 투웅 투웅 서럽게 울었다. 우리들은 재빨리 마루 아래로 숨었다. 총소리가 그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