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3시간 반의 두릅 산행
2023년 5월 2일 화요일
음력 癸卯年 삼월 열사흗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산골의 아침은 여전히 차갑다.
아니다, 차갑다는 표현보다는
춥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지 싶다.
5월 초순에
영하 2도의 기온이라면 믿을까?
이른 아침 서리가 내렸다면 믿을까?
고인 물이 살짝 얼었다면 믿을까?
입에서 입김이 호호 나오다면 믿을까?
난롯불을 지핀다면 믿을까?
믿든말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 산골의 기후조건은 믿기지가 않는
실제 사실이며 실제 현상이니까 말이다.
아마도 오늘같은 산골의 모습을 보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하겠지?
제아무리
하늘의 심술궂음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계절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겨울은 가고 봄은 오게 마련이다.
지금은 봄, 봄이다!
어제 오후,
마을 아우가 올라와서
"형님! 두릅 사냥이나 하러 갑시다!" 라고 했다.
"글쎄, 두릅이 있을까? 올해는 영 안보이던데..."
"맞아요, 두릅나무가 많이 없어지긴 했더군요."
"어디 봐둔 곳이 있는가? 하긴 자넨 산꾼이라..."
"좀 멀긴해도 있을 법한 곳이 있긴 하지요."
"그럼 두릅 산행을 한번 나가보세나!"
그렇게 하여
텀벌러에 물을 가득 채워 담고
함께 못가는 이서방은 냉커피를 준비해 주었다.
긴 장화에 겨울에 입는 파카까지 챙겨입었다.
두릅가시가 박히지않는 가죽쟝갑은 필수이고
배낭에 두릅 채취용 접히는 긴 장대도 챙겼다.
이 긴 장대는 예전 장서방이 만들어 준 것으로
두릅나무를 당기는 용도인데 아주 요긴하다.
집에서 조금 먼 곳이라 자동차로 이동했다.
산행 시작 초반부터 꽤나 경사가 심한 곳이다.
그런데 없을 줄 알았던 두릅나무가 제법 보였다.
역시 산꾼 아우의 예감은 적중한 것 같았다.
다년간 마을 주변의 산을 오르내리면서 터득한
단련과 숙련 그리고 경험은 무시할 수 없음이다.
잣나무숲을 지나고 몇 군데의 깊숙한 골짜기와
가파른 능선 지나는 것이 연속하여 반복이 되었다.
힘듦이 등산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라고 할까?
어느곳은 두릅이 너무 피어 버린 것도 있었고
또 다른 곳은 제대로 알맞게 피어 꺾는 느낌과
기분이 좋은 곳도 꽤나 있어 둘이 신나게 꺾었다.
야생 두릅은 윗쪽부터 피어 내려오는 특성이 있다.
산의 위치에 따라 피는 시기가 제각각 다르다.
햇볕의 방향에 따라서도 다른 것 아닌가 싶다.
또한 서식 환경에 따라 드문두문, 띄엄띄엄이다.
이따금씩 군락지를 형성한 곳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몇 그루씩 흩어져있는 있는 게 많다.
그래서 야생 두릅은 채취가 어렵고 힘드는 것이다.
3시간 반의 두릅 산행,
지난번 처럼 넓은 곳은 아니지만 꽤 많이 걸었다.
가파른 악산이라 걷는 것보다 거의 두 손 두 발로
기었다는 것이 더 맞을 듯,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몇 송이 두릅을 꺾으려고 둘이 힘을 합쳐 나무를
휘어야만 했고, 어떤 것은 나무가 너무 크고 길게
자라 아우가 나무를 붙잡아 휘어놓고 있으면 멀리
나무 꼭데기에 핀 두릅은 촌부가 꺾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비탈진 곳은 미끄러지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두릅꺾는 재미에 배낭이 무거워지는 것도,
힘드는 줄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자꾸자꾸
산속 깊숙히 들어갔고 그렇게 3시간 반 동안을
헤매고 다니며 두릅을 꺾었다.
너무 욕심 내면 날이 어두워 낭패를 당하게 되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산을 해야한다.
촌부는 처음 들어가본 산이라 방향감각이 없지만
아우는 산의 위치, 하산 방향을 속속들이 알고있다.
그래서 촌부는 먼산보다는 인근 뒷산만 다녔던 것,
어제처럼 먼산은 늘 이 아우와 함께 다니곤 한다.
아우의 말로는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이곳 산에도
두릅나무가 많이 없어져 여느해 만큼은 아니란다.
그래도 배낭을 가득채워 묵직했고 제법 큰 배낭이
모자라서 여벌로 가져간 천으로 된 봉지에도 가득
채웠다. 아우 덕분에 모처럼 꽤나 묵직한 배낭을
매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집에 돌아와서 배낭과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두릅을 다 풀어놓았더니
식구들이 모두 놀리워 했다.
아내는 이번 산행에서 꺾어온 두릅은 나눔을 하고
많이 피어서 억센 것은 장아찌를 담그겠다고 했다.
둘째네에게도 누이와 조금이나마 나눔을 하라면서
넉넉하진 않지만 제법 많이 주었다. 우리도 그럴까
싶다는 아내의 고운 그 마음에 두릅을 꺾느라 힘이
들었던 것도 잊게 되고 오히려 기운이 되살아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저녁엔 둘째네가 카페로 불렀다.
힘들게 두릅 산행을 다녀왔으니 피로를 풀라면서
달달한 밀크티와 라떼를 준비했다고...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좋았다. 작아보이지만 아주 커다란 이런
마음들이 모여 23년 세월 동안을 이어오는 우리의
산골살이 원동력이 아니었는가 싶다. 어찌되었거나
올봄에는 두릅 나눔을 못할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찜찜했는데 조금씩이나마 나눌 수가 있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뿌듯하고 흐뭇한 느낌이라서 좋다.
첫댓글 올해는 아직 두릅을 못먹었는데
촌부님이 체취한 두릅을 보면서 시장에 들러서라도
봄나물을 맛 보아야 겠습니다. 자연산만은 못할지라도
도회지에서도 함께 즐기는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양이 많아 여기저기 나눔을 하면 좋겠지만 형제들과 나누답니...ㅠㅠ
이다음 오시면 장아찌와 두릅전 맛을 보여드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네요. 억센 것은 그렇게 하거든요. 거듭 송구합니다.^^
탐험대의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두릅을 데치면 선명한
초록으로 바뀌는 모습이 넘 예뻐요.
장아찌도 벌써 맛이들어 삼겹살과
찰떡궁합이 되었지요.
행복한 나눔 하세요.
맞습니다.
거의 산악탐험대 수준의 산행이죠.
그래도 상큼한 봄내음을 먹는 느낌이 바로 봄나물의 제왕이라고 하는 두릅의 묘미입니다. 많은 분들과 나눔을 못하는 양이라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평창에도
두릎을 따는 계절이네요
수고하신만큼 맛나게 드세요
딱 이 시기가 봄나물의 제왕 두릅철이지요. 여느해 만큼 수확이 안되는군요. 쓰러져 고사한 나무가 많더군요. 그래서 사방 다녀야 해서 채취하기가 힘듭니다. 감사합니다.^^
수입이 쏠쏠하네요
ㅎㅎㅎㅎㅎ
그렇긴 하지요.
그런데 나눔을 하는지라 현금 수입은 없고 마음의 수입이라고 할 수가 있는 흐뭇함과 뿌듯함이 쏠쏠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