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효봉* 약전 평양복심법원 판사 이찬형이 말했다나, 탯줄을 자르는 산파처럼
법식(法式)대로 가위질을 하였으나살린 것은 하나 없고 남의 핏줄만 잘랐구나
명줄만 잘랐구나
양복을 팔아, 무쇠 가위를 사서 들고엿판을 목에 걸고 엿장수 이씨가 말했다나, 비로소 가위를 얻었다허공을 휘저으며 마음대로 잘라도다칠 것이 없으며 버릴 것이 없다 가위 소리를 까치 소리로 반겨 듣고빈집 헛간에 잠자던 귀신이 튀어나오고마루 밑 허깨비들도 동무처럼 몰려나오고 사람 그림자도 없던 고샅길에땟국 흐르는 아이들도맑은 바람처럼 불려나오게 하는신묘한 가위 하나를 얻었다
스님이 된 엿장수, 효봉(曉峰)이 말했다나, 지고 온 엿은 아래 윗 절 고루 나누고엿판은 아궁이에 넣어버리고무쇠 가위는 뱃속에 넣고절구통처럼 여러 계절을 앉아 있었지 절겅절겅절겅절겅……가위질 쉬지 않았지 어느 날인가는만물상 두두물물(頭頭物物) 내려와 줄을 서고금강산 산신과 선녀들도 제 보물 하나씩 들고 와서는지상의 엿 한 토막씩 바꿔들 가더군
가위질 잘 따라 익힌 중 하나 있었지법정(法頂), 그애는 쓸 것 안 쓸 것 가려떡을 썰고 옷을 지었지 일초(一艸)? 그 얘기 나올 줄 알았지저잣거리에선 고은(高銀)이라 부른다지흠……
각설하고,내가 판사 노릇 그것 집어치우고엿장수 가위를 집어든 것은잘한 일이었네
- 윤제림 - * 효봉 스님(1888~1966)
출처: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이 있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선머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