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봄 미국 뉴욕 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 Brooklyn Academy of Music(이하 BAM)에서 카렌 브룩스 홉킨스 Karen Brooks Hopkins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짧은 커트 머리에 지금보다는 훨씬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펀드레이징 부서 인턴으로 이미 서너 달을 BAM에서 보내면서 공연 오프닝 행사와 각종 후원회 이벤트에서 카렌을 보았지만, 행사장 안내와 연락업무 등을 수행하는 인턴이 외부 주요인사나 이사회 임원들과 자리하며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어서 카렌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면담 신청을 해야 했다. 카렌의 사무실에서 나누었던 인터뷰는 전년도 전 미국을 흔들어 놓았던 9.11 이후 분위기가 경색된 거대도시 뉴욕과 향후 예상되는 공공 및 민간 지원의 축소 가능성, 이로 인해 요구되는 보다 전략적인 펀드레이징의 필요성과 당시 고민이기도 했던 예술조직의 '제도화'에 따르는 문제점, 예술기관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리더십의 요건 등에 대한 것이었다. BAM의 예술적 프로그래밍을 책임지는 조 멀릴 Joseph V. Melillo로가 친근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리더십 스타일이라면, 기관의 대표로 조직운영과 펀드레이징을 책임지는 카렌 브룩스 홉킨스는 단연 냉정함과 정확함으로 무장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직원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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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0일(금) 오후 2시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던 “BAM 대표 카렌 홉킨스 & 저작권 법률가 로널드 파이너 첫 내한특강!”에서 강연하고 있는 카렌 브룩스 홉킨스 |
2008년 10월 서울에서 카렌을 다시 만났을 때 어깨까지 늘어뜨린 단발머리에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눈빛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주요예술인 초빙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아트마켓 시기에 맞추어 초청되어 '마케팅과 펀드레이징 사례에 따른 BAM의 전반적인 구조와 경영'에 대한 특별 강연을 하는 자리였다. 이번에는 뉴욕주 변호사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전문변호사로 일하면서 BAM의 이사회 임원직을 20년 이상 맡고 있는 카렌의 남자친구이기도 한 로널드 파이너 Ronald E. Feiner가 동행하였고, 그는 카렌에 이어 '공연예술관련 지적 재산의 소유권과 이용'에 관한 특강을 했다. 이들은 뉴욕에서도 소문난 커플로 모든 공식행사뿐 아니라, 블룸버그 뉴욕 시장의 비공식적인 저녁 초대의 자리에도 언제나 동행하는 사이라고 한다.
1979년 카렌이 BAM에 입사했을 때, 그녀의 직책은 펀드레이징 부서의 어시스턴트였다. 당시 BAM의 대표이자 책임 프로듀서였던 하비 리히텐슈타인 Harvey Lichtenstein은 이후 그녀와 20년간 일하면서 카렌의 "보수적인" 예산편성 방식과 탁월한 펀드레이징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1999년 은퇴할 때 그녀에게 대표의 자리를 위임했다. 책임 프로듀서의 직책은 조 멀릴로가 맡게 되면서, 1967년부터 32년간 BAM을 이끌어 오던 하비의 자리는 카렌과 조 두 사람이 양분하여 맡게 되었다.
BAM의 미션은 "국제적, 지역적 커뮤니티와 적극적으로 관계하면서, 탁월하고 부단히 진보하는 공연 및 영화예술 센터를 지향하는 것이다. BAM의 지속적인 목표는 다양한 지역에서 방문하는 연간 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도전적이고 풍부한 미적, 문화적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도록하는 독특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BAM의 오페라 하우스와 시네마테크 및 사무실이 들어앉은 피터 제이 샤프 빌딩Peter Jay Sharp Building은 설립 당시 취지로부터 변치 않는 기능을 수행하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08년 가을 현재의 위치인 포트 그린 Fort Greene에 설립되었다. 1861년 브룩클린 하이트에 세워졌던 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 화재로 전소되어, 1908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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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M 전경
(사진출처: 카렌 브룩스 홉킨스 특강자료 PPT 자료 중)
* 1978년 뉴욕시 역사유적보존위원회는
BAM 빌딩을 역사지구로 지정하였으며,
시는 BAM으로부터 빌딩 사용에 대한 사용료로 매년 $1을 받고 있다.
사진의 전경은 2004년 리노베이션 이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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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에 이 곳은 엔리코 카루소, 이사도라 던컨, 아르투로 토스카니와 같은 당대유명한 아티스트을 소개하는 뉴욕의 이름난 뮤직홀 이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도심의 예술공간들이 위기를 맞고, 브룩클린 지역이 쇠퇴하면서 그 명성도 잊혀지게 되었다. 1967년 하비 리히텐슈타인이 BAM을 맡을 당시, 시의 소유였던 BAM은 지역 사립고등학교의 가라데 수업이 열리고, 일각에서는 이 건물을 헐고 테니스장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공연장으로서 그 존재의미가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은 BAM이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BAM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BAM을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한 공연예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BAM을 당시 뉴욕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규모의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한 스펙터클을 소개하는 극장으로 만들어 맨하탄의 관객들이 기꺼이 브룩클린 브리지를 건너 BAM으로 찾아오게끔 하는 극장의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BAM의 대표와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리히텐슈타인은 첫 해에 알반 베르크 Alban Berg의 실험적오페라 "룰루" Lulu, 머스 커닝햄 컴퍼니의 뉴욕에서의 첫 메이저공연, 미국에서의 공연기회를 얻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유럽을 떠돌고 있던 줄리안 벡Julian Beck의 리빙 씨어터 Living Theater의 귀국 공연, 트와일라 타프 Twyla Tharp, 예르지 그로토프스키 Jerzy Grotowski, 로버트 윌슨, 피터 브룩의 "한여름 밤의 꿈" 등을 무대에 올렸다. 당시만 해도 머스 커닝햄의 공연은 일반 대중의 이해와 인기를 얻기 전이어서 2,000석이 넘는 BAM 오페라 하우스 객석에 기껏해야 400명과 500명의 관객들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텐슈타인은 뉴욕과 유럽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BAM 무대를 통해 소개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시도는 1981년 필립 글라스의 오페라 "사티야그라하" Satyagraha의 만원사례를 통해 성공으로 증명되었다. 필립 글라스의 '인물 삼부작' Portrait Trilogy 오페라 그 두 번째 프로젝트였던 "사티야그라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마하트마 간디의 젊은 시절에 관한 오페라로, BAM 오페라 하우스 무대를 통해 미국 초연 공연되었으며, 전석 5회 공연이 모두 매진사례를 기록하면서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한 BAM의 노선과 역량이 뉴욕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수용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립 글라스는 인류 역사를 바꾼 인물들을 오페라로 그려낸 '초상화 삼부작' 프로젝트로 유명한데,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해변의 아인슈타인" Einstein on the Beach (1976)으로 필립 글라스와 로버트 윌슨, 루신다 차일즈의 협업으로 유명한 작품이며 1984년 BAM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1983년 슈트르트 주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이집트 파라오 "아크나텐" Akhnaten에 관한 것이다.)
Satyagraha by Philip Glass ▶
ⓒ Tom Caravaglia (사진출처:www.andante.com/article/article.cfm?id=17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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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시작된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 Next Wave Festival은 이와 같은 리히텐슈타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대한 성공이었다. 유럽을 위주로 전 세계적으로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한 공연예술작품을 소개하는 프리젠터로써 BAM의 인지도를 미국 내에서 확고히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은 시작과 함께 BAM의 정규 프로그램으로서 확고한 명성과 위상을 굳혔으며, 뉴욕 타임즈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현대 실험공연 쇼케이스"라고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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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의 한 해 시즌은 9월에 시작하여 12월까지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과 2월부터 5월까지 스프링 시즌으로 구성된다. 여름 동안은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료 야외공연이 개최되고, 연중 영화상영과 BAMcafé Live 공연, 인문 교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2008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은 9월 말에 시작하여 12월까지 총18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은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를 소유하고 있는 알트리아 그룹 Altria Group을 대표 후원사로 두고 있으면서 포드재단으로부터도 중점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프로그램 중 몇 개만 살펴 보자면, 빌 T. 존스와 아니 제인 컴퍼니의 창립 25주년 기념공연(뉴욕 초연), 스티브 라이히 음악과 함께 하는 안네 테레사 드 키어스마커와 로사스 무용단 (미국 초연),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랄랄라 휴먼 스탭스 (뉴욕 초연), 피나 바우쉬 탄츠테아터 부버탈의 도시 시리즈 연작 중 인도의 춤과 문화에 대한 작품 '대나무 블루스' Bamboo Blues(미국에서는 BAM에서만 공연키로 협정) 등이 공연된다. |
▲ A Quarreling Pair, Bill T. Jones/
Arnie Zane Dance Company
(사진출처: 카렌 브룩스 홉킨스 특강자료 PPT 자료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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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의 2009년도 봄 시즌은 블룸버그 통신을 대표 후원사로 두고, 총 8편의 연극, 무용, 음악공연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오프닝 프로젝트는 삼 년에 걸쳐 연간 두 편씩 고전 연극작품을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유통시킨다는 계획으로, BAM과 런던의 올드 빅 극장과 샘 멘데스 등이 소속된 닐 스트리트 프로덕션 Neal Street Productions 등 미국-영국의 세 개 기관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브리지 프로젝트 The Bridge Project로 문을 연다.
브리지 프로젝트의 첫 작품은 샘 스토파드 Tom Stoppard가 번안한 체홉의 '벚꽃동산' 세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 Winter's Tale가 샘 멘데스의 연출과 영국과 미국의 배우들에 의해 공연된다. 이외에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 안무의 밧셰바 무용단Batsheva Dance Company의 뉴욕 초연공연, 머스 커닝햄의 90회 생일을 기념하는 머스 커닝햄 무용단 공연(세계 초연),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의 미국 및 뉴욕 초연 공연, 알빈 에일리 무용단의 클래식 작품 및 신작 공연 등이 올려질 예정이다.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과 스프링 시즌의 공연 프로그램은 BAM의 하워드 길만 오페라하우스Howard Gilman Opera House(2,109석)와 하비의 이름 붙인 하비 리히텐슈타인 극장(874석)에 올려진다. 이 공연 프로그램의 90%는 이미 다른 곳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대부분 BAM 무대를 통해 미국 혹은미국 동부지역에 초연되는 작품들이다. 이는 BAM이 제작자producer로서의 역할 보다는, 세계적으로 볼만한 작품들을 뉴욕의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선보이는 프리젠터 presenter로서의 기능을 주로 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리젠터로서 BAM이 현재의 명성을 일구어 왔다는 사실은 BAM이 장기적으로 일관된 프로그래밍 기획력을 유지하면서 성공적인 마케팅과 펀드레이징을 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대관 위주로 운영되는 국내 공연장에서 충분히 벤치마킹 할 수도 있는 시사점을 제안한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극장에 올려지는 모든 작품은 그 극장의 도장이 찍힌 작품으로 보여질 뿐, 어떤 작품이 극장에서 자체 제작한 것인지, 어떤 것이 기획 대관된 것인지, 혹은 단순히 대관되어 공연되는 작품인지 알 수가 없다. 굳이 자체 제작하거나 기획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극장이 대관을 통해 올리는작품에 일관되게 질을 담보하고자 노력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과 사전에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면 극장을 찾은 관객은 비교적 만족스런 경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상 두 개 공연장 외에, BAM에는 4개의 영화상영관(4개관 총 752석)을 자랑하는 로즈시네마 Rose Cinemas가 있다. 덕분에 BAM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있는 미국 유일의 공연예술센터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링컨센터의 경우 링컨센터 영화 소사이어티 Film Society of Lincoln Center가 운영하는 월터 리드 극장 Walter Reade Theater에 한 개의 상영관이 있다. 현재 $45,000,000 규모의의 자본 및 영구기금 캠페인을 통해 링컨센터 캠퍼스 전체에 걸친 공간 리노베이션이 추진 중에 있는데, 리노베이션이 끝나면 링컨센터 영화 소사이어티는 두 개의 영화 상영관, 전시를 위한 갤러리 공간, 카페와 함께 유동적인 원형극장 공간 등을 보유하게 될 예정으로, 이를 통해 이전까지 월터 리드극장의 협소한 공간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실험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프로그래밍과 교육 프로그램이 가능하게 될 예정이다. 링컨센터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미국에서는 예술기관의 복합적 기능이 중시되면서 단지 한 가지 장르의 예술을 지향하기 보다는 다각적인 매체와 예술장르를 활용하여 보다 다양한 관객층이 섞이고, 통합되도록 하는 예술공간의 다각화를 지향하고 있다.)
작년 2006-2007 시즌의 경우, 로즈시네마는 기부금 수입을 제외하고 입장료 및 각종 렌탈 수입 등 BA에서 직접 벌어들인 수입의 22%에 해당하는 입장료 수입을 벌어들였으며, 20만 명에 달하는 유료관객을 끌어들였다. 이번 특강을 통해 카렌은 명실공히 성공적이라고 평가 받는 공연예술기관으로써 BAM이 극장시설을 보유하고 영화 상영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에 대한 효과성과 중요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영화상영관의 존재는 재정자립도에 실질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공연장의 관객개발에 무한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봄 시즌과 가을-겨울의 공연 시즌이 끝나 극장이 한산해 지는 여름 기간 동안 로즈시네마는 대중들로부터 BAM의 존재를 잊혀지지 않게 하며, 꾸준히 관객을 BAM으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연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대중들이 문턱이 높은 공연장 보다는 마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상영관을 통해 먼저 BAM을 경험토록 함으로써, 향후 공연관객으로 개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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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M 로즈시네마 Rosecinema
(사진출처: 카렌 브룩스 홉킨스 특강자료 PPT 자료 중) |
이러한 BAM의 공연과 영화 프로그램은 뉴욕의 어린이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상시 연계되어 진행되며, 일반인과 전문가들을 위해서는 외부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도서상 National Book Award과 공동으로 "먹고, 마시고, 문학을 읽자" Eat, Drink & Be Literary라는 문학프로그램이 카페 BAMcafé에서 개최되며, 공연과 영화 프로그램을 위주로 진행되는 BAM의 특성 상 상대적으로 만나기 힘든 브룩클린 지역의 아티스트들을 위한 예술프로그램 BAMart이 기획, 운영되고 있다.
카렌에 의하면 BAM의 평균 관객은 '뉴욕에 거주하는 40세 이상,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소지자로 풀타임 직장에 다니고 있는 백인'이라고 한다. 공연 프로그램에 대한 평균관객 연령 45세, 영화 프로그램의 경우 38세로, 공연과 영화 프로그램 전체, 즉 BAM을 찾는 평균관객의 연령은 41세라고 한다. (BAM 공연관객의 평균 연령 45세는 뉴욕의 평균 공연예술 관객에 비해 20세 이상 젊은 나이라는 것이 카렌의 설명이다.) 성별분포에 있어서는 공연 평균관객의 61%, 영화의 경우 55%가 여성으로, 평균 58%의 관객이 여성으로 나타났으며, 인종적 분포도에 있어서는 73%가 백인으로 나타났다. 브룩클린은 뉴욕시 전체 흑인인구의 40%에 해당하는 흑인인구가 거주하는 흑인인구 최고 밀집지역으로, 이는 1930년대 지하철 A 라인의 건설로 인해 유입된 흑인노동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에서 연원 하는데, 이러한 인구통계적 조건은 브룩클린의 사회경제적이며 문화적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형성하면서 복합공연예술 공간으로써 BAM의 프로그래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여진다.
브룩클린 지역의 흑인 커뮤니티와 보다 대중적인 취향의 젊은 층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BAM은 지역의 아티스트와 주민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연중 프로그램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BAMcafé에서 밴드와 DJ들 초청하여 록큰롤, 재즈, R&B, 월드뮤직 공연을 개최하며 인근 주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름아닌 백인 위주의, 고급 공연예술 극장이라는 BAM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장래 관객이 될 수도 있는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방문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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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이 지역 커뮤니티와의 적극적인 교류와 융합을 시도하는 프로그램 중에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급진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접수' TAKEOVER 프로그램이다. 브룩클린 지역 커뮤니티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보자르 스타일의 이 유서 깊은 BAM 빌딩을 황혼에서 새벽까지 '접수'하여 분탕질을 쳐도 되는 날이 바로 이 날이다. 오후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진행되는 이 '접수' 의식은 4개 상영관에서 밤새 마라톤 영화상영이 개최되고, BAMcafé에서 DJ의스핀과 함께 논스톱 댄스파티가 벌어지고, 이것들에 지친 사람들이 로비 구석구석에 각종 게임(Wii, 탁구, 아케이드 게임 등)을 하며 휴식을 취하다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시작하는 유명밴드의 공연에 참여하면서 정점에 달한다.
◀ BAM 커뮤니티 프로그램 R&B Festival at Metro Tech (사진출처: www.bam.org) |
카렌이 BAM의 부대표 executive vice president로 있던 1991년경만 해도 BAM에는 영구기금(endowment fund: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부된 자산으로 만들어는 영구적인 기부신탁기금으로, 이 기금에서 나오는 수입금은 당초 약속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영구적 기금)이 없었다. 그 이전에는 데이빗샐 David Salle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기부한 작품을 판매한 비용이 BAM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1992년부터 모금을 시작한 BAM의 영구기금은 2008년 현재 $72,000,000이 넘었으며, 총자산은 $93,726,000에 달하여 BAM은 안정적인 재원기반을 보유한 뉴욕의 대표적 공연예술 기관으로써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예산운영은 이제 먼 이야기로 기억될 뿐이다. BAM과 같이 국제적 아티스트와 국내 아티스트를 아우르며 미학적 영역에 대한 실험을 위주로 프로그래밍이 되는 공연장의 경우, 영구기금의 중요성은 실로 심대하다. 일반적으로 개인과 기업, 공공기관으로부터 받는 기부금과 지원금이 연간 무대에 올라가는 예술적 비용을 지출하는데 충당되지만, 영구기금의 경우 기부금이 들어오면 기금으로 예치되어 자산증식을 극대화 하는데 투자되고, 이 중 극히 일부만이 매년 운영비로 사용된다. BAM의 경우, 운영예산의 5%에 해당되는 경비가 영구기금에서 나온다. 이러한 영구기금의존재는 향후 수입을 예측할 수있도록 하면서 경제적 위기나 예기치 못한 사고 시 든든한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기금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7월에 시작하여 6월에 종료한다. 작년 2007-2008 시즌 한 해 동안 BAM의 살림살이를 다음과 같이 흑자를 기록했다: BAM은 $ 22,217,000의 순수 기부금을 유치하였고, 입장권 판매와 공간대여 등으로 $16,610,000 가량을 벌어들여 $38,827,000의 총수입을 올렸다. 이는 작년에 비해 $1,008,000 가량 증가한 것이다. 반면 총지출이 $38,475,000로 한해 운영이 $352,000의 흑자를 기록했다.
BAM은 창조적인 펀드레이징 전략을 수립하여 기업과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쉽을 구축하면서 나아가 이를 마케팅과 관객개발에까지 연계시키고자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쓰고 있다. BAM의 카페와 로비의 인테리어를 위해 인근에 전문매장을 가지고 있는 웨스트 엘름 사 West Elm의 패션 가구와 인테리어 서비스를 후원 받아 BAM 공간의 스타일과 고객편의성을 제고한다.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웨스트 엘름은 BAM이 보다 젊고 감각 있는 공간으로 접근 가능한 곳으로 느끼게끔 한다.
또 다른 예는 브룩클린 지역의 빌딩 붐을 촉진시키면서 동시에 이를 적극 활용하여 극장의 인지도와 관객저변을 증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브룩클린 지역의 부동산 개발업자들로 하여금 BAM의 프로그램과 존재를 십분 활용토록 하여 판매활동에 도움을 주면서, BAM에서는 이들 후원을 통해서 펀드레이징과 잠재관객 개발이라는 이중전략을 연계하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60에서 $500 하는 BAM 시네마 클럽의 멤버쉽을 구입하고 이를 BAM에 대한 기부금으로 처리한다. 이렇게 구입한 BAM 시네마 클럽 멤버쉽을 부동산업자들은 아파트를 구매하는 구매자에게 선물로 제공한다. 일종의 문화상품이랄 수 있는 이러한 시네마 클럽 멤버쉽은 다른 부동산업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유리한 프리미엄을 BAM을 후원하는 업체에 부여해 줌으로써 거래상 혜택을 보도록 해주며, 고객들은 거래와 함께 인근 예술센터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멤버쉽을 선물 받고, BAM은 영화라는 보다 익숙한 매체를 통해 향후 공연장의 고객, 기부자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잠재고객들을 직접 (혹은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잠재적 고객을 실제 고객으로 만드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높다는 마케팅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펀드레이징과 마케팅이 결합된 전략은 기업의 후원과 잠재관객 개발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예술기관에 더 없이 유리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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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의 판촉용 홍보전단에 BAM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문구들을 다음과 같이 박아 넣기도 한다. "당신이 사는 곳은 BAM에서 불과 한 블록 거리입니다", 혹은 "당신은 BAM에서 불과 몇 걸음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등. 최근 들어 기업들의 예술기관에 대한 후원의 방식이 자선이나 사회공헌의 방식에서 문화예술 마케팅으로 변화해 가는 시점에서 이러한 BAM의 펀드레이징과 마케팅 전략의 연계 전략은 벤치마킹 할 만하다.
◀ BAMcafe에서 개최된 소액기부 기업 파트너쉽 감사 파티
(사진출처: www.bam.org) |
카렌 브룩스 홉킨스는 29년째 BAM의 펀드레이징과 기관운영을 맡아오면서 BAM의 재정적인 안정과 기관으로써 위상을 현재와 같이 정립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장본인이다. 그녀의 뒤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50명이 넘는 BAM의 이사진이 포진해 있으며, 알란 피쉬맨 Alan Fishman과 같은 금융계의 거물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BAM의 이사회 멤버가 되면 연간 최소 $50,000의 후원금을 기탁해야 한다고 하는데, 웹사이트 제작 운영이나 법률자문 서비스와 같이 현물기부in-kind contributions나 특정한 용역서비스를 기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뉴욕시 자선활동의 든든한 기반이면서 미국 서부 전체에 있어서 점점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월스트리트의 붕괴는 뉴욕 전체의 문화예술기관에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요즘과 같은 신용위기 경제난국 상황에 기업의 자선활동은 후퇴하고, 예술기관들에 대한기부금 액수는 곤두박질 치게된다. 기업은 우선적으로 예술기관에 대한후원기금을 축소하고 자선활동을 줄이고, 예술기관으로부터의 후원요청에 대해한동안은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침체와 함께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이로 인해 공연장과 같은 예술기관의 수입이 줄고, 수입의 감소는 기업의 후원을 더욱 필요하게 만들지만, 시장의 경색은 기업 차원의 후원금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의 개별적인 후원의사와 후원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사기업을 모태로 하는 민간재단으로부터의 지원금도 줄어들게 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가속된다.
이에 대하여 예술기관은 기존에 받던기업 후원을 지속할 수 없는 데에 따르는 적자해소를 위해 여러 방법들을 시도할 것이다. 먼저, 경상운영비를 10% 절감하는 방법이 있다. 조직 내 가능한 여타 경비 절감 정책을 쓰면서 최악의 경우에 조업단축 및 직원 일시해고, 필수직책이 아니면 직위를 공석으로 두는 인력운영 상의 압박이 이러한 방법에 포함된다. 실제로9. 11 테러 직후 BAM에서도 2주간의 직원들 급여가 지급되지 못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기관에서는 기업으로부터의 후원금 결손액을 만회하기 위해 입장권 가격이나 주차료를 얼마만큼이나, 언제부터 올려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을 시작한다. 혹은 비상시를 위해 묻어두었던 예비비를 결손금 충당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꺼내어 써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들로도 적자폭이 메워지지 않는다면 이사회에서는 적자의 수치를 공표하고, 기관의 노력으로 도무지 메울 수 없는 결손금 충당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펀드레이징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펀드레이징은 기관의 위상과 직원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고, 향후 기관의 운영에 대한 불신감을 야기시킨다는 절대적 취약점이 있다.
이러한 적자를 불러오는 일련의 도미노 중 가장 골치 아픈 난제는 다름아닌 연방이나 주, 시 정부로부터 약속 받은 보조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다. 전년도 주나 시 정부로부터 받았던 지원금을 계속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암묵적 전제 하에 예산을 수립하였다가 예상한 보조금이 삭감되는 경우, 보조금의 차액에 대해 여타 기업이나 거액기부자들이 지불보증 해줄 수 없는 경우, 예술기관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월스트리트에서시작된 신용위기의 여파로 뉴욕시 역시 BAM에게 약속한 지원금 중$70,000을 삭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얘기를 하는 카렌은 의외로 담담했다. 얼마 전 9. 11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산전수전을 이겨낸 이 백전노장은 오히려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결연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자신이 평소 줄기차게 필요성을 주장하고 관심을 쏟아온 영구기금endowment fund 조성과, 다년간기부금multi-year donation plan 유치가 없었다면 도무지 불가능했을 것으로, 남의 나라 이야기로 끝나지만은 아닐 거라는 걱정이 드는 대목이었다.
"뉴욕에서 가장 능력 있는 펀드레이저"로 평가 받는 카렌 브룩스 홉킨스는 아울러 한국의 현실에서 활용해 볼만한 펀드레이징 전략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의 501(C)(3)와 같이 비영리단체 지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면서 세제 혜택과 기부금품 모집을 인정해 주는 법적 장치가 없으며, 또한 기부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과 기부문화, 기부전통에 있어 미국의 경우와 다르다. 이는 BAM이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기부금품 모집 방식이 한국에 단순히 적용되기 힘든 이유기도 한데, 이에 대하여 카렌은 기부금 요청보다는 서비스나 프로그램 판매를 위주로 상호 교환적인 관계 맺기를 조언한다. 클럽운영이나 콘서트, 파티 등 일정한 회비를 받고 행사를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에게 자발적인, 하지만 그들이 원하고 흥미로워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파트너십을 맺게 되는 지역의 각종 업체들, 레스토랑, 기업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후원요청 및 현물 기부를 기대해 볼만하다. BAM의 경우, 특정 기업의 와인과 맥주가 BAM의 공식 후원사로 되어있어 행사 때마다 공식와인과 맥주가 무료 제공된다고 한다. 이러한 클럽과 콘서트, 파티장에는 그 지역의 저명인사나 유명인, 스타들을 초대하여 유료 입장한 관객들과 섞어놓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방법은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잠재관객층을 그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이들을 유인하고 개발하여, 종국적으로는 이들을 유료관객화 하고, 향후 기부자로 개발한다고 하는 단계적 관객 개발전략을 염두에 두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BAM은 현재의 피터 제이 샤프 빌딩과, 풀턴 스트리트Fulton Street에 있는 하비 극장 빌딩에 이어 조만간 250석의 소극장 공간과 4개의 상영관이 있는 별관을 얻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BAM의 인턴을 하던 2002년까지만 해도 주위에 예술관련 기관이라고는 라파예트 아베뉴 Lafayette Avenue 건너 마크 모리스 댄스그룹 Mark Morris Dance Group이 유일무이 한 것이었다. BAM에서 은퇴한 하비 리히텐슈타인이 책임을 맡고 있는 BAM 지역개발주식회사 BAM Local Development Corporation는 포트 그린 지역을 문화특구로 재개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BAM 인근에 극장, 박물관, 공공 도서관, 댄스 스튜디오, 갤러리와 아티스트를 위한 주거 공간을 짓는 $630,000,000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BAM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100년을 겪어낸 BAM은 어쩌면 예술의 씨앗을 이제서야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혹독한 생존을 이겨내고 이제 숲을 꾸리기 시작한 것일지 모르겠다. 내년이면 BAM 재직 30년이 되는 대표 카렌의 역할도 함께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기관의 생존을 위해 고독하게 투쟁하는 CEO에서, 물을 주고 애정을 바치며 예술 토양을 가꾸어 가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진 그녀의 모습은 이러한 변화의 조짐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