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을 찾아갔다 바람맞다 – 청계산(국사봉,이수봉,석기봉,만경대,매봉)
1. 석기봉에서 조망, 왼쪽 뒤가 백운산
夜雪渾山暗 밤에 눈 내려 온 산이 어둡더니
朝寒特地添 아침 한기가 유난히 더하네
白疑群壑滿 뭇 골짜기마다 흰빛으로 가득한 듯
靑失一峯尖 뾰족한 봉우리에는 푸른빛 사라졌네
爽氣侵排闥 상쾌한 바람이 열린 문으로 스며들고
晴光入捲簾 맑은 햇빛 걷어 놓은 발로 들어오네
西厓千丈石 서쪽 벼랑 천 장 바위
刻畫哂無鹽 곱게 단장하고 무염을 비웃네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김문갑 오승준 정만호 (공역) | 2016
―― 동주 이민구(東洲 李敏求), 「청계산의 저녁 눈(靑溪暮雪)」
▶ 산행일시 : 2025년 3월 6일(목),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코스 : 금토마을,두레이골,국사봉,이수봉,석기봉,만경대,혈읍재,매봉,원터,청계산입구역
▶ 산행거리 : 도상 12.2km
▶ 산행시간 : 5시간 16분(10 : 12 ~ 15 : 28)
▶ 갈 때 : 세곡사거리에서 231번 버스 타고, 종점인 금토동삼거리에 내려 국사봉 들머리인 금토마을까지 걸어
감(종점 한 정류장 전에 내려야 했는데 잘못 내렸다)
▶ 올 때 : 원터에서 굴다리 지나 청계산입구역에 가서 전철 타고 옴
▶ 구간별 시간
10 : 12 – 금토동삼거리, 산행시작
10 : 40 – 금토(金土)마을 능안골 등산로 입구, 산행시작
11 : 01 – 두레이골 진입
12 : 17 – 국사봉 능선 안부
12 : 27 - 국사봉(國思峰, 542.0m)
13 : 08 - 이수봉(二壽峰, 545m)
13 : 34 - 석기봉(石基峰, 583m)
13 : 46 – 망경대(望京臺, 616m)
13 : 57 - 혈읍재(血泣-)
14 : 11 – 매봉(582.5m)
14 : 27 – 충혼비
14 : 50 – 원터골 쉼터
15 : 18 - 원터
15 : 28 – 청계산입구역, 산행종료
2. 청계산 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수원 1/25,000)
▶ 국사봉(國思峰, 542.0m), 이수봉(二壽峰, 545m)
청계산 변산바람꽃을 보러 나선다. 금년 봄은 예년보다 더디게 오는 것 같다. 재작년에는 3월 2일에, 작년에는 3월
4일에 갔다. 금년에는 2~4일 늦은 3월 6일에 간다. 아침 일찍 가게 되면 그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정오가 가
까워서 간다. 그들 군락지인 국사봉과 이수봉 사이 안부의 동쪽 골짜기인 두레이골(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표시
된 지명이다)을 가기가 쉽지 않다. 대개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금토마을에서 간다.
금토마을도 대중교통편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수서역 6번 출구에서 강남 06번이나 06-1번 마을버스를 타고 세곡
사거리 대왕파출소 앞 버스승강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고 버스승강장에서 231번 버스를 탄다. 이곳 버스승강장에서
금토동 가는 유일한 버스이다. 이번에도 종점인 금토동삼거리에서 내렸는데 잘못 내렸다. 한 정거장 전인 동문에서
내려야 했다. 이곳은 판교 테크노밸리 건물공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하다. 지도를 연신 들여다보고 확인하며 금토마
을을 찾아간다. 금토마을 가는 마을버스도 없고 택시도 오가지 않는다.
금토천을 왼쪽에 끼고 농로를 지나 그 끄트머리 마을에 들어선다. ‘금토마을’이라고 새긴 표지석 옆에 큼지막한
능안골 입구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국사봉 가는 등산로를 안내한다. 산불감시초소(오늘은 감시원이 분주하다)
지나 소로의 산길을 100m쯤 오르면 오른쪽 사면에 국가보안시설이라며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판이 있고 원형 철조
망을 둘렀다. 등로 벗어난 이 경고판이 두레이골을 가는 안내판이다. 낙엽이 수북하여 인적이 흐릿하다. 계속 나타
나는 경고판을 따라 철조망을 넘고 옅은 지능선 오르내리고 계곡에 내려선다.
계곡 건너면 오래된 청계산 유격장 가는 길과 만난다. 유격장 너른 교장을 지나고 계곡 양쪽 소로를 번갈라 오른다.
낙엽 밑은 얼었다. 눈밭도 지난다. 방금 전에 한 사람이 지나갔다. 나처럼 변산바람꽃을 찾아온 사람이리라. 전에
변산바람꽃을 보았던 공터를 자세히 살핀다. 지배(地背)를 철(徹)하도록 살핀다. 돋보기안경 쓰고 살핀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몇 번이고 살핀다. 계곡 건너편도 오르내리며 살핀다.
없다. 아무데도 없다. 확실히 없다. 내 앞서간 사람도 변산바람꽃을 보지 못했는지 머뭇거리지 않고 갔다. 그렇다고
이대로 온 길을 뒤돌아가기는 서운하다. 산이라도 얻자. 이제 산행이다. 출입금지 구간이고 인적이 드물어 등로가
여간 사납지 않다. 납작 엎드려 덩굴 숲을 무시로 뚫고 나아간다. 가뜩이나 변산바람꽃 빈 눈이라 발걸음이 팍팍하
다. 골짜기 벗어나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언 낙엽이 미끄럽다. 제자리걸음하기 일쑤다.
어렵사리 능선 안부에 올라서고 국사봉(國思峰)을 다니러 간다. 오르막길 0.3km가 빙판이거나 눈길이다. 아이젠
매지 않은 발바닥에서 미끌미끌한 스릴을 느낀다. 이윽고 국사봉이다. 젊은 등산객 한 분이 쉬고 있다. 내 먼저 수인
사 건네고 말을 걸었다. 변산바람꽃을 보러 두레이골을 올라 왔는데 그곳 말고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는 데를 알고
계시나요 하고. 자기도 방금 그곳에서 올랐다고 한다. 그곳 말고는 없다며 올해는 개화시기가 늦는 것 같다고 한다.
자기는 겨우 움트는 2개체를 보았다고 휴대폰을 꺼내어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잠자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이다.
이곳 국사봉은 다른 대부분의 ‘國師峰’과는 다른 ‘國思峰’이다. 김성태의 『신 산경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한의
국사봉은 77개이다. 표지석 앞면에 새긴 유래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의 충신 조윤(趙胤)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 벤치에 앉아 점심밥 먹는다. 김밥 한 줄과 커피다.
이수봉을 향한다. 음지 내리막은 빙판이고 양지 오르막은 진창이다. 아이젠을 맸다가 벗곤 한다. 이곳 등로 주변도
지난겨울 폭설의 피해는 대단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숱하게 꺾이고 쓰러졌다. 서초구청에서는 여러 명의 인부
를 동원하여 기계음 내며 정리작업 중이다. 455m봉 넘고, 왼쪽으로 청계사 가는 ┫자 갈림길 지나고 암봉인 500m
봉 돌아 넘고, 한 피치 길게 올라 이수봉이다. 우람한 정상 표지석 앞면에 새긴 이수봉의 유래이다.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여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3. 두레이골 초입
4. 청계산 유격장 교장 가는 길
5. 국사봉에서 바라본 망경대
6. 이수봉 정상 표지석
7. 멀리는 모락산(385m)
8.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안양 수리산 슬기봉과 태을봉, 앞 능선 오른쪽은 응봉
9. 멀리 왼쪽은 백운산, 오른쪽은 모락산
10. 멀리 왼쪽은 광덕산, 오른쪽은 백운산
11. 망경대
▶ 석기봉(石基峰, 583m), 망경대(望京臺, 616m), 매봉(582.5m)
등로는 평일이라 한적하다. 헬기장 지나고 완만하게 내려 임도 종점이다. 석기봉 오름길이 가파른 돌길이다. ┣자
망경대 도는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슬랩 오르고 사면 돌고 다시 슬랩 올라
석기봉 정상이다. 청계산 최고의 경점이다. 미세먼지가 많아 원경이 흐릿하다. 여기 올 때마다 미세먼지가 끼지 않
은 때가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멀리 광덕산과 백운산, 모락산, 수리산 슬기봉과 태을산에 이르기까지
농담의 가경이다.
망경대로 오르는 길은 군부대 철조망에 막혔다.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가파른 눈길 내리막은 고정 밧줄이
달려 있다. 돌길 기어오르면 망경대 바로 아래 좁은 공터가 망경대 정상 노릇한다. 조망이 훤히 트인다. 서울특별시
가 발행한 『서울의 산』(1997)에서는 망경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청계산 정상에 있는 석대를 망경대라 한다. 『과천현신수읍지』에 의하면 망경대는 만경대(萬景臺)라고도 하였는
데, 그 이름은 주위의 삼라만상 경치를 다 볼 수 있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망경대라 부르는 데에는 고려의 충신인 조견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견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청계산에 은거하였는데, 그는 이 망경대에 올라 멀리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달랬다고 한다.
조견의 초명은 조윤(趙胤)으로 (…) 이름을 견으로 고치고 자를 종견(從犬)이라 했으니, 나라와 임금을 잃고도 죽지
못하니, “개”와 같다 함이었다. 조견은 (…) 이곳 청계산에 들어 송도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쓰러져
자고 하니, 이를 전해 들은 사람들이 그의 슬픔에 동정하여 만경대를 망경대라 불렀다고 한다.”
망경대 북사면을 돌아내는 길은 설벽이다. 아이젠을 가져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아이젠이 없다면 한 발자
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온길 뒤돌아가야 한다. 한 발 한 발 살금살금 내려 망경대 도는 데크로드와 만나고 계단 통통
내려 혈읍재(血泣-)다.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이 훈구문벌과의 싸움에서 참변을 당하고 한 때 이 산
에 은거하여, 조견의 충절을 기리며 피눈물을 쏟았다고 하여 혈읍재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혈읍재에서 매봉 가는 길 0.7km는 평탄하다. 주릉 오른쪽 사면 푹신한 길을 한참 걷다가 한 피치 데크계단 오르면
매봉 정상이다. 너른 공터다. 전망대가 있으나 전망할 데가 없다. 매봉에서 △494.9m봉 헬기장 가는 길은 대단한
험로로 변했다. 흙 반죽에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길이어서다. 도중에 등로 벗어나 왼쪽 지능선 중턱에 있는 충혼비
에 들른다.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이 3주간의 지상훈련을 마치고 1982년 6월 1일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C-
123)에 탑승하여, 서울시 거여동 소재 강하장으로 이동하던 중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은 공군 수송기가 청계산 상공
을 비행하던 중 추락하였다. 이때 특수전교육단 교관 5명, 교육생 44명, 공군부대원 4명 등 53명이 사망하였다.
다음은 충혼비에 새긴 문구다. 비장하다.
忠魂의 숨소리
그대들의 흘린 뜨거운 피와 忠魂의 얼로
祖國은 살아 크게 숨쉬나니
그대들의 靈魂은 祖國의 山河에서
永遠히 살아 꽃피리라
그대들은 祖國을 사랑하고
또한 祖國은 그대들을 사랑하노니
거룩한 英靈들이여
祖國의 품속에서 고이 잠드소서
1982년 6월 2일 오후 2시 49분
△494.9m봉 헬기장에서 몇 미터 내리면 ┣자 갈림길이다. 두 길 모두 원터로 간다. 오른쪽 지능선을 내린다. 더
이상 진창은 없다. 긴 데크계단이다. ╋자 갈림길 안부에서 왼쪽 산자락 돌아간다. 낙엽송 숲길이다. 원터골 쉼터
평상에서 잠시 휴식하고 원터를 향한다. 임도 수준의 대로인 계곡 길이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봄의 교향악으로
들린다. 원터 노거수인 굴참나무 바라보고 청계산입구역을 향한다.
12. 멀리는 안양 수리산 슬기봉과 태을봉, 앞 능선 오른쪽은 응봉
13. 멀리 오른쪽은 모락산
14. 관악산
15. 앞은 응봉, 멀리는 안양 수리산 슬기봉과 태을봉
16. 뒤는 모락산과 안양 수리산 슬기봉, 태을봉, 앞 오른쪽은 응봉
17. 뒤쪽 가운데가 이수봉
18. 충혼비
19. 원터 굴참나무, 수령 278년, 수고 27m, 흉고 380cm
첫댓글 2년전 기억이 납니다. 변산아씨 덕분에 악수님과의 인연이 ... ㅎㅎ
제집의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올해는 작년보다 10일정도 늦는 것 같네요. 짧아진 봄만큼 들꽃들이 서둘러 한꺼번에 얼굴 내밀 것 같아 마음만 급해집니다.ㅋ
청계산에도 희귀한 꽃들이 있나 봅니다. 그냥 지나치는 꽃들에게도 다 이름이 있는것 처럼. 변산바람꽃. 나중에라도 사진 찍으시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