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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8. 17. 큐티
마태복음 10:1 ~ 4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열두 사도를 세우심
관찰 :
1)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예수님
- 1절.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들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차별대우 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이 제자가 되도록 연단하시고 권능을 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많은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제자들이 큰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능력 자체에 목적으로 두지 않으신 하나님은 그 초월적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제자들에게 큰 권능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예수님이 주신 권능은 “더러운” 모든 종류의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많은 귀신들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눌려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시간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의 시간이 “말세”가 된 것입니다. 그 시간에 주님은 제자들이 활발하게 모든 종류의 귀신들을 쫓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열두 사도들의 면면은 부족한 자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족할수록 하나님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죄 많은 세상에 서 인간도 사탄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권능을 주시고, 예수 그리그도를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2) 사도라 부름
- 2절a.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 앞 절에서는 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본 절에서는 “사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과 연관되는 개념으로서 ‘추종자’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즉 “제자”는 ‘지적, 영적으로 자신의 지도자에게 배우며 추종하여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12 제자를 비롯한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적용된 호칭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초대교회에서 매우 큰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3) 열 두 사도의 이름
- 2절b.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아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네 명이 먼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이 자세히 소개된 이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마태도 부름을 받는 장면이 소개되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경우는 그들이 부름받는 장면이나 동기 등에 대해서 언급이 없습니다.
- “시몬”은 그의 형제인 안드레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시몬”은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으로부터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라는 아람어 이름을 받았고, 그것을 헬라어로 하면 ‘베드로’가 됩니다. “시몬”은 주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졌지만 급한 성격을 가졌고,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 ‘남성적인’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안드레”에 대해서 복음서는 가장 기초적인 소개 외에는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고,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전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를 가진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한 것도 안드레 였습니다.
- ‘발꿈치를 잡음’이라는 뜻의 이름 ‘야곱’의 신약식 이름인 “야고보”는 초대 교회 초기에 헤롯에 의해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를 당했습니다.
- 야고보의 형제이며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지니는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와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아 많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삯꾼들을 두고 배를 여러 채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세베대의 아내는 아들들이 따르는 예수님을 여러 가지 면에서 지원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살로메”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이모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역을 오해해서 자신의 아들들이 예수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를 바람으로 예수님께 청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 3절.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며 ‘말(馬)을 사랑하는 자‘란 이름의 뜻을 지니는 “빌립”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벳세다 출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직업도 어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가 나다나엘에게 전도할 때 ’와 보라‘는 말로 전도했습니다. 빌립은 너무 계산적이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하기도 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감독인 폴리크라테스는 “빌립”이 아시아의 어느 로마 식민지에서 사역한 뒤에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바돌로매”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빌립과 함께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했다는 점에서 ‘나다나엘’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바돌로매”는 가나 출신이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만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 ‘쌍둥이’라는 이름 뜻을 지닌 ‘디무로’라는 아람어 이름을 가진 “도마”는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겠다고 할 정도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선뜻 믿지 못하는 강한 의심의 소유자였습니다. “도마”는 선교사로서 인도까지 가서 순교했습니다.
-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이름의 뜻을 지닌 “마태”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맛다냐’라는 히브리식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세리 마태로서 마태복음을 쓴 “마태”입니다.
- ‘사유’라는 이름 뜻을 지닌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다대오”는 ‘유다’의 다른 이름입니다.
- 4절.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댜 곧 예수를 판 자라”
- ‘가나나인’이라는 표현은 열심당원이라는 뜻의 아람어 형태입니다. “시몬”은 이스라엘의 주권회복 운동에 관여하고 있던 사람이라는 정보를 마태는 밝히고 있습니다.
- 12 사도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마태는 그의 행적에 대해서 부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후회하여 목을 매 자살한 비운의 제자였습니다. “가룟”은 그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여겨지지만 확실히 어느 지방을 의미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가르침 :
1) 열두 사도들의 면면은 솔직히 변변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부가 과반을 넘었고, 당시 매국노로 치부되던 세리가 있었고, 헤롯이나 로마에 빌붙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정치적 세력에 발을 담그고 있던 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그것을 자신들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보냄을 받음으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이들 열두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세상을 바꾸는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관점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막중한 사명을 받은 사도들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순교
a. 요한 =>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지금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 에베소 지역으로 추방되어 사역을 하다가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끓는 기름 솥에 던져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밧모섬에 유배되었고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했습니다. 그는 순교하지는 않았고 자연사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 모진 고난 속에 요한의 삶 자체는 이미 순교자의 삶을 산 것이었습니다.
b. 베드로 => 베드로는 당시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아그리파’로부터 박해를 받아서 성도들의 권유로 로마를 떠났는데 길을 가다가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예수를 만났고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답했고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체포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형을 선고 받았으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죄를 기억하고 자신은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는 머리를 아래로 하여 거꾸로 못 박아달라고 청했고, 이 요구가 수락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c. 야고보 =>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한 후 열두 사도들 중 최초로 순교했습니다. ‘헤롯 아그리파’가 유대 총독으로 임명된 후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을 목적으로 예수교인들을 매섭게 박해를 가하기 위해서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참수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d. 안드레 => 베드로의 형제로 가버나움에 살던 어부였고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소아시아, 스큐티아, 그리스에 복음을 전파하다가 튀르키에서 붙들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가 달린 십자가는 두 끝을 땅에 수직으로 박은 X자형이었다고 합니다.
e. 다대오 => 그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f. 빌립 => 빌립은 터키 소아시아의 헤리오 폴리스에서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A.D. 54년에 십자가형으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g. 시몬 => 시몬은 복음을 전하다가 페르시아에서 톱으로 몸이 두 동강 나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h. 바돌로매(나다나엘) => 바돌로매는 복음을 전하던 중 산 채로 칼에 의해 전신이 살가죽이 벗겨지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지는 등 갖은 혹형을 당하고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i. 마태 => 세리였던 마태는 A.D. 60년경 에디오피아에 있는 도시 나바다에서 비늘창(끝이 둘 혹은 세 가닥으로 갈라진 창으로, 도끼, 창, 갈고리를 하나로 묶어놓은 무기)으로 살해당하여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j. 맛디아 =>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가 된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 매질을 당하였으나 죽지 아니하여 후에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습니다.
k.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블레셋과 애굽에서 전도하다가 94세에 이집트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는 높은 성전 탑에서 아래로 던져도 죽지 않아 나무 망치로 머리를 맞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l. 도마 => 디두모라고도 불리는 도마는 태국의 파피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교도 제사장들을 격노케하여 인도 코르만델에서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순교했다고 합니다.
4) 예수님은 부족한 자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어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성령의 강림 속에서 성령 세례를 받고 완전히 변화되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죽도록 충성을 다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 열두 사도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키고 역사하셔서 이들의 순교의 삶을 이루신 예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적용 :
1) 예수님은 변변하지 않은 이들을 불러 제자되게 하시고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말미암아 죽도록 충성하게 하셨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범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굳건하게 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이 부르셨고, 그렇기에 주님께서 저를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로 이끌어 가실 것임을 믿습니다. 부족한 자이지만 주님이 위대하시기에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주님의 뜻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위대해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하게 되어 예수님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증거하는 존재가 되길 소원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저를 통해 이루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제 감정이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회복시키시고 더 놀라운 자리로 인도해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언제나의 소망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는 것이 언제나의 기쁨이고 은혜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