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심 광화문을 지나가다 보면 저절로 눈길 머무는 곳이 있다.
교보생명빌딩 외벽에 걸린 ‘광화문 글판’. 이 게시물의 크기는 자그마치 가로 20m 세로 8m인데, 1년에 네 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게시물을 갈아 붙인다. 거기에 기업의 홍보문구 따위는 없다.
서정적인 시의 한 구절을 따온 시구가 대부분이다. 이 짧은 문장이 시민들의 마음에 가닿은 지 20년을 훨씬 넘겼다.
시민들은 그 앞에서 설레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고요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금융권이나 자치단체에서도 이 ‘수법’을 차용해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광화문 글판 문안 선정위원회’ 위원은 시인·소설가·교수·언론인·카피라이터 등으로 구성된다.
문안은 꽤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위원들이 몇 개씩 고른 후보작들을 먼저 전자우편으로 회람한다.
회의가 열리는 날은 다가올 계절과 예측되는 사회적 움직임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다.
그다음은 무기명으로 서너 개의 추천작을 써내고, 다수의 지지를 받은 두 작품을 놓고 또 토론을 벌인다.
토론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또다시 투표를 거칠 때도 있다. 이렇게 선정된 문안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25자 안팎으로 글자 수를 조정해야 한다.
이 일의 실무를 맡고 있는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시인의 감각과 조절능력도 한몫 보태져야 한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로 우리를 적시는 광화문 글판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