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경보
아침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생각하려니
경계경보가 울렸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챙기고 대피하라는 거다.
이게 뭐지?
눈은 침침하고 수염도 더부룩한데...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지? 부산 그 글벗한테?
주머니에 돈은 있나?
아내는 이미 산책 나갔고, 아이들은 쿨쿨 자는데
연락하고 깨워야 하나?
열어놓은 노트북을 닫고 신용카드를 챙기려니
경보 해제란다.
그것 참!!
지난 먼 일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앞날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이와 달리 앞날을 가늠해보기보다 되돌아보는 것 자체에 관심할 때
이를 추상(追想)이라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삶의 외연(外延)이 넓어지기도 한다.
세월에 풀려나간 희로애락의 파노라마를 다시 말아 들여
펼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신활동이 왕성할 땐 부지런히 추억꺼리를 만들어나가다가도
육신이 쇠잔해지면 상대적으로 추상하는 일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현상에 고착되고 만다.
몇 가지 서사는 그것을 은유적으로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저주받은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되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주문을 어겨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며(창세기)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려내려고 저승에 내려갔지만
아내를 이승으로 데리고 나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주문을 어겨
오르페우스는 결국 아내를 살리지 못하고 만다(그리스 신화).
우리 신화에서도 탁발승에게 쇠똥을 시주한 시아버지와 달리
쌀을 시주한 그 며느리가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찰나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탁발승의 주문을 어겨
그 자리에서 돌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니
(한국문화상징사전 중 장자풀이)
모두 과거에 집착한 때문이었던 것이다.
오늘을 착실하게 경영해야 한다.
과거는 기억의 창고에 쌓아두고 앞을 보며 살아갈 일이요
미래를 위해 오늘을 너무 아껴도 안 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오늘을 꼭 잡으라 했지만
그의 노래에 주목하지 않는다 해도
살아있다는 의미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오늘을 착실하게 살아갈 일이다.
경계경보도 풀리지 않았는가.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화자를 통해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크툽(Maktoob)!”
세상사는 이미 씌어 진 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 씌어 진 대로라는 건 신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겠으나
그 섭리라는 건 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으니
결국 자신이 써나갈 뿐인 것이다.
어느 글벗으로부터 한번 다녀가라는 문자를 받고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봄꽃 한창인 때 틈을 내어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그 예전 달맞이고개를 함께 걷던 기분을 되살려보고 싶기도 했고
바다를 향해 달빛을 부르는 해월정사도 다시 들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나는 아무런 제의를 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기억의 곳간에 고스란히 들어앉아있으니
이번엔 그네의 의향대로만 따라볼 양이었다.
그건 그네의 오늘을 위한다는 나의 배려도 숨어있는 것이었다.
기장의 곰장어 명가에 들려 짚불구이를 즐기다가 멸치어장으로.
간절곶으로 오륙도 앞바다로 도예원으로.
그러다가 언양 5일장으로 울진 반구대로 태화강 대숲 십리길로...
이렇게 새로운 곳을 찾아보게 되었지만
나는 둘러보는 내내 그 예전의 발길이었던 용두산 아래 찻집으로 초읍공원으로.
해월정사 용궁사로 청사포로 기억을 더듬어 나갔던 것이다.
여정을 마치고 숙소를 찾아 묵으려니 안내실 앞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Mak toob Carpe Diem’.
이게 무슨 뜻이냐고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모른다는 것이었다.
저녁차를 타고 혼자 올라오려니 허전한 구석도 있었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안착문자를 보냈으니
“한 번 안아주고 왔어야 하는데...”
하지만 답신은 이러했다.
“안아줄 마음은 있었나요?”
이 화창한 봄날에 나는 멀리 남녘 이곳저곳을 누비며 추상 하다 돌아왔지만
그건 또 다른 날의 추상거리로 다시 증폭되리라.
목련꽃 그늘 아래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던 사월
이젠 그 그늘 아래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네
구름꽃 피는 언덕 위에서 피리를 불리라던 사월
이젠 냇가에 앉아 노들강변 무정세월을 부르네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던 사월
이젠 돌아와 귀거래사를 쓰네
아, 빛나던 꿈의 계절아
이젠 툭 툭 터지는 꽃들을 보다가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꽃잎을 보네.
(사진은 경계경보에 우물쭈물하는 물새들이다.)
첫댓글 난석님~
저역시도 경계 경보에 놀랐습니다.
울림의 소리도 다르고 이상하다 느꼈는데
금방 경보 해제라고 나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행사도 많았든 오월의 마지막 날
멋지게 보내세요.
북한의 김정은때문이었네요.ㅠ
말썽ㄲᆢ러기.
오늘을 너무 아끼지 말라...
이 한 줄을 건져 갑니다~~^^
네에 오늘이 살아있는 삶이지요.
난석님의 세월과 거의 같은시대 살아 온 과거사 또한 공감대도 많은것 같네요.
경계경보 사건이후 처음 느낀 깨우침이 있었답니다.
뒤숭숭한 분위기로 동료들이 모여 화제만발 그 중 며느리교사 한 분의 말씀.
제일먼저 시부모님들이 어찌나 설치고 두려워하며 허둥대는 모습에 기가 막히더라고.
손주 손녀 아들 며느리 안중에도 없는듯 두 노인 서로 챙기는데 (해제 소식에 죽을 뻔 했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며) 정이뚝 !
살만큼 살아오신 분들이 어쩜 그리도 삶의 애착이 강한지 딱해 보이더라며 시부모 흉?을 보더라구요.
나이 먹으면 나이만큼 나이값을 해야 하는데 라며 속으로 쫌 부끄럽기도 한 순간이었답니다. 나이값이란 무엇일까요 ?
네에 그 순간에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걸 바라보는 선배님의 넉넉한 마음이 마음에 듭니다.
오래전에 읽은 필리핀의 신부 페페의 글이 떠오르는데요, 한백년 살고도 마지막엔 하루도 못 산것처럼 발버둥을 친답니다.
세상사람들을 그렇게 나무란 것일텐데요 저는 얼마나 초연한가?를 생각해보기도 하네요.
마음 넉넉하신 컴사랑 선배님
오늘도 여유있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북에서 핵발사 때문이라는데
요즘세상에 피하라고 하면 어디로 피할 것인가?
다 같이 앉아서 죽든가 서서 살든가 해야겠지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전쟁중에 있느니...
그러게요.
사실 피할 데도 없지요.
그저 해프닝이길 바랄뿐이지요.ㅠ
그냥 무서워요
어디로 대피 하나요
깊은 지하철역으로 피해야 하는지 ..
그게 한사람때문인데
사실 그사람만 아니면 현재가 태평천국이지요.
난석 선배님
저도 경보 문자보고
놀랐어요
잠자는 딸 깨울까 하다
조금 있으니 경보 오류
황당했지만 안심
감사했지요.
그래도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다행이지요.
카르페 디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순간을 충실히
지금을 즐겨라 뜻이라고 알고있어요.
저는 늦잠 자느라 몰랐구요.
카페 글 보고 헤프닝이 일어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거 단순 헤프닝은 아니고
간담 서늘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한 사람이 골치덩어리입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전쟁이 나면 가족끼리 같이 있고 싶네요
부산의 정겨운곳 다녀 오셨군요
잠시 부산으로 내려갈까, 생각해봤지만
생각뿐이지요.
카르페디엠 !
언젠가 제가 메모한 글에 이 글이 들어있습니다
저는 이글을 오늘을 즐겨라 또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라고
명명하며 가슴에 담아둔 글이었죠 오늘 여기서 선배님을 통하여
오늘을 꼭 잡아라라는 글을 접하며 그래 오늘을 즐겁게 잡자
그래 오늘을 행복한 날로 만들며 살아가자 라고 다시 담아봅니다
좋은 글에 머물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