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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라는 자연의 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분리되어 오랜 시간 동안 상이한 역사를 갖게 되었다. 에티오피아,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48개 국가로 이루어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블랙아프리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인구의 대부분이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하라 이남 지역은 전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은 서구 열강들의 오랜 식민 지배를 거치며 종족, 종교, 역사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국경선이 획정되었고, 그로 인해 현재까지 끊임없는 분쟁과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서아프리카 말리, 에티오피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지부티, 콩고 등을 포함한 많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그간 수없이 발생한 내전들은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의 요인인 동시에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을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들 중 하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25년 동안 사헬(Sahel)지역1)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이 지역 거주민들이 심각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또한 지역민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그림 1>사헬 지역
자료: Encyclopedia Britannica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치·경제적 환경에 놓인 북아프리카는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종적으로는 아랍종족과 베르베르인이 혼재하고 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마주보고 있는 북아프리카 지역은 오래전부터 그리스, 로마, 이슬람 국가들과 지중해를 통한 교류를 이어왔으며, 현재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이주하려는 아프리카인 이주 희망자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유럽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모여드는 아가데즈
아프리카인의 유럽 이주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병력 확보의 필요성과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19세기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크게 부족해진 노동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서구 열강들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시행되었다. 반면 최근 아프리카인들은 보다 나은 삶의 영위, 또는 앞서 언급한 끊이지 않는 내전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해 자발적인 이주를 선택하고 있다.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특히 리비아는 사하라 이남 지역에 위치한 조국을 떠나온 아프리카인들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환승 국가들이다. 이주 희망자들이 환승국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하라 사막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니제르에서 가장 큰 주(州)인 아가데즈(Agadez) 주의 주도(州都) 아가데즈(Agadez)가 가장 큰 환승 도시 역할을 해왔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관문(Gateway to the desert)’의 역할을 담당해 온 니제르의 아가데즈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문화 및 경제교류의 중심지로 15~16세기 도시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하지만 2007~2009년 투아레그(Tuareg)족의 반란 이후 치안 부재로 관광객이 급감하게 되면서 아가데즈의 관광산업은 활기를 잃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가데즈 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업 종사자들의 수입은 큰 타격을 입게 되지만, 대신 이주민 관련된 산업이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이주민 버스 운행, 빈민가에서의 이주민 대상 주거 임대, 이주민 매매업자, 이주민 체류 기간 동안의 각종 물품 구매, 환전소 등 비록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비공식 경제를 이루고 있지만 이주산업이 아가데즈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아가데즈는 역사적으로 대상무역(隊商貿易, caravan trade)의 중심지이자 한때 ‘사막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가데즈는 관광지라기 보다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가려는 수많은 카메룬, 세네갈, 감비아, 기니 출신 이주 희망자들이 지중해 연안으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환승 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여타 국가들에 비해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되니제르는 내전과 테러가 계속되고 있는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에리트레아 국민들이 유럽으로 이주하거나 난민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밀려드는 도시가 된 것이다.
리비아를 대체할 환승국으로 떠오른 니제르
이미 오래전부터 이주민 유입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중해 북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유럽의 국경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해당 국가들에게 국경수비대, 해안경비대 역할 수행을 위한 장비와 훈련 등을 제공하면서 지중해를 건너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거나 지중해를 건너는 이주민을 발견할 경우 북아프리카 국가들로 송환하도록 하는 것이 그 골자다2). 그러나 민주혁명이라 불리는 2011년 ‘아랍의 봄’이 독재정권의 몰락을 불러오면서 튀니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역설적이게도 사하라 이남 국가들보다 더 커다란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EU의 수비대 역할을 자처하며 EU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아왔던3)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al-Gaddafi) 정권이 무너진 후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리비아는 사실상 이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4). 이처럼 리비아가 내부적인 혼란에 빠지며 더 이상 유럽의 국경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이주 희망자들은 다른 경로를 찾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는 니제르가 새로운 환승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니제르는 EU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EU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제공받으며 리비아를 대신하여 유럽으로 건너오려는 아프리카 출신 이주 희망자들을 통제해 주는 EU의 국경 수비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5).
아프리카발 이주민의 유입을 막으려는 EU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 간 비관세 제도 및 경제협력을 통해 역내 국가들의 경제 발전과 통합을 목적으로 1977년 창설된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는 회원국 국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어서 그간 니제르 입국에 큰 제한은 없었다. 그러나 2015년 11월 몰타 발레타(Valletta) 에서 이주에 대한 발레타 정상회담(Valletta Summit on Migration)이 개최되면서 서아프리카 국가 간 이동의 자유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EU와 아프리카 역내 70여 개국이 참여한 해당 회담에서 니제르가 공식적으로 리비아를 대체하는 이주민들의 환승국이자 유럽의 국경수비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회담 결과 EU는 아프리카 이주민 유입을 억제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조를 구하는 조건으로 아프리카 개발을 촉진하는 신탁기금 설립을 결정하였고, 국제 이주 관련 정치적 선언(Political Declaration)과 행동 계획(Action Plan) 그리고 2016년 말까지 시행할 16가지 구체적인 조치 목록을 채택하였다6). 니제르는 이민자 불법 운송에 대한 법령(illicit trafficking in migrants) 2015-36을 도입하게 되는데7), 이후 해당 법령은 아가데즈의 이주민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니제르 정부는 동 법령에 의거, 불법단속이라는 명목으로 그간 자유롭게 활동해 왔던 이주민 운송 담당 운전기사의 체포, 운송 차량의 압수, 이주민 매매의 형사재판 회부 등을 감행한다. 이주민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하거나 임대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간주되며 아가데즈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게 되었다. 한편 이 법령으로 그간 자유로웠던 ECOWAS 회원 국가들 간의 이동이 불법이 되면서 이주민 유출을 제한하는 데에는 큰 효과를 보았다. 해당 법령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민들은 운송차를 타고 매주 아가데즈에서 출발했으나 운전자가 체포되고 운송차가 몰수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아가데즈는 예전 환승 도시로서의 면모를 점차 잃게 되고, 지중해 연안 국가로 가기 위해 아가데즈를 이용하는 이주민 수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아가데즈의 이주 산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림 2> 리비아 인접 국가들
자료: Google Maps
강화된 단속에도 아가데즈로 모여드는 이주민들
2016년 법령 시행 이후 불법이주 단속이 시행되면서 이주민과 브로커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하라사막을 건너기 위해 이용했던 이주 경로 대신에 아발락(Abalak), 타우아(Tahoua), 친타바라덴(Tchintabaraden), 아데르비세나(Aderbissenat) 등 더 멀고 위험한 경로를 택하고 있다. 차량이 고장 나거나 브로커들에 의해 버려지기라도 하면 이들은 식수도 없이 꼼짝 없이 사막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2019년 니제르 보고서에 따르면 선박으로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프리카인의 4분의 3이 니제르를 거쳐서 왔다고 한다. 이들은 지중해 연안국가에 도착하기까지 평균 5~6명의 브로커들을 거쳐야 하고 이 가운데서 적어도 1명은 니제르인이라고 한다.
<그림 3> 아가데즈 대체 도시
자료: SeenThis
2016년 2015-36 법령으로 이주민 운송이 불법으로 간주되면서 단속이 한층 더 강화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이주 희망자들이 유럽으로 향하기 위해 아가데즈를 찾는다. 이전과는 달리 니제르 정부의 강화된 검열 때문에 아예 이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아가데즈에 갇힌 이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중해 연안 국가로 가는 여정에서도 검열소마다 경찰은 물론 브로커들의 뇌물 요구와 갈취가 심해져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강간이나 구타 등의 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구사일생으로 리비아 등 지중에 연안 국가에 도착해서도 이들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뇌물 요구와 갈취로 인한 보유 자금 부족으로 고향으로부터 송금을 기다려야 하거나 리비아의 트리폴리(Tripoli), 쿼턴(Qatrun), 사바(Sabha) 등지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일을 하면서 비용을 마련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여성은 성매매를 하거나 일부는 가정부로 일한다. 남성의 경우 청소, 보초, 판매, 농사일을 하지만 광산에서 무임금으로 노예처럼 착취당하거나 실제 노예로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주민 관리 및 통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리비아에서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행해질 정도로 이주민의 노예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지중해를 건너다 송환된 이주민을 위해 마련된 임시수용소의 사정도 비슷하다. 리비아로 송환된 이주민은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임시수용소에 감금되기도 하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구타당하기도 한다. 임시수용소에 머물더라도 하루에 한 끼밖에는 제공되지 않고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과 미성년자들은 군인들의 강간 대상이 된다. 이렇게 자행되는 이주민에 대한 착취, 매매 등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 이주 희망자들은 유럽 이주를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자국으로 돌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아가데즈로 돌아와 그곳에 남기도 한다. 결국 아가데즈는 유럽 이주를 희망하는 이주민들과 유럽이주를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환승 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7월 EU는 브뤼셀에서 니제르와 이주민의 생명을 구하고, 국경 관리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Partnership to Combat Migrant Smuggling)을 체결했다. EU는 그간 니제르가 이주민들의 자국 귀환에 기여한 바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니제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이지만, 이주민 관련한 EU와의 협력으로 다양한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다. 아가데즈가 이주민들의 환승 도시가 아닌, 과거의 평화로운 관광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프리카 전역에 평화와 안정이가 찾아오기를 기원해 본다.
* 각주
1)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과 사바나의 경계에 있는 점이지대로 서쪽으로는 세네갈 북부 그리고 동쪽으로는 수단 남부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킴
2) https://www.consilium.europa.eu/en/policies/eu-migration-policy/central-mediterranean-route/
3)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11139345
6) https://www.consilium.europa.eu/en/meetings/international-summit/2015/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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