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그는 누구인가.
김종인의 집안에 대해 혹자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독립운동가 집안인지 아닌지는 각자가 판단을 하면 될 것이다. 김종인의 조부인 김병로, 아버지인 김재열에 대해 알아야 독립운동가 가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병로는 전라도 순창 출신이다. 김병로의 아버지 김상희는 사간원 정언이라는 벼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언의 벼슬은 문과에 급제를 한 후 받는 벼슬 정도로 그리 높은 벼슬은 아닌 것 같다. (정언의 벼슬을 한 후에 현감의 벼슬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김병로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경선전수학교와 보성법률상업학교 강사로 형법과 소송법을 강의하였는데 이 경력으로 1919년도에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로는 유학자 집안에서 자라나서 당시에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가서 공부를 하던 일본에 가서 법률전공 유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법률 강사(교수)를 하였고 당시 일본법에서는 법률 강사 경력이 있으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따라서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김종인의 아버지 김재열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가서 큐슈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일본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던 중 1944년에 사망했다.
김재열은 일제 치하에서 변호사를 하던 아버지 김병로의 지원에 따라 일본에서 법학공부를 하고 한국인이 합격하기 어려운 일본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을 한 사람이다. 이 정도라면 일본인 정도의 일본어 실력으로 법을 공부하여 쉽게 말해서 고등고시에 합격을 하였다는 것이다.
김병로에 대해서 일제의 폭정이 심해지자 1932년부터 양주로 가서 해방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 은둔생활을 하면서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고 조선총독부의 배급도 받지 않고 살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두고서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에서 혼란스럽다. 본인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자식 김재열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일본문관시험을 볼 수는 있었을까하는 점이다. 김재열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던 시기에 일본문관시험에 합격을 한 것이므로 대부분의 조선인들처럼 창씨개명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김병로는 일본 유학을 하고 일제 치하에서 1919년부터 1932년까지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자식도 일본 유학을 하고 일본문관시험에 합격을 하였다면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할 수는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일제의 핍박을 받으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조선인들은 한 끼의 밥마저 챙겨 먹기도 힘든 시기에 초고의 학교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할 정도라면 김종인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 당시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공산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사람을 두고 토착왜구가 토착 빨갱이가 되었다고 한다. 김종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종인의 선대들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김종인의 가족의 삶을 보면 서민들과는 전혀 다른 부유한 집안에서 부유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김종인의 이력은 놀라울 정도다. 195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1963년 졸업하고 그 해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통합을 주도하던 조부 김병로의 비서 역할로 정계와 연을 맺은 후 1964년 조부가 별세하고 나서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1969년에는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1972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가 되었고, 1980년 국보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전두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대,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고 1989년 1월부터 7월까지 국민은행 이사장을, 989년 7월부터 1990년 3월까지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1990년 3월부터 1992년 3월까지 2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 1992년 제14대 국회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1993년에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나서 대학교수로 지내다가 2011. 한나라당 비대위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2016.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및 비대위원장을 거쳐 2020. 5.부터는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다.(다음 백과 인용)
부인 김미경은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의 딸로 이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이고, 처삼촌이 박정희 정부 당시 재무부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4촌 처남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이 있으며, 신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택돈이 있는데 조부 김병로에 의해 정계에 입문을 하였지만 부인 쪽의 사람들이 대단하다.(다음 백과 인용)
김종인 본인 및 그 선대들을 보면 국민 1%이하가 갖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종인은 비례대표로만으로 5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으로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전무후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 그의 나이 80이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차기 대선 후보를 가릴 필요도 없다. 5.18 묘역에 가서 무릎을 꿇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딱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은 '지나침은 욕됨이다'
(백과사전 등을 주로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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