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겸 공화당 대선 후보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겸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예정자에게 '러스트 벨트'(Rust Belt) 3개 주 모두 뒤졌을 뿐만아니라 '선 벨트'(Sun Belt) 4개 주 가운데 두 곳에서 뒤졌고 다른 두 곳도 격차가 크게 줄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초조한 나머지 연달아 제 발에 총을 쏘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이현식 SBS D콘텐츠 제작위원이 19일 뉴스브리핑에 출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범한 자충수 가운데 맨먼저 꼽은 것이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를 "불충한 자"라고 공격한 일이었다. 검색해 보니 지난 17일 온라인에 올린 기사 '트럼프의 적은 트럼프?…제 발에 총 쏘고 옆길로 새고 [스프]'를 방송 출연해 다시 요약해 얘기한 것이었다. 인용한 것은 이탤릭체로 구분했다.
급한 마당에 트럼프는 자꾸 제 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3일 조지아주 유세에서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를 맹비난했다. 능력도 별로 없는 주제에 자신에게 충직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 불충이란 게 다름 아니라 2020년 대선에서 자신이 바이든에게 패배할 당시 조지아주의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는 지시를 켐프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켐프 주지사의 부인까지 비난했다.
켐프 ㅈ지사의 부인 마티는 지난 4월 이번 대선 투표지에 트럼프 대신 남편 이름을 써넣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뒤 켐프 지사는 대선 후보로 트럼프를 승인하며 대선에서 그의 당선을 위해 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날 유세 도중 "난 그녀의 승인은 원하지 않는다. 난 그의 승인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낙선하기를 내심 바라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조지아는 대선 판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선 벨트’ 가운데 한 곳이며 흑인 유권자 비중이 다른 주에 견줘 높은 곳이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벌이는 이른바 ‘그라운드 게임’에 주지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상당하다. 게다가 켐프는 조지아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주내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데 새롭게 돕겠다고 나선 주지사에게 4년 전 묵은 갈등을 끄집어내 싸움을 걸고 그 부인을 공격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개탄한다.
트럼프는 최근 고액후원자와도 갈등을 빚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작고한 카지노 거부의 아내인 미리암 애덜슨 부인은 트럼프를 돕는 조직(PAC) 가운데 하나에 거액을 내는 후원자인데, 트럼프는 그녀에게 화를 내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발송 자체는 참모를 시켰다고 한다.) 해당 조직은 ‘RINO’로서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자들이라며, 그녀가 헛돈을 쓰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RINO는 겉만 공화당원이고 속은 아니라(Republican In Name Only)는 뜻의 멸칭으로, 우리나라식 정치 용어로 표현하면 ‘수박’과 사용 맥락이 비슷하다. 죽은 남편까지 들먹이는 문자에 애덜슨 부인은 심기가 크게 상했고, 후원금을 끊을까 봐 참모들은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입장에서 너무나 다행히도 애덜슨 부인은 그의 백악관 복귀를 돕기 위해 백지 수표를 쓸 수 있다고 지난 15일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 연설을 통해 밝혔다고 CNBC가 전했다. 그녀는 2020년 대선 때 9000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이를 뛰어넘어 최고액 기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봤다.
자기 진영 내부는 아니라지만,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사람들을 화나게 한 사례는 또 있다. 트럼프는 최근 X(트위터) 상에서 일론 머스크와 대담하는 가운데, 머스크가 해고를 잘 한다며 칭찬했다. 그 어감을 우리말로 살리면 이렇다.
“머스크 당신, 사람 잘 자르더구만. 파업한다니까 가서 ‘잘리고 싶어? 오케이. 너희들 다 해고!’ ”
이 발언에 발끈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트럼프와 머스크를 미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고발했다. UAW는 지난해 여름 자동차노조 연대파업 당시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가 과연 노조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바이든 지지선언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트럼프는 이 노동자들 표를 얻기 위해 중부 지역 파업집회장을 순회하고 다녔다. 그렇게 공들인 표를 실없는 농담으로 날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궁지에 몰리면 헛것을 불러내 싸우기도 한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축구에서도 그렇듯이, 상대가 새로운 진용을 짜고 나와 경기의 흐름이 바뀌면, 이쪽도 그에 맞춰 전술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패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금 그게 안 된다. 바이든이 자신의 상대인 동안에는 모든 게 순조롭고 세상이 자기 위주로 돌아갔었는데,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인지, 기회 있을 때마다 바이든 얘기를 한다. 바이든을 욕하면서도, 바이든의 처지에 공감하거나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 건가 싶은 발언도 종종 한다. 이런 식이다.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퍼뜨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아래 해리스 유세 사진 조작 음모론이 그것인데, 이 위원은 이날 방송에서 국내 대통령실과 영부인 얘기를 연상케 하는 지적을 했다. 공화당 대선 캠프와 트럼프 개인 보좌진이 따로 놀아 메시지 관리, 위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음모론을 펼쳐 재미를 본 경험이 있는 데다 스스로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갖고 있어 개인 보좌진이 대선 캠프와 별개의 사고를 치고 수습을 대선 캠프에 맡기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트럼프와 공화당은 승리할 수가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