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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차 고구려 답사-집안(환도산성-산성하무덤떼-장터-광개토태왕비-오호묘-압록강)
모놀식구들은 대장을 닮아서 유난을 떤다. 백두산 답사를 마치고 를밤 11시 쯤 호텔에 들어갔지만 내일 새벽 6시에 움직이자니 선뜻 동의한다. 그 대장에 그 회원이었다. 아침 식사가 7시부터니까....새벽 6시에 환도산성을 간다면 의미있을 것 같았다. 환도산성 도읍지를 알처럼 감싸고 있는 산성. 집안에서 산성까지 가는 길은 계란의 노른자 속으로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국내성이 태평성시를 즐기는 성이라면 환도산성은 사각의 링처럼 어느 한 쪽은 죽어야만 끝이 나는 싸움판이었다. 헬기장처럼 윗둥이 편편한 환인 졸본성과는 달리 이곳은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형태다. 분지 안쪽은 완만한 경사지만 바깥쪽은 천길 낭떠러지다. 하늘신이 고구려인에게 선물한 요새였다. 남쪽은 뻥 뚫렸지만 서쪽은 칠성산이 동쪽의 용산자락이 길게 이어져 있어 초병을 숨길 수 있는 절묘한 산세를 갖추고 있다. 더구나 통구하와 압록강의 젖줄이 흘러가면서 만들어낸 옥토를 만들어냈고 천연 해자를 그리고 있다. 가장 먼저 장대에 올랐다. 적의 동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계단만 간신히 남았고 돌덩이만 나뒹굴고 있었다. 이 곳에 오르면 사방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내성 뿐 아니라 저 멀리 집안 시내까지 고구려 장수의 시야를 피할 수 없다. 장대는 노장수처럼 보였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온몸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 흔적이 나있지만 분기탱천한 기상만은 녹슬지 않았다.
발부리에 채이는 돌덩이에도 산자락에서 쓸어 내려오는 바람에도 벼랑끝에 한가닥 뿌리를 내리면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이름모를 잡초에서도 고구려 내음이 스며 있었다.
그걸 음미하려고 촉수를 더듬으며 거닐었다. 한 쪽으로 기울고 허물어진 성벽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2천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아픔도 보이지만 그렇게 쓰러졌어도 당당함이 잃지 않는 고구려의 기상도 보인다.
모놀의 고구려 병사~~양말 만드는 군인도 있네요^^
고구려의 후예~~현재 조장들이지요. 고구려 중대장 쯤 되겠네요.
우리가 만난 성의 흔적은 남문을 길게 가로 지르는 성곽이 고작이었다. 성은 산세를 따라 7km나 이어지고 있다. 서쪽 성벽을 따라가면 산자락을 만나게 되고 성벽은 그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꾸불꾸불...고구려는 갔어도 그들의 혼령은 산자락을 타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남문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고 성은 바깥을 감싸고 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한 옹성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배수구도 보인다. 흘러 내려오는 쌀뜨물을 보면서 성안의 병사의 수를 확인했을 것이다. 성벽 안쪽을 쌓은 돌은 자연석을 세모로 다듬어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 그 견고성을 높였다. 겉은 반듯한 돌로 수직쌓기를 했다. 아마 최근에 복원한 듯한데 영 어색하다.
세모난 돌을 다듬여 속을 꽉채우고 겉은 돌로 쌓는다. 그러니 2천년을 건딜 수 있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지만 집안에서 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유물은 바로 산성하 무덤떼다. 운무가 정군의 무덤을 덮었다 사라졌다 한다. ..그들의 영혼이 모놀식구들을 맞이하는 것 같다.
1천5백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었다. 고구려 초창기는 적석묘. 후반기에는 봉토묘. 멀리 봉토묘의 흔적이 보인다. 돌쌓는 것이 인력과 돈이 많이 드니까 훗날 간소화 했을 가능성이 크다.
운무속 산성하 무덤떼~ 자세히 보면 그랭이 공법을 볼 수 있다.
(사진: 산성하무덤떼 현재 남아 있는 무덤만 1582기다. 그 뒤가 환도산성이다.)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무덤만 1582기다. 세계 최대의 고분군이 고구려의 무덤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산성하'라는 것이 있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 이 떼무덤들은 고구려의 장군이나 귀족들 무덤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국립묘지라는 해도 좋을 듯 싶다. 우리 군인이 국립현충원지에 묻히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듯 고구려 장수들은 이곳에 묻히기를 원했다. 누가 묻혔는지도 모르지만 풍겨 나오는 분위기에서 장수의 호국혼이 절절 느껴진다.
이곳은 장수왕릉같이 돌을 쌓아 올린 '적석총'과 흙으로 봉분을 덮은 '봉토묘' 그리고 두 개의 혼합 형태, 그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고구려의 다양한 봉분형태를 만날 수 있다. '고구려 무덤전시관'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천제 해모수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고구려인들은 하늘의 자손이었다. 죽어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믿고 있다. 바로 무덤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인 셈이다.
그런데 왜 산성하 무덤떼가 적군이 침투할 통로인 남문쪽에 몰려 있을까?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릉처럼 용산자락에 무덤군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과연 적들은 환도산성을 공격할 때 이 무덤떼를 보고 그냥 지나쳤을까? 아니면 파헤쳤을까? 나는 이렇게 상상해본다. 무덤떼를 산성아래에 세운 것은 고구려인들의 불굴의 정신과 오기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 고구려병사가 수 없이 죽었어도 나라를 지킬 것이야' '죽기아니면 살기야' 아마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환도산성에 오른 고구려 병사들은 죽어간 선배들을 내려다보면서 굳은 의지를 다졌는지도 모른다. '나도 언젠가는 저 곳에 묻힐거야.' 그런 적들은 이런 무덤떼를 보고 오금을 저렸을 것이다. 산자와 싸우는 것도 벅찬데 죽은자도 무덤에서 일어나 창과 칼을 들어 있었던 것이다. 환생을 믿는 고구려 사람에게 무덤떼는 성을 지키는 수호신역할을 했다. 절집의 사천왕상처럼 국난의 위기를 벗어나고 싶은 믿음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장수왕릉같이 돌을 쌓아 올린 '적석총'과 흙으로 봉분을 덮은 '봉토묘' 그리고 두 개의 혼합 형태, 그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고구려의 다양한 봉분형태를 만날 수 있다. '고구려 무덤전시관'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천제 해모수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고구려인들은 하늘의 자손이었다. 죽어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믿고 있다. 바로 무덤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인 셈이다.
호텔 근처 새벽 장터
과일도 실컷 사먹었다.
생선가게
족발가게
호떡집 아저씨
만두집 아줌마
김치도 있네
동방의 피라밋. 장수왕릉
광개토태왕릉
바로 앞이 북한이다. 분단 조국을 보면 광개토태왕은 분개할 걸
광개토태왕릉비앞에서
집안 들어가는데 입구 가로등 사량해요....라는 모양이라는데
북한식당 묘향산. 남북이 경색되니 이곳 사람들도 냉랭하다. 이 변방까지 정치적으로 영향이 미치니...원
노래...
압록강 산책에 나섰다.
바로 강 건너가 북한땽
우리말을 하는 동포가 바로 저 집에 살고 있다. 화려한 집안 불빛을 보고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국내성 성벽
집안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북한의 만포시다.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달리면 강계-화천-개천-순천-평양-사리원-개성-서울에 이른다. 괜히 울화가 치민다. 단동까지 갔다가 배를 타고 서해를 거쳐 인천으로... 연길, 블라디보스톡을 거처 동해로 빙빙 돌아 속초에... 내나라 내 땅으로 가장 빨리,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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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곳이 차마 잊힐리야~~~~~~~~~~~~~
밤 열한시에 도착하여도 다들 잘 드시더만....오랜 시간 버스에 시달리며 뱃속도 흔들렸는지 멀미가 나서 혼났습니다..다음날 아침까지 꼼짝 못하고..ㅠ.ㅠ 아까워라 산성하 무덤떼....으앙~~~
근데요 대장님...사진 여기서 다운받아요? 웹하드에 올리지 않나요? 다른 분들이 올리는 사진도요?
제가 조만간 정리해서 웹하드에 올릴겁니다
내년에 다시 백두산 답사 추진하면 또 갈람미뎌, 잊을수가 없시요~ ^^*
사진들을 보는데 그냥 미소가 번지네요~~~ 또 하나의 명품 여행 훌륭해요!!!
집안에는 고구려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어서 꼭 내 땅에 온 듯한 느낌인데 현실은 아니고 압록강 건너편 북한땅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대장님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
창원서 제가 아이들 데리고 답사라는 걸 하기 시작한 계기가 십수년전에 중앙일보에 나온 산성하 1500기 돌무덤 사진을 보고난 후였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그냥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더라구요 그리고 언젠간 꼭 저길 가봐야지 했는데.... 하지만 아직도 이 다짐은 현재진행형이니까요! 뒷북이되겠지만 반드시 이 숙제를 끝낼거여요 ㅎㅎㅎ
운무가 자욱한 산성하 무덤떼..정말 장관였어요~..하늘로 올라간 고구려의 자손들이 다시 잠시 내려와 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