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그리고 망당망국(亡黨亡國)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상하이에 취재를 갔었습니다. 우리를 비롯한 서방세계는 ‘반환(返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중국에서는 ‘회귀(回歸)’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을 현지에 가서 알았습니다. 상하이 시민들에게 “홍콩의 회귀에 대해 감회가 어떤가?”를 질문했습니다. 아편전쟁으로 잃은 영토를 무려 156년 만에 돌려받는 감격을 당시 수많은 시민들의 인터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힘든 시절이 끝나고 다시 도약하는 일만 남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마주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잠옷을 입고 외출하는 특이한 문화(잠옷을 입는 것이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함)를 지켜보기도 했지만, 홍콩이 회귀하는 날, 상하이 동방명주 앞 광장에서 진행한 국영TV의 대형 생방송 축하 쇼를 보며, ‘중국이 이제 기지개를 켜는구나!’ 하며 소름 돋게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만 명을 동원한 웅장한 쇼의 스케일도 장관이었고 2층집 사이즈 만한 대형 북에서 울리는 소리 역시 분위기를 압도했지만, 필자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였습니다. 그 눈동자는 필자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새마을운동’에 참여하던 한국 어른들의 눈동자와 비슷했습니다.
무언가를 강하게 갈망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인구가 12억 명이 넘었으니 그 인구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나라를 압도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가 지금 현실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가장 우려했던 것은 중국이 요즘 말로는 ‘국뽕’이라고 부르는 맹목적 애국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국뽕’은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개발을 가속화하는 근대화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유럽의 경우는 제국주의가 정점에 치달았을 때 국뽕이 등장했고 그 결과가 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유럽에서 1,000만 명이나 전사한 이유는 애국심과 민족주의 열풍이 낭만주의와 결합하여 젊은이들에게 전쟁엔 당연히 참전해야 하는 것으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또는 전쟁의 초기에는 그렇게 많은 인구가 희생될 줄 몰랐을 겁니다. 무기는 획기적으로 발전했는데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는 중세시대에 머물렀던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각 나라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모병 운동을 벌였고, 젊은이들은 영웅이 되기 위해 앞다퉈 자원입대를 한 전쟁이 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반전을 외친 인물이 피살당하기까지 했으니 당시 전쟁의 광풍이 얼마나 맹목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뽕은 여러 형태로 발현되는데 전쟁이 없는 평화적인 시기에는 스포츠에서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패망 이후에 프로레슬링을 통해 미국 선수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열패감을 이겨내려고 애를 썼고, 우리나라 역시 일본 선수를 불러들여 경기를 했습니다.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김일 선수가 유혈이 낭자하게 박치기를 하면서 안토니오 이노끼 선수를 링 밖으로 날려버리는 장면을 보며 통쾌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엔 거리에서 흔히 듣는 일본인 비하 발언이 ‘쪽발이’였고 레슬링 경기에서는 “쪽발이 놈들은 다 때려잡아야 돼.”라는 말을 당연하게 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이 쇼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습니다.
사실 안토니오 이노끼와 김일은 둘 다 역도산의 제자로 동문 사이입니다. 게다가 이노끼는 1995년에 일본에서 김일의 프로레슬링 은퇴식을 열어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으니 50년 전 TV 중계를 보며 “이겨라.”를 외쳤던 기억이 뻘쭘해집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앞서 발전을 이룬 나라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후발 국가들이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역시 역사의 상흔에서 자유롭지는 못해서 내재된 상처가 어떤 식으로든 치유가 될 때까지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지해 풀어내려는 시기가 아직 지속되는 느낌입니다. 지난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의 편파 판정 논란이나,
김치나 한복을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쯤 중국이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경제력 2위의 위상에 어울리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줄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최근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2월 7일 서울신문에 실린 “마침내 난 우리가 세계의 적임을 깨달았다.”는 기사입니다. 기사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중국인’이란 제목의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미국은 우리의 적, 프랑스도 적, 영국도 적, 필리핀도 적, 베트남도 적, 한국도 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인도도 적, 동족 형제인 대만도 적, 공산주의 맏형인 러시아도 적이 됐다. 나는 군대에 가서 그들을 무찌르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돼 생각해 보니 왜 이렇게 적이 많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난 우리가 세계의 적임을 깨달았다.”
이 글은 ‘지유지자이(자기 뜻대로 모든 것이 자유롭고 거침이 없다는 뜻)’라는 중국인 트위터 이용자가 트위터에 올린 글인데 여기에 그는 소설가이자 방송작가인 왕숴(王朔)의 발언도 소개했습니다.
“중국은 수억 명의 노고대중(劳苦大众, 고생하는 대중)이 힘들게 일궈낸 부를 수백만 명의 탐관오리에 의해 적어도 절반을 교묘하게 빼앗겼다. 이것이 노고대중이 항상 빈곤 상태에 놓이는 근본 원인 중 하나다. 이것이 오늘날 급속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가 이렇게 큰 근본 원인 중 하나이다. 중국 탐관과 비교하면 미국 월가의 탐욕은 어린애 장난이다”
매우 놀라운 점은 중국 공산당이 망하면 나라도 망한다는 망당망국(亡黨亡國)이라는 중국 정부의 논리도 비판했다는 점입니다.
“진나라가 망해도 중국은 중국, 청나라는 망해도 중국은 중국, 히틀러는 망해도 독일은 독일, 사담 후세인이 망해도 이라크는 이라크,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망해도 리비아는 리비아, 공화당이 낙선하고 민주당이 출범해도 미국은 미국이다. 반드시 망해야 하는 것은 번갈아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건달 토비(土匪, 지방에서 일어나는 도적떼) 강도들이다! 소위 '망당망국'은 건달 사기꾼 일당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 기사를 읽고 중국의 국뽕시대가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갈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습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 두 거대한 나라의 관계가 불편하기 때문에 당장은 예측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겠지만, 적어도 중국 내부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보는 능력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15년 전 미국의 대학에서 중국 유학생들을 꽤 많이 만나고 교류를 했는데, 그때 그 젊은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중국의 체제와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급변하는 중국에서 보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유학을 택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대중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으면 힘있는 집단이 이끄는 대로 가게 됩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세계의 적이었다.” “만당망국은 가짜 논리다.” 어찌 보면 개인의 작은 깨달음과 외침입니다. 하지만, 이 송곳 같은 외침이 왠지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