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은 자라난다
빨간 불이 심지에 붙은 동그란 폭탄을 그린 <윤석열 정권 난방비> 현수막이 네거리에 걸렸습니다. <국민 1인당 최대 25만 원(7.2조 원 규모), 에너지·물가 지원금 추진!>. 야당의 말입니다. 폭탄의 심지에 누가 불을 붙였을까요?
난방비가 난리입니다. 우리 아파트는 지역난방인데 나는 외풍이 안 들어온다는 이유로 영하 10도 날씨에도 난방버튼을 누르지 않습니다. 가스는 이사 올 때 차단해 온수와 전기만 쓰는데요, 12월 관리비가 25퍼센트 올랐습니다. 이건 많이 폭등한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주된 연료로 쓰던 연탄이 100원대였던 때에 겪은 삶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연탄은 아궁이로 넣어 난방을 했고 석유풍로로 취사했습니다. 어릴 적엔 자투리 연탄 가루를 모아 물을 뿌리며 틀에 넣고 큰 나무망치로 때려 연탄을 만든 후 새끼줄을 끼워, 들고 가기 편하게 해서 파는 구멍가게도 있었죠. 내가 맨 처음 살게 된 아파트 3층은 연탄을 지게로 날랐는데 배달원이 늘 불평했습니다. 얼마 뒤 이사 가려는 아파트에 연탄 전용의 미니 엘리베이터가 있어 두말하지 않고 결정했습니다. 착한 연탄 승강기를 볼 때마다 고마웠습니다.
매일 한밤중에 일어나 화덕 세 개의 연탄을 갈았습니다. 일산화탄소 냄새가 코를 찔렀죠. 가스 경보기를 달았고 머리가 어지러울 땐 중독을 풀어준다는 김칫국물을 마셨습니다. 오래 집을 비워 연탄이 다 탔으면 번개탄을 놓고 불을 새로 붙였죠. 쌀과 김장, 연탄을 쌓아놓으면 서민들에겐 푸근하고 따듯한 겨울이었습니다. 구치소 옆이었는데요. 재소자들이 아침 일찍 'XXX 물러가라”고 고함치는 소리에 야근하고 들어와 자던 눈을 뜨기도 했습니다. 문밖에는 면회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1980년대 초였습니다.
개별 가스 난방비 폭등에 경악한 시민들이 '연탄 복귀'를 외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연탄을 때는 곳은 연말에 이웃 봉사 성지로 등장하는 백사마을이나 구룡마을만이 아니죠. 김포 외곽의 꽃집들은 줄곧, 아마도 처음부터 연탄으로 보온했을 듯합니다. 가끔 잘 탄 연탄재를 얻어다 밭에 뿌려줍니다. 강화군의 이발소나 미용실들, 심지어는 주유소 사무실도 연탄난로입니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면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사진=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이사하려고 다녀보니 가스보일러 집에 별도로 설치한 석유보일러로 목욕물을 데운다는 집도 있었습니다. 에너지 가격 폭등이 가계와 업소 등 국민 생활을 강타할 것을 알았다면 고집부리지 말고 마땅히 탈원전 정책부터 고쳤어야죠.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공사가 2020년 9월부터 작년 3월까지 총 여덟 번 가스요금 인상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묵살되었다"고 했습니다.
공사가 자본잠식 상태라는데요. 탈원전으로 가스 발전을 늘린 탓이 크다고 했습니다. 9조 원이라는 가스공사의 적자는 국가 빚이죠.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비중이 60퍼센트, 우리만 못해서 그렇게 할까요. 한국전력 소액주주들은 2019년 탈원전 등과 관련해 한국전력을 강요한 죄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고소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다음 날에는 <탈원전 국정농단 국민고발단> 등의 탈원전 반대 단체들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그를 고발했습니다.
취임 초 그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다이소에서 치약, 칫솔, 휴지 등 대부분의 생필품을 산다고 요란을 떨었던 청와대 사람들은 왜 대통령의 탈원전에 아부해, 멀쩡하게 완공된 원자력 발전소를 트집잡고 몇 년씩 놀리며 수십조 원을 날리는 낭비는 말리지 못했을까요. 난방비 폭탄은 문 정권이 다음 정권에서 터지도록 설계한 시한폭탄이었나요. 1,000원짜리 다이소와 순금 100여 돈으로 총 1억 3,647만 원이 들어간 호화로운 부부 셀프 수여 대훈장이 어울립니까? 공적이 뭔지 따져보자고요. 전 미래통합당 대표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 겸 대통령권한대행은 최근 TV조선 인터뷰에서 "문 정권은 잘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원자력 발전을 소홀히 하면 국가전략자원인 에너지의 해외 의존으로 국가와 국민들이 충격을 받게 된다는 걸 몰랐나요? 백 전 장관이 탈원전 반대 직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했다는 말은 국민을 향한 협박처럼 들립니다. 그렇게 원전이 싫으면 중국의 동·남해안을 덮는 원전부터 강력하게 경고했어야죠.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로 수입처를 러시아에서 옮긴 독일, 프랑스 등은 작년부터 난방비 폭탄이 터졌습니다. 원전이 빈약한 독일은 가스요금을 믿을 수 없는 비율인 800퍼센트나 올렸다고 합니다. 원료인 가스 가격이 5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랍니다.
전기요금과 가스 가격을 너무 누른 것은 탄소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자는 명분도 배척했습니다. 탈원전으로 피해를 본 국민들은 정책 집행자들에 대해 민·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에너지 문제 하나만 봐도 우리가 확신에 차 걸어온 국가 노선의 업적을 부정하며 만날 수 없는 길로 멀어져간 독재 정치였다고 봅니다. 적폐는 대가를 치러야죠.
천재 소리를 듣는 에마뉘엘 마크롱(45) 프랑스 대통령은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2030년까지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에도 나섰습니다.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것은 프랑스 전통이 아니다”라는 등 전국에서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합니다. 땀과 노력을 요구하는 정부는 인기가 없어 개혁을 주장한 정권은 교체되곤 했습니다. 마크롱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로 달려갑니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나라를 사랑한다면 나라를 위해 최선인 사람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그를 찬양하면서 그가 직면할 어려움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자를 가속하는 선심을 쓰고 코로나 위로 돈을 뿌렸던 좌익들은, 유권자들이 너무했다고 판단했는지 정권 연장에 실패했습니다. 다수 의석으로 온갖 것에 반대해 ‘정권교체 미완성’을 강조하는 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엔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연금이 고갈된다는 2050년대는 어떡하죠. “우린 세상에 없어." 남의 일로 치고 폭탄을 방치할 것인가요? 내 임기에 안 하고 싶지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연금 개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논점을 이탈해 개혁을 포기한 게 문 정권이었습니다. 단호한 결기 없이는 G10 급 국가를 이끌 수 없죠.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2개월 전인 작년 3월, 한전이 30조 원의 적자가 날 해에, 앞으로 1조 원을 더 퍼부어야 하는 나주의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을 개교시켰습니다. 원전이 철천지원수였는지 원자력 학과가 없었는데요, 정권이 바뀌자 올해 <차세대 SMR(소형원자로) 융합연구 과정>을 대학원에 만들었습니다.
탈원전이든 국민연금이든 권력자들이 방치하면 할수록 미래 세대가 짊어질 폭탄은 자라납니다. 젊은이들부터 스스로를 위해 빨리 깨어나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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