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현상공모
2024년 제3회 이충이문학상
수상 시집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
제3회 이충이문학상 심사과정
•원고마감 : 2024년 9월 30일
•총 응모자
- 시부문 : 28명 응모(작품집 28권)
•심사위원장 : 최문자
• 예심 및 본심 심사위원 : 최문자 장석남 장병환
『시와산문』 이충이문학상 예심
•예심일자 : 2024년 11월 4일(월) PM 6시
•예심 심사위원 : 최문자 장석남 장병환
<예심통과작>
- 엄세원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 외 4명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 엄세원 시집
『자기를 찾기 전』 전소영 시집
『통속이 붉다 한들』 최재영 시집
『웃음과 울음 사이』 윤재훈 시집
『일종의 마음』 이제야 시집
『시와산문』 이충이문학상 본심
•본심일자 : 2024년 11월 4일(월) PM 8시
• 본심 심사위원 : 최문자 장석남 장병환
<본심결과 수상작>
- 엄세원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
2024년 제3회 『시와산문』 이충이문학상 심사평
슬프고 통쾌한 여운
계간 『시와산문』을 창간하여 『시와산문』 문예지를 일구어온 이충이 시인을 기려 제정한 이충이문학상 제3회 현상공모에는 총 28명의 시인이 자신의 시집을 응모하였다. 총 28권의 시집 중 5권의 시집을 본선에 올렸고 그 중 엄세원 시인의 시집을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한 권의 시집은 크게 보면 한 편의 시여도 좋다. 일관되고 종과 횡이 맞물려서 맥락을 이룬다면 그것을 일러 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찍이 저 우리 현대시문학사 초창기의 『님의 침묵』이나 『진달래꽃』 등의 시집들은 그러한, 유기적 구성의 측면에서나 화자의 일관된 사유의 맥락에서나 중요한 모범들이었다.
한 권의 시집을 마주하게 되면 편 편의 시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화자의 사유가 지금 우리가 처한 동시대적 문제와 맞닿아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맥락 없는 잡화점 같다면 그 시집(시집뿐이랴)은 신뢰하기 어렵다. 흔히 재주로 만들어진, 혹은 손끝에서 나온 시라고 일컫는 느낌의 시집은 그대로 내려놓을 운명을 면하기 어렵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림이 느껴질 때 이미 시의 본질을 벗어난 상태니까.
이번 심사의 대상이 된 시집 중에서 최종수상자로 선정된 엄세원 시인의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라는 시집은 단연 시선을 끄는 시집이다. 당면한 문화 현상으로서의 기호(「은빛 64GB」)를 노래하면서도 신간회(「이념의 표지석」)와 정도전(「물이 입어본 맥락」과 가야(「눈빛을 출토하다」 등)를 호출한다. 그 나름의 호출 까닭 속에 세계를 어떻게 보겠다는 선명한 의식이 만져진다. 더불어 화자의 실존 현실을 오목한 렌즈로 비춘다. 가령 「직립으로 한 움큼」이라는 시에 의하면 물컵 속 양파의 뿌리 아래에서 ‘본적’을 발견한다.
“유리컵 위에 양파가 있지/ 촉수 끝에서 경사 오르듯 뿌리에 집중하지/ 가늘디가는 곡선이 아래를 향할 때// 진초록의 잎이 되어보겠다고 좁은 산도로 뻗어온 수액들/ …중략… / 컵 안을 들여다보는 내 눈동자가/ 캄캄한 맨발에 한 점으로 어른거릴 때// 잎사귀 하나가 허공을 꽉 쥐었다 펴본다/ 혼자이지만 여럿인 듯, 뿌리가 휘도는 그 아래에// 본적을 두리라는 생각”과 같은 ‘발견’에 동참할 때 소시민의 어쩔 수 없는 자기 인식과 비애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의 여러 미덕을 나열하기는 어렵다. 드넓은 시공 속을 비애의 얼굴을 하고 기행 하는 화자의 모습이 끝내 잔상으로 남을 뿐이다. “이사를 간다는 건/ 문패가 뒤따라오는 것이니/ 그동안 얼마의 주소가 달 속에 있을까/ 왕십리, 청량리, 제기동, 용두동, 답십리 회전하면서/ 중력을 얻는다”라는 구체적인 체험의 제시 뒤에 ‘보름달을 얽동여 덧싣는/ 이사 전날 밤이다’(「전입」 부분) 라는 진술이 슬프고도 통쾌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른 좋은 시집들이 있었지만, 언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듯싶다. 엄세원 시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장석남)
- 심사위원: 최문자 장석남 장병환
관觀 시視 찰察
엄세원
부릅뜬 홍채를 스쳐 가며 비춰보는 등대
관觀의 번짐이다
어쩌면 사내의 몽환인지도
다음, 그다음 또 그다음의 물결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솟아 있는 바위는 시視다
어쩌면 사내의 내세인지도
머리카락이 파도에 흐물거리면
뒤이어 포말이 핥는다
모래 알갱이들 입과 귀와 코를 드나든다
밀물에 팔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 덜그럭 조가비가 끼어온다
홀연 파도 머리에서 수색해 오는 바람,
큰 물결 겹겹 헤아리면서 백사장을 당겨온다
한때 몸부림쳤을 흔적을 어깨가 끌어안고 있다
맨발을 헹구는 몇 가닥의 수초, 푸르뎅뎅한 발가락을 가려준다
죽음은 둥글다 둥'E,
몸을 떠나 다시 둥'E으로 박동하리란 것을
알고 있다 박혀 있는 닻이 찰察이다
제 모서리를 버리며 마모되는 필연
짤랑거리는 동백잎들, 청보랏빛 새벽을 떠다닌다
붉은 점 하나가 내려왔다
공중 가르며 울컥 빛줄기를 게워낸다
찢어진 틈 속 우둘투둘한 뒷등 위로
뚜뚜뚜 뚜 뚜 뚜 뚜뚜뚜
일제히 별들의 일상이 시작된다
여기 좀 비춰봐, 플래시가 내 동공을 조이고 있다
꿈 냉장고
꿈을 꺼내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손상을 최소화하기, 액체 질소 초저온에서 보관한 재료다
십 년까지 보관이 가능한
냉각된 꿈
현실과 꿈 사이에 방전이 일어난 걸까
벼락 치는 소리에 문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변압기 스위치를 올렸더니 전등이 반응하지 않는다
한쪽 벽면에서 팬 모터로 웅웅 울리던 냉장고
액정 표시가 사라졌다
꿈이 부패하지 않도록 냉장에다 심었다
현실과 비례하는 환상이 있다
꿈의 꿈에도 정전이 된 것인지 오래된 기억부터 분해되는 중이다
잠근 장치가 꺼져 접합부 녹아내린다
퓨즈가 끊긴 새벽 더듬더듬 차단기함을 찾는다
얼었던 어둠이 둥둥 떠다닌다
이곳은 복선이 깔린 미로다
이제 박차고 밖으로 쏟아져야 할까
냉장고에서는 꾹꾹 눌러 담은 재료가 스며 나오고
칸칸마다 진공상태로 떠다니고 있다
스위치를 올린다 다시 내린다
동결되었던 꿈이 심벅심벅하다
화인처럼 찍힌 잔상의 유효기간이 둥글게 묻어 있다
동결보존액을 넣어 얼린 꿈이 딸깍거린다
꿈 칸에다 나를 넣고 전원을 다시 켠다
미용 다윈주의
지구는 싹둑 밤을 잘라냈고 나는 커트를 한다
두상도 지구다
안쪽 뿌리를 밀어내며 이제껏 생명을 이어왔다
그러나 흑을 지나 백은 진화일까 도태일까
실크 천이 둘러지고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가윗날이 스쳐 간다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것들,
적자생존의 선택이다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가늘디가는 DNA가 잘려나간다
어깨에 쌓이다가 제 무게로 떨어지는 순간,
육상동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일까
바닥에 뒤엉킨 머리카락에도 질서가 있다
나를 거쳐 간 헤어스타일은 자연발생을 따른 것
몇 번이고 뒤집혀 숨길 수 없는 이마가 되기까지
변이해왔다
수억만 개의 머리카락은 나의 개체이자 자원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약이 필요할 때
헤어드라이어가 윙윙 돌자
새로운 스타일이 거울에 비친다
한 올 한 올 되살아나는 볼륨
변신은 최고의 반전이다
작은 거울이 사방을 비춰준다
잘 나왔어요,
나는 또 하나의 우성으로 거듭난다
포인트가 하나 더 필요해, 롤이 앞머리에 끼워진다
목이 길어 보인다
형이상학적으로 미인이 세팅된다
깊어지는 맛, 깊어지고픈 시詩
정말입니까? 수상 소식!
휴대폰으로 전화해도 받지 않으니 문자로 남겨주셨습니다. 대관령 깊은 골짜기 배추밭에서 식구들에게 그 문자 메시지를 읽어주었습니다. 모두 스팸 문자라고 합니다. 가만가만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오지라서 와이파이가 불안정했지만 메시지함에서 등기우편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사실 도전이라고만 생각했기에 큰 기대 없이 응모를 하고는 두어 달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무명 시인인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울컥했습니다.
대관령 깊은 골짜기의 밭은 퇴직 후 남편의 안식처입니다. 감자를 캔 후 심은 불암 3호 모종 오백 포기는 나의 글밭입니다. 여린 싹을 새들이 쪼아 먹고 벌레가 갉아먹습니다. 고라니와 산돼지가 내려와 밭을 망치는 일도 흔합니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배추는 인내와 기다림의 결실로서 그 가치가 큽니다. 이렇게 시 소재의 원천은 계속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배추가 그 날것만으로 김치가 될 수 없듯이 가 소재만으로 가 될 수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파피루스나 점토판에 글을 써서 무언가를 남겨놓은 것들이 현대로 내려와 해석되어 하나의 문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규보의 시에 기록된 “무를 장에 담그거나 소금에 절인다”는 김장에 대한 기록이, 2013년 김장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로 꽃을 피우며 그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저장의 순환은 유전자 저장고에서 발생하여 개개인의 번영과 깊이를 더해갑니다. 어쩌면 이것이 나만의 문명을 세우는 길일지 모릅니다.
김장 사백여 포기는 나의 시와 같습니다. 심고, 뜯고, 절이고, 무치고, 넣는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도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누가 읽을까? 누가 다 먹을까?’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눔의 진정한 실존입니다. 생명의 순환에 대해 생각합니다. 시작이 있다면 어떻게든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습니다. 재료 속에서 주제를 뽑아내는 일입니다. 먼 길을 함께 걸어가며 같이 물들어 갑니다. 절인 배추는 결핍을 나타냅니다. 어쩌면 절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와 갖은 양념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이 될 때, 그 맛은 생동감 넘칩니다. 더 나은 맛을 위해 간을 봅니다. 싱겁거나 짠맛을 염두에 두고 알맞은 신맛에 도달할 때 희망을 느낍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살아있는 이야기로, 입안에 스며드는 맛은 고요한 문장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선배는 후배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우리는 앞서 걸어간 그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깊고 짜릿한 맛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며 잘 버무려진 맛의 생명은 저장에 있기에, 위에서 아래로 꾹꾹 눌러 담습니다. 가족은 나의 소중한 저장고이며, 서로를 붉게 물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온기입니다. 그 온기로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충이 문학상>에 뽑아주신 최문자, 장석남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문학의 길이지만, 『시와 산문』의 뜻을 되새기며, 더욱 필력을 키워 문학상에 걸맞은 시인이 되도록 끊임없이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