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시 ~ 서하 이민서 선조
삼강으로 떠날 적에 자형 이경략과 이별하며 시를 남겨 주다〔將赴三江留別李兄景略〕
천 리 산하에 갈림길 잔뜩 있고 / 山河千里足岐路
백 년 인생에 슬픔과 기쁨 많다오 / 人世百年多哀樂
분분한 이별과 만남 무상하니 / 紛紛離合不可常
수심 띤 얼굴로 먼 길 나그네 전송하지 마시라 / 莫將愁顔送遠客
내 그댈 위해 노래 한 곡 부르기 위해 / 我有一曲爲君歌
짐짓 돌리던 술잔 멈추고 말도 세웠지요 / 故停行杯駐金絡
그대는 본래 훌륭한 가문의 기재로 / 君身自是鳳穴奇
시례를 처음에는 가친께 배우셨지 / 詩禮初從鯉庭學
푸른 매가 둥지로 내림에 토끼들 굴을 경영하고 / 蒼鷹下巢兔營穴
완국의 새끼 말 벌써 붉은 땀 흘리니 / 宛馬爲駒汗已赤
삼대를 널리 엿봐 뜻과 기상 호매하고 / 旁窺三代志氣豪
백가의 글 섭렵하여 문사가 훌륭하셨다오 / 汎濫百家文詞博
돌아보면 옛날 내가 남쪽 바다 나그네 되었을 적 / 憶昨南溟我作客
가군께선 오히려 조양에서 배척된 신세였으니 / 家君尙爲潮陽斥
경주와 뇌주가 만 리 파도 사이에 둔 것처럼 멀고 / 風濤萬里際瓊雷
위리안치되어 산과 바다로 막혔지만 / 棘以爲欄山海隔
형님께선 그 험한 길 어렵다 않고 / 吾兄不道跋涉難
멀리 유배지 찾아와 적적함 달래 주셨으니 / 遠訪長沙慰幽獨
등불 앞의 담소에 분위기 온화하였고 / 燈前笑語氣溫溫
술자리에선 정다운 마음 끊임없었지요 / 杯酒慇懃心脈脈
형제들 가을비 내리는 시기에 모여 / 鴒原秋雨雁一行
거문고에 〈고산〉과 〈유수〉 몇 곡조 탔는데 / 流水高山琴數曲
남북으로 오가느라 거듭 바다 건넜으니 / 北去南來再渡海
그대의 높은 의리는 높은 구름에 닿았지요 / 惟君高義層雲薄
누가 알랴 인간사 조석으로 변하여 / 誰知人事異朝夕
형님은 서쪽 성에 머물고 아우는 북으로 돌아가니 / 兄住西城弟歸北
북관 아득하고 철령 높아서 / 北關迢迢鐵嶺高
산과 강을 사이로 사막과 나뉘지요 / 間以山河界沙漠
한 조각 외로운 성은 목책을 둘렀는데 / 孤城一片木爲柵
이곳과의 거리가 천육백 리라오 / 此去脩程千六百
첩첩의 산중에 산길 가늘게 이어지고 / 千山萬山鳥道細
칠팔월에도 흰 눈이 내리지요 / 七月八月飛雪白
떠나는 수레 몰아 상동문 나설 적에 / 征車將出上東門
이별연 비로소 한양 길가에 열리니 / 別筵初開洛陽陌
서쪽 이웃에 사는 형님은 자가 여현인데 / 西隣有兄字汝鉉
우리 형님과 마음 통하는 동갑내기로 / 與兄同心亦同甲
몇 년을 따르면서 흉금 나누는 사이였기에 / 幾年追隨共襟期
오늘 함께 오셔서 이별 자리에 참석하셨네 / 今日同來登祖席
가을바람 언뜻 불어 기러기 높이 날고 / 秋風乍入雁背高
고목에 된서리 내려 낙엽 지는데 / 古樹霜濃黃葉落
서울 구름 아득하고 변방의 해 뉘엿뉘엿 / 秦雲杳杳塞日黃
비바람 치는 저녁에 형제들과 헤어지네요 / 斷雁離鴻風雨夕
떠나는 내게 한 편의 글 보여 주시니 / 臨行示我一篇文
주옥같은 문장에 약석 같은 말씀이라 / 字綴瓊琚語藥石
변방으로 가지고 가 펴 본다면 / 持歸塞外儻披拂
하늘 끝에서 긴 그리움 달랠 만하겠지요 / 可慰天末長相憶
[주-D001] 삼강(三江)으로 …… 주다 : 삼강은 함경도 삼수(三水)를 가리킨다. 이경략(李景略)은 이준(李懏)이다. 1646년(인조24)에 이민서의 아버지 이경여가 강빈(姜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한 일로 삭탈관직되고 문외출송 당하였다가 진도(珍島)에 위리안치되었고, 이어 1648년에 삼수에 이배(移配)되었다. 이때 이민서는 14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유배를 따라다녔다.
[주-D002] 그대는 …… 기재(奇才)로 : 원문의 ‘봉혈(鳳穴)’은 봉황이 나는 단혈(丹穴)을 말하는데, 흔히 훌륭한 인재가 나오는 집안을 비유한다. 이준은 이석형(李石亨)의 7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귀(李貴)이고, 아버지는 이시방(李時昉)이다.
[주-D003] 시례(詩禮)를 …… 배우셨지 : 부형(父兄)에 의한 가정교육을 뜻한다. 《논어》 〈계씨(季氏)〉에, 공자의 아들 이(鯉)가 뜰을 지나갈 때에 공자가 “시를 배웠느냐?”라며 묻자, 이가 배우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공자가 “예를 배웠느냐?”라며 묻자, 이가 배우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주-D004] 토끼들 굴을 경영하고 : 전국 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처음 설(薛)에 봉해졌을 때, 그의 문객 풍훤(馮諼)이 그에게 말하기를 “교활한 토끼는 세 굴이 있기 때문에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다.[狡兎有三窟, 僅得免其死耳.]”라고 하였다. 《戰國策 齊策4》
[주-D005] 완국(宛國)의 …… 흘리니 : 완국은 한나라 때 서역(西域)에 있던 나라 이름으로, 그 나라에서는 한혈마(汗血馬)라는 좋은 말이 난다고 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이광리(李廣利)가 완국을 정벌하면서 완국의 왕을 참수하고 한혈마를 잡아 바쳤다. 《漢書 卷6 武帝紀》 여기서는 뛰어난 집안의 훌륭한 자제라는 뜻으로 쓰였다.
[주-D006] 삼대(三代) : 중국 역사에서 이상 시대로 일컬어지는 하(夏)ㆍ상(商)ㆍ주(周)의 세 왕조 시대를 가리킨다.
[주-D007] 돌아보면 …… 신세였으니 : 원문의 ‘조양(潮陽)’은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유배를 간 곳이다. 한유가 형부 시랑(刑部侍郞)으로 있을 적에, 헌종(憲宗)이 불골(佛骨)을 금중(禁中)에 들여오자, 〈불골표(佛骨表)〉를 올려 그 불가함을 극간(極諫)했다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된 일이 있다. 《唐書 卷160 韓愈列傳》
[주-D008] 경주(瓊州)와 …… 멀고 : 소식(蘇軾)이 경주 지방인 해남(海南)으로 귀양 가면서 뇌주(雷州)로 귀양 가는 그의 아우 소철(蘇轍)에게 부친 〈자유에게 부치다[寄子由]〉란 시에 “경주와 뇌주 사이 운해로 막혔다 싫어 마라, 그래도 멀리서 서로 바라보도록 허락한 것도 성은인 것을.[莫嫌瓊雷隔雲海, 聖恩尙許遙相望.]”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41 寄子由》
[주-D009] 유배지(流配地) : 원문의 ‘장사(長沙)’는 좌천이나 유배를 비유하는 말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가의(賈誼)가 권신(權臣)의 배척을 받아 장사왕(長沙王) 태부(太傅)로 좌천되어 귀양 간 일이 있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D010] 형제들 : 원문의 ‘영원(鴒原)’은 《시경》 〈상체(常棣)〉의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난을 구한다.[脊令在原, 兄弟急難.]”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로, 형제를 뜻한다.
[주-D011] 거문고에 …… 탔는데 : 〈고산(高山)〉과 〈유수(流水)〉는 종자기(鍾子期)의 친구인 백아(伯牙)가 탔다고 하는 곡으로, 흔히 마음이 통하던 친구가 죽었을 때 인용하는 곡 이름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백아는 금(琴)을 잘 탔고, 종자기는 소리를 잘 들었다. 백아가 금을 타면서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아아(峨峨)하기가 태산(泰山)과 같구나.’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양양(洋洋)하기가 강하(江河)와 같구나.’ 하였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백아와 종자기처럼 형제간에 서로 알아주었다는 뜻이다.
[주-D012] 천육백 리 :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9권 〈삼수군(三水郡)〉에 보면 “동쪽으로는 갑산부(甲山府) 경계까지 1백 25리이고, 남쪽으로는 함흥부(咸興府) 경계까지 3백 44리이며, 서쪽으로는 평안도의 고 무창군(古茂昌郡) 경계까지 1백 10리이며, 북쪽으로는 압록강(鴨綠江)까지 1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5백 73리이다.”라고 하였다.
[주-D013] 상동문(上東門) : 동한(東漢)의 도성인 낙양(洛陽)의 동쪽 성문 이름으로, 건춘문(建春門)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한양(漢陽)의 동대문을 가리킨다.
[주-D014] 서쪽 …… 동갑내기로 : 여현(汝鉉)은 이경략의 이웃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의 자(字)로 여겨지는데, 누군지는 미상이다.
[주-D015] 이별 자리 : 원문의 ‘조석(祖席)’은 도신(道神)에게 먼 여행길에 무사하기를 비는 제사를 올리는 자리인데, 흔히 떠나가는 사람을 전송하면서 베푸는 잔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16] 서울 …… 뉘엿뉘엿 : 원문의 ‘진운(秦雲)’은 본래 진(秦)나라의 수도인 함양(咸陽) 하늘에 떠 있는 구름으로, 흔히 그리운 사람이 있는 곳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서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가리킨다.
서하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서하 이민서 선조 작품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유영봉 장성덕 (공역) | 2018
將赴三江留別李兄景略
山河千里足岐路。人世百年多哀樂。紛紛離合不可常。莫將愁顏送遠客。我有一曲爲君歌。故停行杯駐金絡。君身自是鳳穴奇。詩禮初從鯉庭學。蒼鷹下巢兔營穴。宛馬爲駒汗已赤。旁窺三代志氣豪。汎濫百家文詞博。憶昨南溟我作客。家君尙爲潮陽斥。風濤萬里際瓊雷。棘以爲欄山海隔。吾兄不道跋涉難。遠訪長沙慰幽獨。燈前笑語氣溫溫。杯酒慇懃心脈脈。鴒原秋雨雁一行。流水高山琴數曲。北去南來再渡海。惟君高義層雲薄。誰知人事異朝夕。兄住西城弟歸北。北關迢迢鐵嶺高。間以山河界沙漠。孤城一片木爲柵。此去脩程千六百。千山萬山鳥道細。七月八月飛雪白。征車將出上東門。別筵初開洛陽陌。西隣有兄字汝鉉。與兄同心亦同甲。幾年追隨共襟期。今日同來登祖席。秋風乍入雁背高。古樹霜濃黃葉落。秦雲杳杳塞日黃。斷雁離鴻風雨夕。臨行示我一篇文。字綴瓊琚語藥石。持歸塞外倘披拂。可慰天末長相憶。
서하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서하 이민서 선조 작품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