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6. 물날. 날씨: 봄꽃 새싹들이 보이지만 아직도 날이 차다.
[불장난-우리 자라고 있어요.]
아침 당번이라 일찍 학교에 닿으니 일찍 온 어린이들이 있다. 해솔이는 아버지랑 숲속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아침 당번이 하는 일은 보일러를 켜놓고, 수건을 갈고, 부엌 정리를 하며 학교 안팎을 둘러보는 거다. 금세 시간이 휙 가서 교사 아침열기다.
아침 공부는 전교생이 몸자람표를 만들고 마을청소를 하는 날이다. 몸자람표 만들기에서 키를 재는 노릇을 맡아서 어린이들이 방학동안 쑥 큰 걸 수치로 확인했다. 마을 청소는 2,3학년이랑 1,4,5학년이 나뉘어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2,3학년과 마을 쓰레기를 줍는데 어른들이 버린 꽁초쓰레기가 많아 어린이들에게 마을 청소 때마다 부끄럽다.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가 플라스틱과 비닐, 담배꽁초이다. 서로 쓰레기를 주우려는 어린이들 덕분에 들고 간 자루가 금세 가득이다. 2로 골목길을 따라 줍다가 하리공원과 마을소공원을 거쳐 형님들과 만나서 돌아왔다. 맑은샘 어린이들이 때마다 마을 청소를 해서 마을을 가꾼 덕분에 마을 분들이 맑은샘학교 어린이들을 아주 반가워하신다. 텃밭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어디 학교냐며 묻는다. 과천동 주민자치위원회에 마을청소 소식을 알려주곤 하는데 다들 어린이들을 칭찬하며 맑은샘을 응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을 속 작은 학교로 아이들을 품어주는 어른들을 만나려면 마을 속 교육과정으로 마을을 가꾸는 일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점심 먹고 급한 일처리로 잠깐 늦게 숲속놀이터에 내려가 그네 밧줄을 손보았다. 그런데 박경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청소를 하러 어디론가 간다. 한 어린이가 달려와서 무슨 일인지 소식을 들려주었다. 주운 라이터로 불장난을 한 어린이들이 있어 박경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앗 새 학기 시작되니 우리 어린이들이 우리 자라고 있구나를 보여주는 구나 싶어, 위험과 안전에 관련한 일이니 교장이 나서서 모두가 하지 말아야 할 장난을 환기시켜주려고 아이들을 불러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려주었다. 이미 잘못한 일이라는 걸 아는 어린이들이라 표정이 굳어있다. 당장은 바로 그럴 수 있어 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기에 낮 공부 열기 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누가 그런 장난을 했을까 궁금해 하지만 그걸 알릴 필요는 없다. 전체로 그런 장난을 친 어린이들은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책임 행동을 하자고 했다.
옛날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더 크게 불장난을 한 어린이들이 있었다. 그때도 3월 이맘때였고, 주운 라이터가 비슷했다. 내가 불장난을 한 기억도 떠올랐다. 많이 놀랐던 그때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2009년 불장난이 있어 쓴 글이 기억나서 읽어보았다. 당시 불장난 한 아이들은 졸업해서 어른이 되었다. 다들 잘 살고 있다.
----------------------------------------------------------------------------
3월 9일 달 날 따뜻한 봄날이라 걷기 좋다. - 전정일
불장난[2009. 3. 12]
학교 마치고 학교 마루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불났어요. 빨리 나오세요." 후다닥 뛰어나가니 이선생 얼굴이 노랗다. 개똥산 무덤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니 아이들이 무덤 잔디를 밟으며 정신없이 불을 끄고 있다. 녀석들 놀란 얼굴 살펴 볼 겨를도 없이 불을 끈다. 발로 밟고 조끼를 벗어 옷으로 끄니 불을 빨리 잡을 수 있다. 119를 외치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최선생, 이선생, 세 아이와 정신없이 불을 끄니 다행히 금세 잡혔다. 마른 잔디라 불이 쭉쭉 뻗어간다. 다 끄고 나니 그제서야 아이들 얼굴이 들어온다. 학교에 가 있으라 하고, 최선생이 떠온 물을 잔디에 뿌리고 빗자루를 들고 와 쓸면서 혹시 남아있는 불씨를 모두 없앤다. 빗자루 가지러 학교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어 무슨 일인지 글로 써 놓으라 하고 다시 무덤가로 간다. 살펴보니 다행히 무덤 앞 잔디가 세 평쯤 탔는데 쓸어 놓고 보니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는다. 안도의 한 숨을 들이쉬고 나니 이제야 여러 생각이 스친다. 아이들은? 무덤 주인 후손들이 보면 얼마나 마음이 상할까?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하나? 학교로 돌아오니 아이들 기가 팍 죽어있다. 불장난이 큰 일이 돼버린 것이니 미리 겁먹고 숨을 죽이며 선생들 얼굴을 바라보는 표정이 안쓰럽긴 한다. 허나 가슴을 쓸어내린 큰일이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지. 야단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녀석들 야단쳐 주는 것도 맞다 싶어 세 녀석을 불러 사건에 대해 저마다 쓴 글을 돌아가며 읽어라 했다. 들으니 어찐 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학교 마치고 아이들끼리 놀다가 옥수수대로 담배 피는 흉내를 내보다, 잔디에 불을 붙이고 끄는 장난을 하다 생긴 일이었다. 허허 기가 막히고 후회가 물밀듯 밀려든다. 더 자세히 살피고 뚜렷하게 살펴야 했거늘 못난 선생 탓이었다.
오늘 오후 몸놀이 시간에 용마골 골짜기 다녀오다 아이들이 담배 피는 흉내를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침회 때 어린이들이 흉내 낼 행동은 아니라고, 담배 중독이 된 어른들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라이터를 갖고 있는 줄 생각도 못하고 흉내만 냈다고 생각했으니 참. 뚜렷하게 듣지를 못한 나와 아이들을 다시 되돌아본다. 모든 생활의 바탕부터 다시 살펴야 함을 깨닫는다. 세 아이들에게는 재미로 한 장난이 얼마나 큰 일이 되어 자연과 둘레 사람들에게, 스스로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지 꾸짖고 이야기를 나누고 돌려보냈다. 돌려 보내고 세 선생 모두가 큰 숨을 들이 쉬고 그제서야 허리가 아프다며 저마다 허리를 주무른다. 얼마나 정신없었던지, 또 얼마나 다행인지 한참을 그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이 일을 어찌 할 것인지 회의를 시작했다. 남자 아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해봄직한 불장난과 담배 피는 흉내 이야기며, 학교에서 미리 해야 하는 예방 교육과 안전 교육 이야기, 세 아이들 주눅 들지 않도록 살피는 것과 아이들이 할 일, 오늘 일을 수습하는 문제까지 할 이야기가 많다. 우선 오늘 밤 저마다 더 생각해서 내일 아침 8시에 교사회의를 열어 충분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며 놀란 녀석들 더 안심시켜 줄 것 그랬나 생각도 들고, 새 학기 깊은샘 아이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게 자꾸 걸린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렸을 때 집을 몽땅 태워버릴 뻔한 불장난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언제인지 가물가물하지만 낮은 학년인 듯도 하고, 학교 다니기 전인 것 같기도 하다. 집 한 구석에 쌓아놓은 마른 나무더미 밑에서 담배 피는 흉내를 내보다 불이 붙어 엄청 큰 불이 돼버려 어른들이 몰려오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 물을 길어 불을 끈 모습이 어슴푸레 생각난다. 다행히 큰 불을 잡았고 어른들이 돌아갔고 다 터버린 나무더미 재와 타버린 감나무만 앙상하게 남아있었지. 부모님은 아무 말도 않으셨다. 어른이 되어 언젠가 그 때 일을 물어본 적이 있다. 너무 놀란 아이 더 놀랠까봐 아무 말 안 했다고 하셨다. 나중에도 다시 물은 걸 보니 내 가슴 한쪽에 어릴 때 큰 일로 새겨져 있었나 보다. 오늘 그 날이 다시 떠오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다시 돌이켜 본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높은 학년이니 따끔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얼마나 큰 일이 될 수 있는지 뚜렷하게 알려줘야 한다며 아이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이제야 가닥을 잡는다. 아이들을 기준으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선생과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생각해 본다. 크게 보면 남자 아이들이 한 번쯤 해보는 장난이기에 아이들을 먼저 살피고 마음결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겠지. 그러나 작은 장난이 얼마나 큰 일이 될 수 있는지 뚜렷하게 모든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교육으로 이끄는 것도 필요하다 싶다.
올해 밑그림에서 안전교육을 더 강조하며 3월부터 서울시민안전체험관 가보기를 잡았는데, 중요한 것은 날마다 살아가며 겪는 일들에서 위험과 안전을 살피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바탕임을 다시 생각한다.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몸을 지키고, 자연과 사람과 함께 사는데 필요한 버릇과 말과 행동을 하도록 하고, 그것이 머리와 몸에 배이도록 애를 써야 한다. 학교앞 차 조심부터 나뭇가지로 하는 장난까지 하나같이 애써 살필 일이다. 학교 차나 나뭇가지를 살피는 게 아니라 아이들 마음 상태를 늘 살피는 것이다. 물론 선생이 살핀다고 모든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아이들이 늘 선생 말을 새기고 살지 않는다는 걸 안다. 또 너무 조심하면 뭐든지 장난감이 되고 놀이감이 되는 아이들을 너무 다잡는 게 되니 그 또한 알맞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감을 늘 찾고 호기심이 많다는 걸 안다. 또 어른들 따라 하는 것을 어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어른들을 흉내 내며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에게 행동으로, 말로, 사건으로 우리에게 바르게 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 모든 활동을 하나하나 지켜볼 수도 없고 늘 팽팽한 긴장감으로 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역시 답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 선생과 부모는 늘 아이들을 깊이 알려 하고, 늘 아이들 속에 살 때 아이들 기운과 흐름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이겠지. 그것은 때로는 긴장감으로, 아이들 생활과 흐름과 기운과 마음결을 더 애써 살피는 마음으로, 삶을 더 단순하게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만들고, 아이들 흐름에 맞추는 것이리라. 새 학기 밑그림이다, 글모음이다, 회의다 할 게 많은 선생들에게 아이들은 또 이렇게 "우리를 더 깊이 봐 달라." "우리는 날마다 자라고 있다고." 말을 하는구나 싶다. 역시 아이들은 선생의 스승이다.
세 녀석 잠은 잘 자고 있는지, 오늘 선생 기운이 잘못 들어갔는지 걱정도 되고, 내일 어떻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풀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잠이 달아난다. 그러나 내일이면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정직하게 답을 내 놓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 다음 일은 선생과 어른들 몫이겠지. 부족한 생각은 선생들이 채워줄 것이고.
첫댓글 자극적인 제목에 홀리듯 들어와서 커다란 옛이야기를 ... 재미있게 보았어요. ㅎㅎ 그리고 외줄타기하듯 중심을 잡으시려는 모습, 당장 답을 내리는 쉬운 방법이 아닌 어렵고도 가장 바른 답을 선택하고자 애쓰시는 모습이 멋지셔요. 배우고 싶습니다!^^
다시 읽어도 아찔하네요..
혁준이와 함께 읽었어요~
혁준이가 우리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대요. (서혁준 올림 이라고 쓰래요)
‘또 어른들 따라 하는 것을 어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어른들을 흉내 내며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에게 행동으로, 말로, 사건으로 우리에게 바르게 살라고 말할 것이다.’
가슴에 와닿습니다!
삶으로 함께 살아가며 답을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나를 키우는 일이라 ‘육아’라 하나봐요!
선생님께서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함께 가르침을 주셔야 하니 부모님이 넘어가주시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그리고 너그러움과 사랑 안의 가르침은 아이들이 잘 아는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어요~
저도 지온이와 함께 읽어봐야겠어요..!
참, 달도 같은 3월이네요❗️🫣
교육자로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의 깊은 고민과 성찰, 균형, 따뜻한 마음까지 담긴 긴 글을 읽으며
이런 어른이 계신 곳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어 새삼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은 나를 알아가고,
균형과 조화로움을 찾는 과정임을
특히 아이를 키우며 깨닫게 되는데
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앞서 경험하신 분들이 해주시는 말씀이
참 소중하고, 더더 감사해요
오늘 아침을 따뜻하게 열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