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東坡金山寺倒讀詩〔并序〕
滄洲 全克恬
今見坡詩用二山二遠字 旣曰月明 又曰晚日 何其字數之稠疉 而一日之間
并說日夜所見也
旣曰潮隨暗浪雪山傾 則亦於輕鷗一句當押平聲 而卻平第五字云云 此由意緒窘迫 欲順理排字而不可得也
想其下筆之際 亦且悲吟苦思 未能任意做成 轉爲那邊文字所困 已至如彼
亦可捧腹
甚矣 回文之難也
欲順於倒詠 卻妨於順讀 欲順於順讀 亦妨於倒詠
茍有一字之失著 則文不成倫 語不成說
雖以坡翁之才之高 而未免茍且 况下於東坡者 豈易爲之
近世多有爲之者 而皆至語澁文曲 不可掛眼
潮來去處怒濤傾
水拍山門海月明
橋外岸迷松逕細
寺邊溪繞竹軒清
迢迢極望探時勝
得得閒遊喜景晴
遙涉與僧尋洞入
飄飄共棹小船輕
潮隨暗浪雪山傾
遠浦漁舟釣月明
橋對寺門松逕小
檻當泉眼石波清
迢迢遠樹江天曉
靄靄紅霞晚日晴
遙望四山雲接水
碧峯千點數鷗輕
소동파의 금산사 회문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서문을 덧붙임)
창주(滄洲) 전극념(全克恬)
서문 (序) 해석
이제 동파의 시를 보니 '산(山)' 자와 '원(遠)' 자를 두 번 사용했고, 이미 '달 밝음(月明)'을 말했으면서 또 '저문 해(晚日)'를 말했으니, 어찌 그 글자 수의 쓰임이 이렇게 겹치고 포개져 있으며, 하루 사이에 낮과 밤에 본 것을 함께 말하고 있는가!
이미 "물결이 어두운 파도 따라 눈 덮인 산처럼 기울어지네(潮隨暗浪雪山傾)"라고 말했으니, 또한 "가벼운 갈매기(輕鷗)" 구절에서도 평성(平聲)으로 운(韻)을 맞춰야 하는데, 오히려 다섯 번째 글자를 평성으로 하고 (운을 맞추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회문시를 짓는) 생각이 궁하고 절박하여, 이치에 맞게 글자를 배열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붓을 놀릴 때를 상상해보니, 또한 슬프게 읊고 괴롭게 생각하며 마음대로 이루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읽는) 저쪽의 문장에 얽매여 이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 또한 배를 잡고 웃을 만하다 (매우 우습다)
회문(回文)의 어려움이 심하다!
거꾸로 읊는 것에 순하게 하려 하면, 도리어 순서대로 읽는 것을 방해하고, 순서대로 읽는 것에 순하게 하려 하면, 또한 거꾸로 읊는 것을 방해한다.
만약 한 글자라도 잘못 놓이면, 글의 이치가 통하지 않고 말의 뜻이 성립되지 않는다.
비록 동파 옹(蘇軾)처럼 재주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회문시의 구속 때문에) 구차함(대충 처리함)을 면치 못했는데, 하물며 동파보다 못한 사람이야 어찌 쉽게 이것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근세에 이것을 짓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모두 말이 막히고 글이 구부러져서(어색하고), 볼 만한 것이 못 된다.
밀물 오고 썰물 가는 곳에 성난 파도가 기울어지네.
물은 산문에 부딪히고 바다 위 달은 밝네.
다리 밖 언덕은 소나무 오솔길 가늘어 희미하고,
절 옆의 시냇물은 대나무 정자를 휘감아 맑네.
아득히 멀리 바라보며 때맞은 경치를 찾으니 빼어나고,
일부러 한가로이 노니 갠 풍경이 기쁘네.
멀리 거닐며 스님과 함께 굴을 찾아 들어가고,
홀가분하게 작은 배를 함께 저으니 가볍네.
가벼운 배 작은 노 함께 홀가분하고
굴에 들어가 스님 찾아 멀리 거니네
갠 풍경은 한가로운 유람 얻어 기쁘고
빼어난 때 찾아 바라보니 아득히 머네
맑은 정자 대나무 둘렀고 시냇가에 절이 있고
가는 오솔길 소나무가 덮었고 다리 밖에 언덕 있네
밝은 달 바다 입구와 산은 물에 부딪히고
성난 파도 기울어지는 곳에 썰물 밀물 오고 가네.
[출처] 창주문집
소동파의 원시 (東坡詩 )
潮隨暗浪雪山傾
遠浦漁舟釣月明
橋對寺門松逕小
檻當泉眼石波清
迢迢遠樹江天曉
靄靄紅霞晚日晴
遙望四山雲接水
碧峯千點數鷗輕
[참고] 이 시를 거꾸로 읽을 때 (倒讀)의 의미:
輕鷗數點千峯碧
水接雲山四望遙
晴日晚霞紅靄靄
曉天江樹遠迢迢
清波石眼泉當檻
小逕松門寺對橋
明月釣舟漁浦遠
傾山雪浪暗隨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