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평(屈平.굴원)은 초나라 사람이라서 풍아(風雅)를 짓지 않고 〈구가(九歌)〉를 지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사(詞)를 짓는다는 자들은 가소롭다. 그 자구(字句)를 그대로 따르고 그 평측(平仄)을 본뜨면서 “이건 〈여몽령(如夢令)〉이다.”, “이건 〈만정방(滿庭芳)〉이다.” 라고들 하니 고루함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詞)’이다. 더러 사대부들의 입에서 나오는 ‘사’라는 것은 이전의 고사를 끌어다 인용하고 예전의 시를 표절하고 도습(蹈襲.본받아 좇음)할 뿐이어서, 도리어 거리의 아이들과 마을 아낙들이 순전히 우리말로 자기 성정을 표현해 부르는 노래가 가히 즐거운 것만 못하다. 내가 많이 기억하지는 못하나 그 십여 수를 번역하였는데 대략 뜻만 따라서 엮고 운(韻)을 붙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고는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사(詞)인 줄을 깨닫고 더 이상 〈여몽령〉이니 〈만정방〉이니 하는 것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
나비야 청산 가자 / 蛺蝶靑山去
범나비 너도 가자 / 相隨虎蛺蝶
저물거든 꽃에 자고 / 日暮花間宿
성내거든 잎에 자자 / 花嗔宿於葉
성 위의 저 뻐꾹아 / 城上布穀鳥
물어보자 왜 우느냐 / 問爾何故鳴
오동의 묵은 잎 지고 / 梧桐舊葉落
무성한 잎 새로운데 / 萋萋新葉生
오늘이 어찌 이리 쓸쓸도 할까 / 今日何寥寥
행군 군악 소리도 울려 대는데 / 且爲行軍樂
그대 떠나시네 그예 가시네 / 卿去復卿去
성 위엔 홀로 돋은 외그루 나무 / 城上孤生木
둘도 셋도 아닌 인생 / 非二非三生
넷 다섯 없을 이 몸 / 無四無五身
빌린 인생 꿈속의 몸 / 生借身是夢
놀아 보기 언제런가 / 遊戲在何辰
오늘이 오늘이어라 / 今日是今日
내일도 오늘이어라 / 明日是今日
아침마다 저녁마다 / 朝朝復暮暮
오늘이 한결같아라 / 今日只是一
물 아래 가는 모래 밟지 말아요 / 莫踐波底沙
가는 모래 밟아도 자국 없지요 / 沙纖迹還沈
그대 나만 사랑한다 말씀하지만 / 卿言甚愛我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 마음을 / 我何知卿心
창파에 둥실 뜬 새 / 滄波汎汎鳥
둥실둥실 쌍 원앙 / 汎汎鴛與鴦
깊고 얕기 안다 말라 / 莫言知深淺
헤아리기 어려우니 / 深淺誠難量
내 못에 든 고기들아 / 魚入我池中
누가 너를 몰았느냐 / 可憐誰驅汝
몰아 온 이 없지마는 / 魚言無人驅
와선 가질 못하네요 / 一來不復去
녹음방초 골짜기 / 綠陰芳草谷
단정한 저 꾀꼬리 / 有一端坐鶯
어여쁠손 그 소리 / 可憐聲相似
우리 임의 목소리 / 似我佳人聲
병풍 속 앞니 빠진 고양이 / 屛間缺齒貓
조그만 사향쥐를 노리고 섰네 / 相對小香鼠
고양이 교활하다 말들 하는데 / 人言貓狡獪
노리고 앉아서 너를 잡았으면 / 蹲蹲思捕汝
이 몸이 죽어 가서 접동새 되어 / 此身化爲鵑
이화 깊은 곳에 들어 있다가 / 梨花深處藏
야반에 괴로이도 울어 댄다면 / 夜半苦苦叫
정녕코 우리 임 애를 끊으리 / 必能斷君腸
콩밭에 든 검송아지 / 荳田烏犢子
때려도 가질 않네 / 打打不知去
이불 속 임 차지 말라 / 休踢衾底郞
이 밤중에 어딜 가랴 / 今夜去何處
사랑을 친친 감아 동여 얽어서 / 纏情復纏情
한 짐을 꾸려 메고 준령 오르네 / 一擔上高嶺
그 사랑에 깔려서 죽을지언정 / 寧爲情壓死
버리고 떠날 마음 애초 없어라 / 棄之本不肯
이별 뒤엔 그립거니 / 別後當相思
그리우면 병들 테지 / 相思詎無病
상사병은 못 산다니 / 病者所不活
오늘 밤을 지새우리 / 莫如今夜竟
이 밤 님과 지내려오 / 今夜與君歡
그대 언제 오시나요 / 君歸問何時
그림 병풍 누렁 수탉 / 畫屛雄黃鷄
홰를 치며 꼬꾜 우네 / 鼓翼唱咿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