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브레이디는 우리 돈으로 백만 원을 주워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미국 뉴저지 거리에 사는 노숙자로 한 푼이 아쉬운 사람이었다. 굴러든 돈 백만 원을 도로 내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양심을 지켰다. 6개월 뒤, 브레이디는 신고한 전액을 돌려받았다. 6개월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레이디는 떳떳하게 백만 원을 가질 수 있어 기뻤을 것이지만, 얼마 뒤 그 일에 대한 생각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종합의료 서비스 무료 혜택을 한 해 동안 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새로 생긴 수입 백만 원을 신고하지 않은 게 그 이유였다. 백만 원을 취득한 죄로, 아니 눈먼 돈을 그냥 삼키지 못한 죄로 보상금보다 훨씬 많은 병원비를 지불하게 된 브레이디. 그는 자신의 선의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돈을 주워 경찰에 갖다 준 일이 멍청한 짓이었다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선의로 행한 일이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게 아니란 걸 자연의 법칙에서도 알 수 있다. 죽어가는 아내에게 남편이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것은 선행이지만 그 결과는 불행일 수 있다. 혈액형이 같아 수혈이 가능하다 해도 아내에게 남편의 혈액은 엄밀히 외부에서 오는 이물질이다. 면역 시스템은 외부에서 오는 모든 물질을 적으로 규정하고 항체를 만든다. 남편의 특정 유전자 타입에 대한 항체가 아내 몸의 기억세포에 저장되었다면, 완쾌한 아내가 차후 임신을 시도하더라도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하긴 힘들다. 아내의 면역 시스템이 항체를 가동시켜 남편의 유전자가 들어있는 수정란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자연 유산을 반복하게 되는데, 둘 다 생식능력에 이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내는 다른 남자의 아이는 가질 수 있다. 정작 사랑하는 남편의 아이만은 낳을 수 없다. 이 비극이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마음을 다한 선의의 결과인 것이다.
(성낙향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