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4년 4월 3일자 일간 스포츠 11면에 게재된 Oh Holiday! - People Inside란의 기사 전문을 직접 타이핑해서 올림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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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명선거 캠페인 모델된 김행균 철도원 ]
지난해 7월 25일 철도운영팀장으로 근무하던 영등포 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어린이를 구하며 열차에 치여 두 다리를 절단하는 중상을 입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43).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생명을 구한 그는 각박한 세상의 작은 영웅이었고 "시대의 의인"으로 칭송됐다. 8개월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묵묵히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슬땀을 흘리는 김행균씨의 모습은 멀쩡한 육신을 가진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마음씨를 가진 그를 이번 4.15 총선의 공명선거 캠페인 모델로 내세웠다. "자기 일에 충실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김행균 씨"를 통해 깨끗한 한표, 공정한 선거운동이 각각 유권자와 후보들의 몫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김행균씨가 8개월여의 치료 끝에 재기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어 다시 한번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상 이후,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7차례의 대수술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난해 12월 종아리 살을 떼어 발목이 절단된 오른발에 이식해 발 모양을 만드는 수술. 마지막 수술이어서일까. 13시간이나 걸렸던 수술이 줬던 통증은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입원중인 부천 순천향병원에서 본격적인 재활 훈련을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말. 무릎관절 아래를 잃은 왼쪽 발에 의족을 끼고 일어서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분동안 서 있는 연습을 하는데도 땀이 비오듯 했고 다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왼쪽 다리 아래쪽은 의족과의 마찰로 벌겋게 부풀어 오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다시 걸어다니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김 씨에게는 힘이 됐다. 김 씨를 찾은 지난달 31일 오후에도 김 씨는 병상에서 예의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김 씨는 하루 1시간의 병원에서 받는 물리 치료 외에 평균 7시간 이상의 강훈을 소화하고 있다.
- 하루 7시간 이상 걷고 또 걷고
물리 치료 시간에는 허벅지 근력을 키우기 위한 기구 운동과 자전거 타기, 러닝 머신을 통한 걷기 운동 등을 소화한다. 시속 1.6km으로 운행되는 러닝 머신에서는 지팡이 없이 걷는 연습을 하느라 열심이다. 2일간 쉬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짧은 시간인 데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혼자 운동할 때는 주로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다진다. 지하 2층에서 지상 12층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다리에 힘이 붙어가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심한 중상을 입었던 사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 물리 치료가 끝나고 병실이 있는 6층으로 오를 때에는 부인 배해순씨(40)에게 "벌써 숨을 헐떡이냐"고 핀잔을 주며 같은 병실에 입원한 꼬마 환자의 휠체어를 밀며 장난을 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7시간 동안 운동한 후 잠자리에 들면 통증은 더 극심해진다. 그러나 김 씨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게 김 씨의 생활 신조.
김 씨는 지금이라도 퇴원했으면 하는 심정이지만, 부인 배 씨가 말리고 있다. 담당의사도 많이 호전됐다고 하지만 의욕에 차 있는 김 씨의 모습에 "혹시나"하는 마음에서 2개월 정도 입원 생활을 더 하길 바라고 있다.
- 가족과 나들이 가장 큰 소망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두 아들 준성(14), 효성 군(9)과 인근 생태박물관으로 봄 나들이를 다녀왔다. 퇴원한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가족들과의 나들이다. 그동안 병상 생활로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해 미안하기 때문이다.
"늦어도 5월 말에는 퇴원할 생각입니다. 퇴원 후에도 한동안은 통원치료를 해야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김 씨가 퇴원 후 재활 훈련지로 물색해 놓은 곳은 부천의 집 근처인 중동 중앙공원. "도시락까지 아예 싸서 나올 생각입니다. 가을까지는 직장에 다시 돌아가야죠."
다시 만날 때는 병원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에서 만나자는 말에 "집은 곤란한데..."라고 농담을 던지며 활짝 웃는 김 씨의 모습에서 "조금 불편한 다리"쯤은 앞으로의 그의 인생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천=김정민기자 kjm@)
[ "특수운동화 있었으면..." ]
"특수 제작 운동화, 어디 없나요?"
김행균 씨는 재활 운동 할 때 의족을 착용한 왼쪽 다리가 더 편하다고 한다. 종아리살을 이식한 오른 다리는 앞꿈치에 힘을 줄 수 없어서 앞이 땅에 닿지 않도록 제작된 구두를 신어야 한다. 그래도 힘들어 지팡이를 짚은 채 운동에 나선다.
현재 왼쪽 다리에 70%, 오른쪽 다리에 30%정도의 힘을 배분한 상태로 걷기 훈련을 하고 있다. 병상 머리맡에는 모래주머니를 놓아 두고 운동할 때마다 근력 강화를 위해서 착용한다.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오른쪽 다리의 부담을 덜어줄 운동화가 없다는 것. 발등 부위가 너무 솟아 올라 시중에 나온 운동화 중 가장 큰 것도 맞지가 않는다고 한다. 김 씨는 "현재 착용하고 있는 구두처럼 특수 제작한 운동화가 있다면 재활 훈련 시 오는 통증을 줄이고 운동량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댓글 재활 잘하셔서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아름다운 철도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