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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위기에 대해 설명하는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의 영상을 듣다가 주52시간 예외가 필요하다는 부분의 논리를 듣고 구역질이 났다.
가장 기가 막히는 궤변은, TSMC가 삼성의 추격을 뿌리치려 도입했다는 밤샘 연구직 제도 '나이트호크'를 거론할 때였다.
이보세요 이 썩을 XXX 인간아. TSMC의 나이트호크가 도대체 주52시간과 무슨 상관이냐? 나이트호크는 주야간 3교대 제도다. 즉 하루 8시간 근무다.
그러니 삼성전자도 법제도와 무관하게 지금! 바로! 도입할 수 있다. 연구직이 아닌 생산직이나 간호사 등은 이미 그렇게 일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관련해 주52시간 제도와 상관도 없는 나이트호크를 거론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결과적으로 보자면 3명이 주야간 24시간 할 일을 한 사람에게 부려먹자는 논리가 된다.
TSMC의 '나이트호크'가 부럽다면 삼성전자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인력을 3배 더 뽑으면 된다. TSMC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이트호크를 돌릴 수 있었던 거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2022년 보도에 따르면 당시 기준 삼성 파운드리 부문의 연구개발 인력은 2만명, 반면 당시 삼성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따라잡겠다던 TSMC는 6만명이었단다. 딱 세 배다.
그마저도 삼성파운드리의 인력 상당수는 자사 메모리 부문에서 데려온 인력이다. 다시말해 그 숫자만큼 메모리 부문의 핵심 연구개발 인력이 펑크난 거다.
파운드리에서 TSMC를 쫓아가는 게 꿈도 못꿀만큼 적은 인력만 늘리고, 그 반대급부로 메모리에선 핵심 인력 펑크나고, 이러는데 어떻게 회사가 안 망하냐? 단순 제조기업도 아니고 첨단기술 기업이 연구개발 인력을 이딴 식으로 굴리는데, 위기에 부딛히지 않을 수가 있냐?
실정이 이런데도 삼성전자는 2023년에 '지난 3년새 개발인력 12.5% 늘렸다'라고 자랑했다. 1년 증원 규모도 아니고 3년 동안 고작 12%다. 따라잡겠다는 경쟁사 TSMC의 규모에 비하면 쥐 오줌만큼 늘린 것인데, 이걸 자랑이라고 했다.
경쟁사가 3배의 인력을 고용하고 또 3교대를 돌릴 때 삼성은 법제도를 뜯어고쳐 1인당 근무시간을 늘려 1명에게 몇 배의 성과를 짜낼 꼼수를 기대하고 정관계 열혈 로비에 미쳐 있는 것이다. 3년 사이 고작 12% 늘린 것 갖고 생색이나 내면서. 이거 미친 거 아니냐?
핵심은 주52시간을 포함한 제도가 아니라 삼성전자 스스로에게 있다.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기술 전문가,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굵직한 핵심 원인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위기 원인 목록'에는 주52시간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해법'을 말할 때만 되면 갑자기 스탠스를 바꿔서 주52시간을 꼭 거론한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스탠스 급변이냐?
아마 삼성전자 최상위 경영진에게 물어봐도 현재 위기의 원인에 대해 연구직들의 근무 시간이 적어서라고 대답하진 못할 거다.
위기의 주원인이 아닌 주52시간제에 대해 예외를 적용하는 게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도대체 이게 말이 되기는 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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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에 보던 영상에서 증권사 임원의 발언 중 내가 특히 더 분기탱천했던 부분은, 연구개발직들에게 지금보다 일을 팍팍 더 시키고 돈만 더 주면 된다고 주장한 부분이었다. 그러면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더 할 거란다. 점잖게 차려입고 멀쩡한 목소리로, 너무도 편안한 얼굴로 그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쏟아내고 있다.
SW개발자인 나도 40대 초반까지는 연장 작업을 일일이 셀 수도 없을만큼 했었다. 특히 30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하루 한두시간 쪽잠만 자면서 4, 5일씩 연속 밤샘 작업도 불사했다.
그런데 연구개발직에게 이런 연속 연장근로, 개별 체력과 작업 강도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나와 내 주변의 개발자들의 경우 일주일이 넘어가면 일의 진도는 빼더라도 작업 성과의 품질이 대폭 떨어졌다. 온갖 버그가 속출하거나 잘못된 설계로 대대적인 재작업을 해야 하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내가 그렇게 1주일 이상씩 밤샘 작업을 감수해야 했던 기업들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개발자 추가 채용에 매우 인색했던 기업들이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몇 명의 개발자들이 과제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려 피똥을 싸면서 일을 했던 거다.
그리고 그런 회사들은 매번 좋지 않게 떠났다. 또 퇴사 시점에는 매번 심신 양쪽의 건강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한동안 다시 일을 손에 잡지 못할 정도로.
주52시간제에는 이미 특별연장근로라는 예외 조항이 있다. 노동자가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수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별연장근로는 상시적인 업무량 증가가 아닌 일시적인 업무 증가에 대해 주 12시간씩 더해 주 64시간 근무를 3개월간 적용할 수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미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지난 2년 사이에만 연구개발직에 43만 시간의 특별연장근로 시간을 활용했단다. 근데 삼성전자는 3개월간 주 12시간 더해 64시간 근무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정답은 정해져 있다. 기존 직원들을 더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더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 비용으로 35조원을 썼다고 자랑했다. 묻고 싶다. 그 35조원 중에 신규 연구원 채용이 몇 %나 되나?
무식하게 단순 계산하면, 연구원 1명당 연봉을 넉넉하게 5억원씩 잡고 35조원으로 뽑으면 무려 7만명을 더 뽑을 수 있다. 10억원씩 줘도 3만5천명을 더 뽑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기로 삼성전자가 말하는 연구개발 투자는 이런 식의 연구인력 대량 충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대충 보니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투자는 새 건물 등 시설 확충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연구개발의 핵심은 뛰어난 연구인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나의 여부 아닌가?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는 연구인력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대신, 정부와 국힘, 민주 양당에 주52시간을 허물어달라고 로비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정신 차려야 한다. 나는 딱히 진보 성향이라기보단 엄밀하게는 보수에 가까워서 우클릭 자체에는 별다른 반감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52시간제 문제는 우클릭이나 보수화의 문제가 아니다.
52시간제에 예외를 만들어달라는 삼성전자의 로비에 손 들어주는 길은, 대한민국과 삼성전자가 함께 손잡고 망할 길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삼성이 TSMC의 나이트호크가 부러우면 즉시 시행하라. 주야간 3교대 시행하는 데에 주52시간제는 아무런 제약도 없다. 단, 그러려면 그 3교대를 돌릴 3배의 연구개발직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
TSMC는 그렇게 했다. 삼성전자는 1위 경쟁사를 쫓아갈 목표만 세워놓고는 연구개발 직원들에 대해서는 턱없이 적은 인력으로 TSMC를 쫓아가려다 파운드리와 메모리 양쪽으로 가랑이가 쫙 찢어진 셈이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가 1인당 근무시간만 늘려서 쥐어짜면 해결이 되냐? 응? 그게 될 일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