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네코 후미코
아빠가 몇 년 전에
독립운동가 박열에 관한 책을 읽었어.
그 전에도 다른 독립운동 관련 책에서 단편적으로 읽고 나서,
박열에 대한 책을 읽었어.
위 책들을 통해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알게 되었지.
가네코 후미코.
그녀의 당당한 모습과 박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일본인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했던 사람..
그래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평전이 한 권 있었고,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서 직접 쓴 옥중수기가 한 권 있었어.
그 중에 가네코 후미코가 직접 쓴 책 <나는 나>라는 책을 읽었단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가네코 후미코라는 사람이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감옥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나중에 작가로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 기준으로 잘 쓴 글은 읽기 편하고 매끄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매끄럽게 잘 읽혔단다.
가네코 후미코.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얼마 안 있어,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천황 암살 혐의로 체포되었어.
이때 판사로부터 재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일대기에 대해 쓰라는 명령을 받아 쓴 글이란다.
아빠가 이런 명령을 받아 글을 쓴다고 하면 원고지 10장이나 채울 수 있으려나.
가네코 후미코는 당시까지 자신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여
책 한 권의 분량을 써냈단다.
박열과 만난 이후에 대한 내용을 끝부분 아주 조금만 나오고,
대부분이 박열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란다.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의 아내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 또한 고난과 역정의 시간이었고, 자기 성장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삶이더구나.
그래서 더욱 그의 자살이 안타깝구나.
그런데 진짜 자살한 것이 맞는지는 의심스럽더구나.
그의 글을 보면 희망과 꿈이 있어서
감옥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야.
1. 불우한 어린…
가네코 후미코는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고토부키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형사였단다.
후미코의 기억에 따르면 네 살 때까지는 무척 행복했대.
하지만 그 행복은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고,
집안은 늘 시끄러웠어.
한번은 이모가 병원 진료를 받으려고 후미코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새로운 불륜 상대가 다름 아닌 이모였던 거야.
그 일 때문인지 아버지는 경찰서까지 그만두게 되었어.
결국 후미코가 일곱 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단다.
후미코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고,
남동생은 아버지가 데려가 이모와 재혼했어.
게다가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때까지 어머니를 호적에 올리지 않은 상태였어.
그렇다 보니 후미코 역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지.
호적이 없는 무적자였던 후미코는 학교조차 제대로 갈 수 없었단다.
어머니가 무적자도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알아봐서 겨우 입학은 했지만,
학교에서 가해지는 차별은 무척 심했어.
학년을 마칠 때 주는 수료증조차 받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이후 어머니도 생계를 위해 다른 남자와 살아야 했어.
하지만 그 생활도 오래가지 못해 헤어졌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었지.
그렇게 고바야시라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어.
결국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바야시의 고향으로 내려가 지내게 되었단다.
고바야시의 부모님이 후미코를 친절하게 대해주기는 했지만,
그분들 역시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어.
학교에 적은 두었으나 꾸준히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지.
후미코의 어머니가 고단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외가에서는 외삼촌을 보냈어.
외삼촌은 고바야시의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어머니와 후미코를 외가로 데려왔단다.
당시 어머니와 고바야시 사이에서 태어난 '후루코'라는 아기가 있었는데,
후미코는 동생 후루코를 무척 아꼈기에 헤어지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했어.
외가에 온 뒤에도 안정이 찾아오지는 않았단다.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고,
후미코는 외삼촌 댁에 홀로 남겨져 지내야 했거든.
어린 시절부터 후미코의 삶은 온통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구나.
얼마 후 어머니가 재혼하여 자신과 완전히 떨어져 살게 된 것 또한
후미코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슬픔이었을 거야.
2. 고난 속의 성장
어느 날,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후미코의 친할머니가 찾아왔어.
친할머니는 조선 땅에서 고모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후미코를 조선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지.
결국 후미코는 일본을 떠나 조선 충청도 부강이라는 곳에 오게 되었단다.
부강에는 일본인들도 정착하여 40여 가구가 모여 살았고,
나머지는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어.
이때부터 조선에서 7년간 지냈어.
친할머니의 집은 형편이 나은 편이어서
후미코는 학교도 정식으로 다닐 수 있었단다.
그렇다고 할머니와 고모, 고모부가 후미코를 따뜻하게 대해준 것은 아니었어.
아빠가 후미코의 글을 통해 느낀 것은 거의 학대를 받는 수준이었단다.
'그럴 거면 왜 데리고 간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지.
학용품이 필요하다고 해도 사주지 않았고,
후미코가 열두어 살이 되었을 때부터는 식모처럼 부려 먹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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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2)
이웃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근처 들판에서 놀곤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마당 청소 등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누구누구야, 하며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토라지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웃거나 하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뜰 앞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보면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모여 오비가 땅에 끌리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잡거나 잡히거나 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가난뱅이’가 부러웠다.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둘 순 없어.”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 ‘고상’한 교육방침에 따라 집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이 단지 나를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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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코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서 성적도 무척 우수했어.
하지만 그곳에서도 다른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단다.
후미코가 태어난 이후로 행복했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스스로도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까?' 하고 깊은 고뇌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조선에서의 7년 동안 구박만 받고 사람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결국 할머니에게 쫓겨나듯 조선을 떠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단다.
갈 곳이 외할머니 댁밖에 없어서 그곳으로 향했어.
처음에는 반겨주는 듯했으나 외가댁 사정 역시 여전히 여의치 않았단다.
…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그동안 미안했다며
후미코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했어.
이번에는 아버지와 이모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갔지.
그런데 아버지가 그렇게 손을 내민 데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더구나.
아버지는 후미코를 외삼촌과 결혼시켜
승려였던 외삼촌의 사찰 재산 일부를 차지하려고 거야.
이미 아버지와 외삼촌 사이에 모종의 약속까지 오간 듯했어.
이런 게 무슨 부모인가 싶어 참 씁쓸했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미코는 아버지를 더욱 경멸하게 되었어.
후미코는 아직 나이가 어려 독립할 처지가 못 되었기에,
아버지와 외삼촌 앞에서 일부러 반항적으로 행동했지.
이에 외삼촌은 아버지에게 후미코와의 파혼을 선언했고,
격분한 아버지는 후미코를 모질게 때렸단다.
더 이상 이 지옥 같은 집에서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후미코는
무작정 차비만 챙겨 집을 나와 도쿄로 향했어.
당시 후미코의 나이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단다.
아니 벌써 열일곱 살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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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일곱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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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살고 계신 작은 외할아버지 댁에서 한 달 가량 신세를 지다가,
숙식을 제공하는 신문사에서 신문팔이 일을 시작했어.
그렇게 번 돈으로 공부도 병행했단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신문을 팔아야 했기에
학교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기는 어려웠어.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같은 학교 동급생인 이토의 권유로
신문팔이를 그만두고 비누 가루 장사를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벌이가 시원찮았단다.
아빠가 보기에는 적더라도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된 신문팔이가
비누 가루 장사보다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조언을 해준 사람이나,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 후미코나 선뜻 이해되지 않았어.
아직 어려서 사리에 어두웠을 수도 있고,
아빠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다른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결국 비누 가루 장사는 얼마 못 가 그만두고,
이번에는 식모살이를 시작했어.
하지만 이 역시 노력에 비해 보수가 너무 적었단다.
결국 다시 작은 외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
이번에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집안일을 돕는 조건으로 돈을 받기로 하고,
덕분에 학교에도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단다.
후미코에게는 '학업'이라는 꿈이 있었기에
그 모진 시련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구나.
사랑에 눈뜰 나이가 되면서 외박을 하기도 했는데,
이 일로 작은 외할아버지 댁의 눈치를 보게 되었어.
결국 그곳을 나와 홀로 독립하게 되었단다.
이때부터 자유연애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어.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조선인 친구들과도 인연이 닿았단다.
물론 그중에는 여자를 한낱 노리개로 여기는 못된 이들도 있었어.
그러던 중, 조선인 친구 ‘정’을 통해 어떤 시를 건네받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단다.
그 시는 아빠가 몇 년 전에 박열에 관한 책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야기했던 ‘개새끼’라는 시다. 제목부터 너무 강렬한데,
다시 한번 그 시를 적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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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
-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짓는
달을 보고 짓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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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미코는 ‘정’에게 그 시의 지은이가 누구인지 몰아보았고,
후미코는 박열을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그렇게 후미코는 박열을 만나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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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나는 당신 가슴속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하찮은 사람이오. 나는 그저 죽을 수 없어 살고 있는 사람이오.”
그는 이렇게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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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지만 박열과 만난 이후의 이야기는 이 책에는 거의 실려 있지 않단다.
음… 박열과 일은 이미 재판부도 잘 알고 있거나
박열과 일은 재판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짧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일기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단다.
그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사람이
정말 자살을 선택했을까?
아빠는 믿기지 않는구나.
당시 일본의 감옥에서는 여러 의문사가 많던 시절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네코 후미코도 그런 희생자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싶구나.
….
이 책을 통해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더 호감을 갖게 된 것 같아.
나중에 평전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다이쇼 12년(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책의 끝 문장: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책제목 : 나는 나
지은이 : 가네코 후미코
옮긴이 : 조정민
펴낸곳 : 산지니
페이지 : 384 page
책무게 : 499 g
펴낸날 : 2022년 06월 01일
책정가 : 18,000원
읽은날 : 2026.07.27~2026.07.30
글쓴날 : 2026.08.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