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토크쇼 진행자 필 도나휴가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들이 미국 매체들에 확인했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NBC 투데이쇼에 전달한 성명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숙환으로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로 숨을 거뒀다고 유족이 밝혔다. 눈을 감은 곳은 뉴욕 맨해튼 자택으로 알려졌다.
필 도나휴 쇼를 제작하고 진행한 그는 미국에서 "낮 시간 토크의 제왕"으로 여겨져 왔다.
고인은 넬슨 만델라. 무함마드 알리,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엘튼 존 경, 우피 골드버그, 로빈 윌리엄스, 돌리 파튼, 마이클 J 폭스 등 유명인들을 폭넓게 인터뷰했다. 그는 또 낮 시간 텔레비전 지형을 바꾼 첨단의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TV 쇼는 스튜디오에 나온 청중이 참여하는 것과 같은 오늘날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포맷을 처음 시도한 경우가 많았다. 고인이 1967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6000회가 넘는 진행을 기록했다.
1935년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도나휴는 1950년대 후반 라디오와 텔레비전 토크 프로그램을 맡아 미디어 경력을 시작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쇼는 1967년에 시작했다. 1974년 그 쇼는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근거지를 옮겼고, 제목도 '도나휴'로 간단하게 줄였다. 그 쇼는 그 뒤에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으며, 도나휴는 토론 중에 스튜디오 방청객들을 참여시키는 혁신을 선보였다.
그 쇼가 마지막으로 방영된 10년 동안은 뉴욕 시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1996년 9월에 방영됐다. 2002년 방송에 복귀해 MSNBC에서 '도나휴 쇼'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시청률 저조 등을 이유로 6개월 만에 종영됐다.
도나휴는 낮 시간 텔레비전의 얼굴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여성 청중을 의도적으로 골라 배치했다는 의심을 샀다. 오프라 윈프리는 매거진 O 2002년 9월호 기고를 통해
"만약 필 도나휴 쇼가 없었더라면,오프라 윈프리 쇼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는 여성들이 마스카라 조언과 케이크 레시피보다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도 지적이며, 우리도 주변의 세상을 걱정하며, 스스로를 위해 최고의 가능한 삶을 원한다는 것을 첫 번째로 인지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도나휴 본인은 한때 “우리가 어떤 다른 쇼보다 여성들이 걱정하는 이슈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더 사려 깊게 다룬다고 솔직히 믿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80년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피바디상을 수상했는데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과 타고난 정직함이 돋보인다"는 수상 이유를 들었다.
고인은 경력 내내 스무 차례 에미 상을 수상했는데 10번은 뛰어난 진행자로서, 다른 10번은 토크쇼 자체로 수상했다.
올해 초 고인은 미국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솔직하고 개방적인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수천 번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국가의 담론을 이끌었다"고 추켜세웠다.
도나휴는 자신의 토크쇼에 손님으로 초대된 여배우 말로 토머스를 1977년 처음 만나 3년 뒤 결혼해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 유족으로 부인 토머스와 첫 결혼을 통해 얻은 네 자녀를 유족으로 남겼다.
유족은 조화 대신 세인트 주드 어린이병원이나 필 도나휴 노트르담 장학재단에 기부할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