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영국이 만6세 취학으로 바꾸려는 이유
지난 25일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문제 해소 방안의 하나로 발표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화 논란을 보면서 원인은 바로 짚었으되 해법의 방향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기획위원회가 진단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 경제적 부담 증가, 가정과 직장 병행 곤란, 가족의 기능 약화 등과 같은 다양한 구조적 요인에 근거한다. 이는 그 어느 한 가지 해법만으로는 출산율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는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는데 나라의 인구는 세계에 유래 없이 줄어가고 있으니 온 국민이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라마다 위기가 오면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교육이다. 지금 전 세계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 유아교육이라고 보고 유아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아교육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혁을 이룬 나라로 영국을 꼽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국은 블레어총리 시절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이루었고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유아기 어린이들에게 1주일에 15시간 무상 공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2006년부터는 만 0-2세를 위한 정책도 모두 교육부에서 주관하고 있다. 명실공히 0세부터 평생교육까지의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영국은 이러한 개혁을 통해 OECD 국가 가운데 유아교육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칭송을 받고 있다. 기존의 유아교육강화에 덧붙여 최근 영국은 또 다른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2009년 10월 16일 영국 교육부의 캐임브리지 프리미어 리뷰는 현재 영국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은 어린이들의 발달에 적합하지 않고 이후의 학습에도 부정적이 영향을 미친다는 6년간의 장기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국의 초등학교 입학을 현재 5세에서 6세로 늦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이번 발표를 위해 모델을 삼은 영국은 자신들의 제도가 잘못됐다고 반성하며 오히려 입학연령을 뒤로 늦추는데 우리나라는 영국에서 무엇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학제를 논의할 때마다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는 K학년 제도를 가진 미국 역시 유아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미국은 K학년 제도가 실패했다고 보고 만5세 미만의 유아들을 위한 유아학교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유아학교(universal pre-k)구축의 시발점이 된 것은 뉴저지주 Abbott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했던 한 학부모의 법적투쟁이다. 이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공교육을 담당했던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했다.
뉴저지 법원은 이 모든 것이 유아교육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Abbott 교육청에 유아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4년 동안 Abbott 교육청은 유아교육기관에 종사하는 교사전원을 4년제 유아교육과 졸업생으로 채용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은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자신들의 성공사례를 알리고 있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이나 영국, 스웨덴의 사례를 들면 그것은 돈이 많은 선진국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 세네갈이나 칠레의 경우를 살펴보자. 세네갈은 2000년 Abdoulaye Wade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유아교육을 발전의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할 분야로 천명했다. 그리고는 일본의 국제협력기구인 JICA에 도움을 요청했다.
세네갈의 요청을 받은 JICA은 2001년부터 세네갈 유아교육발전을 위한 연구에 착수해 2004년까지 파일럿 진행을 마치고 2015년까지 유아교육 완전 공교육을 향한 종합계획을 수립한 후 재정지원을 포함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자녀의 어머니로 알려진 그녀는 2006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유아교육을 강화하기로 하고 “Chile Grows with You"라고 하는 유아학교 캠페인을 전개한다. 나라에 재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해 11월 UNICEF를 방문하여 연설을 하고 지원을 호소한다. 이후 유니세프의 원조를 받은 칠레는 3년 동안 하루에 2.5개의 유아학교를 구축하고 2008년에는 0-6세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수준 유아교육과정을 제정하는 등 유아교육의 근간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기대하는 출산율도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8년 유니세프를 다시 방문한 그녀는 지금의 유아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일하게 되는 15년 뒤의 칠레를 기대하라는 연설로 감사를 대신했다.
유아교육의 개혁을 이루어낸 나라들을 보면 정치 지도자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된다. 이 시점에서 “바보들아, 문제는 경제야!”라는 캠페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한 정치인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바보들아, 문제는 유아교육이야!”라고 외치는 정치지도자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