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는 인생!
참고말씀: 잠1:29,30; 5:23; 12:1; 13:10,13; 전1:18; 2:16; 사55:9; 롬8:15; 고전1:20,25; 딤후1:7; 요일4:18
읽을말씀: 잠1:7
주제말씀: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1:7 상)
학생들이 왜 학교에서 가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입니까? 석사, 박사들이 왜 연구소에서 주야로 연구에 매진합니까? 지식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어떤 지식뿐입니까? 세상 지식입니다.
이런 지식으로는 무엇을 해결할 수 없습니까? 우리의 구원 문제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너무도 크고 중요한 것이기에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세상 지식으로는 무엇조차 알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존재입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1:20 중) 그러니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도무지 알 수도 없는데, 어찌 이것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구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세상 지식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지식입니다. 이 같은 지식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고 연구소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높아진다고 한들, 하나님의 지혜에는 도무지 못 미치지 못하는 ‘수준미달’인 것입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본문이 강조한 바와 같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1:7 상) 여기서 ‘경외’(히, 이르아)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이는 무엇이 결코 아닙니까? 노예가 가지는 공포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딤후1:7 상) /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하)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롬8:15 상)
허면 무엇입니까?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항상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합니까?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반드시 어떤 것들이 수반되어야 합니까? 인식과 결단, 실천입니다. 즉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기는 것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기고 있습니까? 원컨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곧 지식의 근본이라는 점을 깨닫고 더욱 그리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1:7 상)
둘째,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 받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하)
그러나 미련한 자는 어떻습니까? 주의 교훈과 훈계를 멸시합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하) 어째서입니까? 세상 지식은 좋아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즐거워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잠1:29 상) 그러기에 주의 교훈을 받지 않으며, 주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잠1:30)
이런 사람은 무엇을 결코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잠1:29 하) 생각해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인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니 어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성경은 계속 이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주의 훈계를 받지 아니하는 자는 혼미한 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고,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잠5:23) 주의 말씀을 멸시하므로 패망하게 되며,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잠13:13 상) 주의 징계를 싫어하므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반면,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12:1 하)
주의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얻게 되고,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잠12:1 상) /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3:10 하) 주의 계명을 두려워함으로 상을 받게 된다고 말입니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13:13 하)
본문을 통해 또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만다는 점입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하) 즉 주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지혜로운 인생이냐 어리석은 인생이냐가 결정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 지식을 많이 쌓으면 뭐합니까?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만다면 그 많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1:18) /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전2:16 하)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이제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 받기를 즐거워함으로써,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경외하며 그분 앞에서 어리석은 인생 말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