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에 어떤 율법사와 누가복음 18장에 어떤 관원은 예수께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는 그들은 자신의 사랑의 행위를 기준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율법사는 율법에 대한 지식이 많은 자며 관원은 율법의 행위가 많은 자였습니다
그들의 지식과 행위 속에는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을 전제로 두고 있기에 예수는 그들이 붙들고 있는 사랑으로 영생을 얻을수 없음을 가르쳐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사에게 사랑의 사마리아 인과 같이 강도 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행하라고 하였고 부자 관원에게는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속으로 나를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을 하여 보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나를 발견 할수 있기 때문 입니다
자기 생각에서 사랑이 아닌 사랑을 붙들고 있는한 하늘로 부터 내려온 사랑을 바라 볼수 없을 뿐더러 알수 조차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둘을 동시에 바라 볼수 없기에 나를 위한 사랑을 바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볼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보면 나를 위한 사랑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보려면 먼저 자기 사랑을 따라 행하는 행위가 베드로와 같이 십자가 앞에 무너져야 합니다
내 사랑이 아무런 능력이 없기에 나를 지킬수 없는 두려움 뿐임을 알고 그 거짓 된 생각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사랑이 비추어져 보호 하시며 지키시는 믿음의 능력이 되어 집니다
율법사가 강도 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행하여 보면 자신 속에 내 몸과 같이 그들을 위하는 사랑이 없음을 알게 되고 부자 관원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 보면 자신 속에 그들을 위한 사랑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사는 자기의 사랑의 옳음을 세워 자기 앞에 있는 영생이신 하늘로 내려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부자 관원도 자기 안에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사랑이 없음을 알지만 돈을 사랑 함에 자기 앞에 있는 영생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떠나 갔습니다
율법은 지식과 행위가 아닌 율법은 실천적인 사랑 으로서 율법을 힘써 행하면 행할수록 자기 안에 사랑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율법으로 자기 안에 사랑이 없음을 아는 자는 자기 안에 선한 사랑이 있는 것 처럼 모양을 만들지 않고 참 사랑의 본체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 보게 되어 집니다
육신 속에서 스스로 만드는 사랑은 겉 모양은 화려 하게 보일 지라도 그 안에 새로운 몸으로 살아나는 부활의 생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부터 내려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겉 모양은 초라하게 보일 지라도 그 안에는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아 나는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사랑과 내 안에 사랑을 서로 비교하여 보아 거짓과 참을 알고 내 안에 거짓 사랑을 벗어 던지고 예수 하나님의 사랑으로는 옮겨지는 생명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버리는 사랑이고 내 안에 사랑은 나 하나의 영생을 위하여 자기를 지키려는 이기적인 다른 사랑이 먼저 발견 되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율법사나 부자 관원은 자기의 하나 만이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이기적인 사랑 이었습니다
자기 하나 구원을 받고자 하는 이기적인 사랑의 행위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없지만 자신은 사망에 던져질 지라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예수와 같은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의 행함 속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자기를 버리는 예수의 사랑을 바라 보고 믿는 자들 안에 선물로 나타 나심으로 장차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로 받아 들이는 것 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본체 이시며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이시고 전능 하신 하나님 이시며 영원히 존재 하는 아버지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3 / 빌2:6 / 사9:6)
예수도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하나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12:8 / 요10:30)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록 1장13절~18절의 위엄의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 오지 아니 하시고 그의 형상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이사야 53장 2절의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아름다움이 하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육체의 모습으로 이 땅의 자기 백성들 안에 내려 오셨습니다
하나님 만을 여호와 만을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니며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가 기름 부은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이심을 믿고 자신을 모태에서 조성하신 생명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신앙 입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을 만났고 아브라함도 자신을 주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고 증거 하시매 이를 듣던 유대인들이 참람하다고 여겨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요8:54~59)
다윗이 예수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고 하심을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알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이심을 만민 앞에 증거 하였습니다(행 2:25)
하나님이 장엄하신 계시록 1장 13~18절의 자기의 모습의 형상을 벗어 버리고 이사야 53장 2절의 풍채도 없고 고운 모양도 없고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아 흠모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육신의 모습으로 이땅에 나타 나심은 버림 받음으로 우리의 생각에 믿는 사랑의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수 없기에 하늘의 사랑을 비추어 주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 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는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 속에 사랑으로 영생을 얻으려는 거짓 된 생각을 벗겨 주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바라 보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을 비추어 내 안에 붙들고 살아 온 사랑과 비교하여 보면 전혀 다른 사랑을 확연히 알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의 사랑은 자기를 사망에 던져 버리면서 까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는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이며 내 안에 사랑은 나 하나의 영생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사랑의 행위로 사는 자신의 거짓 된 신앙의 모습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사랑 앞에 내 안에 사랑을 비추어 보아 나 하나 영생을 얻으려는 이기적인 사랑을 발견하여 이를 벗어 버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는 하늘의 사랑으로 돌이키는 참 회개가 이루어져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사랑은 우리 안에 이기적인 사랑을 절개하는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주어 예수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는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을 심어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지으신 생명의 아버지로 알고 내 안에 나 하나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벗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는 예수의 참 사랑의 옷을 입고 따르는 자에게 영원한 몸으로 변하는 예수 생명의 부활이 찾아 오게 됩니다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예수는 이 땅의 초라한 육신의 모습을 벗고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눈은 불꽃 같고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형상의 영광 된 모습으로 다시 부활 하셨습니다(계1:13-16)
예수를 생명의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정한 날에 부활하신 예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는 사망이 끝난 새로운 몸의 첫째 부활이 이루어 집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지구를 표준 모델로 하여 온 우주의 생명 없는 별에 생명을 불어 넣어 끊임 없는 창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와 친구로 영원히 함께 다스리는 참 안식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 마음 속에 생명의 빛이 되어 영생을 얻기 위한 십자가 예수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참 회개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