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 의사 불가론"에 대해 말한다. --
정 교수 재판과는 별개로, 작년 의사협회 집단 휴진 및 의대 졸업생 면허 시험 거부 동안에 뜬금없이 퍼져 나온 "조양은 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쪽의 논리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1. 의사 자격은 성적이 뛰어난 자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
2. 조양은 원래부터 머리가 안 좋았다. (증거는 알 수 없음)
3. 머리가 안 좋은데 의사가 되려 억지로 밀어넣으려니 입시 비리를 저질렀다.
4. 억지로 들여 보내 공부시키다 보니 유급도 한 것이다.
5. 따라서 조양은 의사를 시켜선 안 된다.
그러나 1번부터 5번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전부 다 틀렸다.
1. 다수의 미국 의과대학에서는 더이상 시험 성적으로 입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기본적 학습 능력이 인정된다면 의사에게 필수적인 것은 높은 성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서울의대 예과 1학년 때. 과 시작하자 마자 의과대학 포기한 애들이 몇 명 있었다.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애들이었다. 수학에 대해선 거의 천재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자긴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학교에 안 나오기 시작하더니 학력고사를 다시 쳐서 공대에 들어간 경우가 있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친구들에게 의사는 안 맞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빼어난 두뇌를 가진 친구들은 아인슈타인이나 마리 퀴리처럼 순수/응용 물리학같은 걸 하는 게 맞지 않을까?
2. 그럼, 누가 의사를 하는 게 맞는가?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 의과대학 공부를 하다 보면 허탈감에 빠진다. "이게 공부냐?" 라는 것이다. 의과대학 과정은 암기로 시작해서 암기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학에서 천재성을 돋보이던 친구들은 너무나 힘들어하고 중도 포기하기도 한다. 우리 친구들끼리 늘상 하던 말이 이런 거였다. "좋은 머리 갖고 의대 와서 이 무슨 짓이고"
지난 해 의사 집단 휴진 도중 의협에서 발표한 "의사 전교1등론,"에 대해 실소를 터뜨리게 되는 이유이다. 물론 학문적으로 의학을 더 진취시키기 위해 천재성 있는 과학자들이 의학에 붙을 이유는 있다. 그러나 직능인으로서의 '의사'를 놓고 얘기한다면 첫째 사람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소명 의식도 책임감도 없다면, 그런 의사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에도 지식에도 관심이 없어지게 된다. 대학병원에서의 보직이나 지위나, 돈에 대한 관심만으로 열의를 보이는 의사들도 많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사람들을 명의라 부르지 않는다.
자기 직업에 대한 관심과 소명감, 그리고 책임감이 수능 점수와 학점 순서로 나온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의사는 학교 성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다.
3. "입시 부정"이란 말은 조양에게 해당시키기 어렵다고 본다.
첫째 그의 부모가 입시 당시엔 평범한 교수들이었지, 국회의원도 고위 공직자도 아니었다. 입시 부정이란 말은 숙명여고 쌍동이 등과 같이 학교 측과 같이 '모의'가 있는 경우에 써야 적절하지 않을까? 그들은 모의를 통해 시험지를 통째로 넘기고 답을 외워서 작성해 100등이 넘게 석차가 이동했다. 이에 반해 정교수가 받은 혐의는 기껏해야 대학 업무 방해 정도일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 아들은 서울대학교 실험실을 무단 사용하고 이미 서울대에서 나와 있는 논문에 자기 이름 붙여서 표절하여 예일대에 제출하고 거기 합격했지만, 예일대에서 그를 제적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는 없다. 입학 사정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 확실하다 하여도 그 학생을 제적시킬지 계속 다니게 할지 이런 것은 그 대학의 권한이지 대한민국 검찰이 결정할 문제가 못된다.
조양이 의사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가 아닌가는, 그를 주변에서 보아 온 사람들이 그의 평상시의 책임감과 의사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소명의식과 사명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 성정 및 건전한 멘탈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신문 방송에서 보도되는 피상적인 정보만으로 그의 성정과 멘탈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판정한단 말인가? 조국 전 장관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시작한 수사로 그 자식을 대신 처벌받게 한다는 것은 문명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의과대학에서 유급은 매우, 매우 흔한 일이다.
유급을 한 번도 당하지 않고 졸업한 사람들도 더러 있으나, 서울대학 같은 경우는 과거 기준으로 볼 때 성적을 더 높이고 싶어서 일부러 유급을 맞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유급을 맞았던 그 친구들, 현재 의사로서 매우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러니 "조양은 유급을 맞았던 학생이니 의사가 되어선 안된다"라는 명제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5. 만약 어떤 의사가 여 환자에 대해 성추행을 반복적으로 저지른다거나 환자 치마 밑 사진을 맨날 찍고 몰카 설치를 하고 있다면 면허를 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맨날 성추행해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의사들조차 면허를 뺏기지 않는다. 아무 일 없던 듯 병원을 잘만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13년 전 의전원 지원 당시에 "제출"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기재"했던 고딩 체험학습들에 대해 시비를 걸고 참가한 시간을 100% 증명 못한다며 면허증을 뺏겠다고 난리를 치는 이딴 짓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의사라는 직능인은 귀족 계급도 아니며 사회 최상류층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자기 직능을 수행하는 전문직일 따름이다.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해 그 자식을 잡아다가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야만적인 공격을 퍼붓는 경우가 있단 소리를 후진국에서조차 들은 적이 없다. 아무리 상대편 '진영'이 미워도, 부디 상식을 갖추고 공격하길 바란다. 어찌 문명 사회에서 이런 일이 태연히 일어난단 말인가? 이제 그만 좀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