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괴상스럽고 잡스럽고 우습고 기이하며 거룩한 것을 구경하려면 먼저 선무문(宣武門) 안에 있는 상방(象房)에 가 봐야 할 것이다. 내가 북경에서 코끼리를 본 것이 열여섯 마리인데, 모두 쇠사슬로 발을 묶어서 움직이는 모양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코끼리 두 마리를 열하 행궁(行宮) 서쪽에서 보았던 바 온 몸을 꿈틀거리면서 걸어 가는 것이 풍우(風雨)가 움직이는 듯 몹시 거창스러웠다. 내가 언젠가 동해(東海)에 나갔을 때 파도 위에 말처럼 우뚝우뚝 선 것이 수없이 많으며 집채같이 큰 것이 물고기인지 짐승인지 해돋기를 기다려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해가 돋기도 전에 그것들은 바닷속으로 숨어 버렸었다. 이번에 코끼리를 십보 밖에서 보았는데 그때 동해에서 보았던 것과 방불할 만큼 크게 생겼다. 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약대 무릎에, 범의 발톱에, 털은 짧고 잿빛이며 성질은 어질게 보이고, 소리는 처량하고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장(丈) 남짓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코끝은 누에 등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 넣는다. 때로는 코를 입부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다시 코 있는 데를 따로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코 생긴 모양이 이럴 줄이야 누가 뜻했으랴. 혹은 코끼리 다리가 다섯이라고도 하고, 혹은 눈이 쥐눈 같다고 하는 것은 대개 코끼리를 볼 때는 코와 어금니 사이를 주목하는 까닭이니, 그 몸뚱이를 통틀어서 제일 작은 놈을 집어가지고 보면 이렇게 엉뚱한 추측이 생길 만하다. 대체로 코끼리는 눈이 몹시 가늘어서 간사한 사람이 아양을 부리는 눈 같으나 그의 어진 성품은 역시 이 눈에 있는 것이다.
강희 시대에 남해자(南海子.동산 이름)에 사나운 범 두 마리가 있었는데, 길을 들일 수 없어서 황제가 노하여 범을 코끼리 우리로 몰아 넣게 했더니, 코끼리가 몹시 겁을 내어 코를 한 번 휘두르자 범 두 마리가 제 자리에서 넘어져 죽었다고 한다. 코끼리가 범을 죽이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범의 냄새를 싫어하여 코를 휘두른 것이 잘못 부딪쳤던 것이다. 아아, 세간 사물(事物) 중에 털끝같이 작은 것이라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찌 다 명령해서 냈을까보냐. 하늘은 형체로 말한다면 천(天)이요, 성질로 말한다면 건(乾)이요, 주재(主宰)하는 이는 상제(上帝)요, 행동하는 것은 신(神)이라 하여 그 이름이 여러 가지요, 또 일컫는 명색이 너무 친밀하다. 허물이 없이 말하자면 이(理)와 기(氣)로서 화로와 풀무로 삼고, 생장과 품부를 조물(造物)이라 하여 하늘을 마치 재주 있는 공장(工匠)이에 비유하여 망치ㆍ도끼ㆍ끌ㆍ칼 같은 것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경(易經).주역》에 말하기를, “하늘이 초매(草昧.천지가 개벽되면서 만물이 혼돈한 현상)를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초매란 것은 그 빛이 검고 그 형태는 안개가 낀 듯하여 마치 동이 틀 무렵 같아서 사람이나 물건을 똑바로 분간할 수 없다 하니, 나는 알지 못하겠다. 하늘이 캄캄하고 안개 낀 듯 자욱한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무엇일까. 맷돌에 밀을 갈 때에 작고 크거나 가늘고 굵거나 할 것 없이 뒤섞여 바닥에 쏟아지는 것이니 무릇 맷돌의 작용이란 도는 것 뿐인데, 가루가 가늘고 굵은 데야 무슨 마음을 먹었겠는가.
그런데 설자(說者)들은 말하기를,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를 주지 않았다.”
하여 만물을 창조하는 데 무슨 결함이라도 있는 듯이 생각하나 이것은 잘못이다. 감히 묻노니, “이를 준 자는 누구일 것인가.” 한다면, 사람들은, “하늘이 주었지요.”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하늘이 이를 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다면, 사람들은,
“하늘이 이것으로 먹이를 씹으라고 주었지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이를 가지고 물건을 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면, 사람들은, “이는 하늘이 낸 이치랍니다. 금수(禽獸)는 손이 없으므로 반드시 그 입을 땅에 구부려 먹을 것을 찾게 된 것이요, 그러므로 학(鶴)의 정강이가 높고 보니, 부득이 목이 길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래도 입이 땅에 닿지 않을까 하여 입부리를 길게 해준 것이요, 만일 닭의 다리가 학과 같았다면 할 수 없이 마당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라오.”
하고 말하리라. 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대들이 말하는 이치란 것은 소ㆍ말ㆍ닭ㆍ개 같은 것에나 맞는 이치다. 하늘이 이를 준 것이 반드시 구부려서 무엇을 씹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면 코끼리에게는 쓸데없는 어금니를 주어서 입을 땅에 닿으려고 하면 이가 먼저 땅에 걸리니 물건을 씹는 데도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가.”
혹은 말하기를, “그것은 코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리라. 그러나 나는 다시,
“긴 어금니를 주고서 코를 빙자하려면 차라리 어금니를 없애고 코를 짧게 한 것만 못할 것이 아닌가.”
했더니, 이때에야 말하는 자는 자기의 주장을 우겨대지 못하고 수그러졌다. 이는 언제나 생각이 미친다는 것이 소ㆍ말ㆍ닭ㆍ개뿐이요, 용(龍)ㆍ봉(鳳)ㆍ거북(龜)ㆍ기린(麟)같은 짐승에게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코끼리는 범을 만나면 코로 때려 눕히니, 그 코는 천하에 상대가 없으나 쥐를 만나면 코를 가지고도 쓸모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고 멍하니 섰다니, 이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하면 아까 말한 소위 하늘이 낸 이치에 맞다고는 못할 것이다. 대체로 코끼리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인데도 그 이치에 있어 모를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천하 사물이 코끼리보다도 만 배나 복잡함에랴. 그러므로 성인이 《역경》을 지을 때 코끼리 상(象) 자를 따서 지은 것도 이 코끼리 같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하게 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