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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 27 신발끈을 풀기도 - 요 1: 30 먼저 계심이라.
요 1: 27 신발끈을 풀기도 -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
1]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는 진상 조사단의 물음에 대해 세례 요한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증언하는 형식으로 답한 것은, 자신의 사역을 메시야의 사역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 예수를 증언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요한 자신의 위치를 밝히 드러낼 수 있었다.
2]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신발끈'이란 당시 유대인들이 도보 여행시 착용하였던 신발(가죽 샌들)의 끈을 가리킨다.
유대 풍습에 의하면 주인은 초대한 손님이 방문하면 자기 집에서 가장 천한 종을 시켜 손님의 신발끈을 풀고 발을 씻기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세례 요한의 고백은 자신을 그리스도에 비할 때 가장 비천한 종의 자격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이 표현은 사 복음서에서 공히 요한의 자기 진술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 마 3: 11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막 1: 7 -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 눅 3: 16 -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비록 메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천한 존재였지만,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라는 직분은 그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는 영광스럽고 기쁜 것임을 요한은 자부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31절에서 설명되듯이, 세례 요한 자신도 처음에는 예수가 진정 메시아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아마 세례 요한은 평소에 예수에 관해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확신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실로 예수를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은 예수께 세례를 베풀 당시 성부와 성령의 충만한 계시를 받게 됨으로부터였다.
* 눅 3: 21-22 –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요 1: 28 세례 베풀던 곳 -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
1]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저자 요한은 산헤드린 조사단이 세례 요한을 조사한 사실을 목격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세례 요한의 자기 증언'의 장소를 언급한 것은 단순한 부가적 설명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저자 요한은 당시 상황이 너무도 인상적이며 중요한 것이라 여겼으므로 그 생생한 기억을 여기 옮기고 있다.
2]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본문에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란 예루살렘 남동쪽으로 약 3km 지점에 있는 마을이 아니라,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장소로서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장소였다.
* 요 11: 18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본서에서 '베다니'라는 두 개의 지명을 구분하여 사용된 것은 본서가 영지주의자인 어느 헬라인의 저작이 아니라 당시 유대의 상황과 지리에 익숙했던 사도 요한의 저작임을 입증하는 일례이다. (본서의 서론 '저자' 부분 참조).
6. 하나님의 어린 양 ( 1: 29-34 )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한 첫 번째 증거는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메시아께서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보인 대로 속죄 제물이 되실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 사역을 가리킨다.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은 유월절 어린양을 가리킨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고린도전서 5: 7의 증언대로, 유월절 양의 죽음이었다.
그는 세상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신 속죄 제물로 죽으셨다. 그는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요 1: 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1]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현재 중간태 분사 '에르코메논'(*, '나아오다')을 사용함으로써, 본문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연출한다.
2] 보라.
헬라어 '이데'(*)는 찬탄이 섞인 감탄사로서, 세례 요한의 적대자들이 떠나고, 그가 증언한 예수께서 밝은 빛처럼 찬연하게 다가오셨을 때 그가 드러낸 찬탄과 감격을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3]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본문은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분'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1) 19-27절이 예수에 대한 요한의 간접 증언의 성격을 띠지만, 여기에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직접 증언한다.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한 성격 규정(6-8절, 15절),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을 통한 그리스도에 대한 간접 증언을 거쳐서 드디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고 감격과 놀라움에 떨리는 직접 증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어상 본문에는 문장을 종결하거나 서술하는 동사가 없다. 그리고 '보라'는 감탄사에 이어 '하나님의 어린 양'(the lamb of God, NIV)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이 동격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은 죄 된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대립 관계를 보여주며, 이러한 관계를 화목하게 할 존재를 부각시키고 어두움 속에 빛이 비추어 세상을 밝게 하듯이(5절) 죄악에 빠져 방황하는 이 세상을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변화시킬 그리스도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17, 18절).
(2)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의 성격을 뚜렷이 반영한다.
'어린 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암노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사용되었는데, 두 번은 본서의 본 장에서(본절, 36절) 한 번은 행 8: 32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벧전 1: 19에서이다.
* 행 8: 32 -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벧전 1: 19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 중 벧전 1: 19는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일부인 사 53: 7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 사 53: 7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신약성경의 몇몇 구절에서는 사 53장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적용시키고 있다.
* 요 12: 38 -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 마 8: 17 -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 눅 22: 37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 행 8: 32-35 –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 벧전 2: 22-24 –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또한 죄를 대속하는 '속죄양'에 관해서는 구약의 여러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 창 22: 2-8 –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레 14: 10-25 – 정결례 – 10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11 정결하게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12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13 그 어린 숫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와 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건제물은 속죄제물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4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15 제사장은 또 그 한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16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17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18 아직도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하고 19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21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록을 취하고 22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23 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24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록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25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 민 6: 12 -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요 1: 30 먼저 계심이라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보다 앞선 자’이시며 ‘자기보다 먼저 계신 자’임을 증언하였다.
이것은 이미 15절과 27절에서 증거된 바이며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단지 한 인간이 아니시고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신적인 존재이시다.
1]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본문은 15절의 말씀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세례 요한에게 나아온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증언해야 할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재차 환기시킨다.
특히 본문에서 '내 뒤에 오는 사람'에서 '사람'의 헬라어 '아네르'(*)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아네르'는 일반적인 의미인 '인간'을 가리키는 '안드로포스'(*)와는 달리 '남성'을 가리킨다.
특히 이 용어는 결혼 관계에 있어 남성이 여성의 머리가 됨을 시사하는 용어이다.
* 엡 5: 23 -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따라서 이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가 됨을 암시한다.
2]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이것의 헬라어 동사는 '에이미'(*)의 3인칭 단수 현재형인 '에스티'(*)로서 세례 요한에게 증언을 받는 현장에서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또한 동사 '에스티'는 '계시니라'(1절)로 번역된 '에이미'의 3인칭 부정 과거형인 '엔'(*)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즉 '엔'이 영원 전부터 선재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면, '에스티'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시고 인류 구속을 위하여 공생애를 시작한다는 현장감(現場感)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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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