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여름이 되자 아련하게 떠오른 그 시절의 여름...
이상하게 그때는 너무너무 싫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 속에서는 왜 이렇게 미화됐을까 궁금해서 써 본 그때 그 기억
1. 여름 방학 보충 수업기간
생기부다 뭐다 하며 반강제로 듣게 된 여름 방학 보충 수업
방학임에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 너무 짜증났지만 그래도 개학에 비하면 늦춰진 등교 시간과 출근 시간 조금 지나 한산해진 등굣길의 분위기
사람 없이 조용한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햇살 받던 기억
신청한 학생도 많이 없어 덩달아 조용해진 학교 정문
아직 오후가 되지 않아 따끈하던 햇빛과 파란 하늘
가끔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과 조용한 골목에서 들려오던 매미 울음소리(추올스 추올스 추루맴맴매앰-맴! 맴맴매앰-맴! 스피오 스피오 맴맴- 쌔야!)
급식실이 쉬던 탓에 친구들과 말 맞춰 가져오던 도시락
점심시간 전 오전 쉬는시간에 몰래 까먹는 재미
가끔 돈 모아 운동장 그늘 한켠에 자리 깔고 시켜먹던 배달음식
무슨 말인지 모를 선생님 목소리에 졸린 눈 슬쩍 감으면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바람 덕에 살랑이던 머리카락
가끔 큰 맘 먹고 오전에 가방 챙겨서 잽싸게 수업 째고는 정문 밖으로 달려 나와 떡볶이 먹고 노래방 가기
그리고 그 틈틈이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한테 문자 보내기 ‘선생님이 출석 불렀냐?’ ‘나 찾아?’
보충이 끝나면 곧바로 개학인 탓에 방학이라는 기분도 느껴보지 못하고 여름을 흘려보낸 것 같은 아쉬움
(실상 : 존나 더움, 존나 피곤함, 째고 집에나 가서 디비 자고 싶음, 맴맴충 존나 울어댐, 에어컨 더럽게 안 틀어줌, 수업 짼 날 항상 걸려서 다음날 잔소리 겁나 들음)
2. 여름 장마철의 학교
밤인지 아침인지 분간도 안 되는 어둑한 하늘
등굣길부터 내리는 이슬비 때때로 소나기
학교 들어서는 복도를 가득 채운 갖가지 우산들
유독 크게 울리는 아이들 목소리
전등을 다 켰어도 여전히 어두운 교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창가에 나란히 널려있는 젖은 양말들
덜덜덜 소리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때때로 쾌적한 에어컨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빗소리 천둥소리
어두운 실내 탓에 유독 더 잠이 오던 수업시간
누군가의 주도로 시작된 ‘선생님 무서운 얘기 해주세요!’
종 치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으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이야기하던 온갖 괴담 이야기와 끝나고 필수 코스였던 서로의 어깨 털어주기
가끔 폭우 오는 날이면 종아리까지 물이 들이차던 수심 낮은 지형 그리고 맨발에 삼선 슬리퍼 차림으로 즐기던 간이 수영장
잠깐의 물놀이 후 다같이 화장실로 몰려가서 씻던 발
끝나고 친한 친구랑 우산 나눠쓰고 정문을 나서던 하굣길
이른 저녁부터 켜지기 시작한 자동차 헤드라이트
비 오는 날이면 더 북적였던 학교 앞 어묵꼬치 팔던 곳
잠깐 들러서 두어 개 먹고 한 손에 돌아가던 길 한 손에 든 종이컵 속 짭쪼름한 어묵 국물
(실상 : 존나 눅눅, 존나 우글우글, 버스타면 존나 축축, 다리에 닿는 우산 존나 찝찝, 존나 누글누글, 교실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 풍기던 괴랄한 냄새, 잘못해서 신발 신은 채 웅덩이 밟고 본능적으로 좆됐음을 느끼던 그 순간)
어떤 기억이 김쭉빵들의 기억 속에서 더 미화됐는지 궁금해서 한 번 써 봄
문제시 재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