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철이 분석하는 "세월호 침몰"
- 처음부터 구조요원 배 위에 내리게 해야
- 도끼로 창문 깬 뒤 로프·와이어 이용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구출했어야
잔인한 4월이 지나갔다. 하지만 세월호는 차가운 바닷속에 아직 남아있다. 전 국민의 가슴속에도 응어리와 생채기가 화인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세월호 대참사로 인해 전 국민이 ‘집단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가운데, 여객선 침몰원인과 책임에 대해 무수히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이 중 ‘탐욕스러운 자본이 배를 침몰시켰고, 부실하고 부적절한 사고 대처가 참변을 확대시켰다’는 지적은 정확해 보인다. 하지만 원인을 명명백백히 밝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신파조처럼 들린다.
위클리포유는 지난달 26일, 특강차 대구를 찾은 신상철 전 서프라이즈 대표를 만났다. 신 전 대표는 해양·조선 전문가다.
그는 “천안함으로 온 국민이 해양·조선 관련 학사과정을 마쳤다면, 이번 세월호는 해양·조선 석사과정에 해당될 것”이라며 정부의 세월호 사고대처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다.
급선회로 전복됐다? 핵심적인 이유 안돼
복원성 무시한 과적 탓 선박은 급선회해도 전복되지 않아야 돼
이것이 버스와 다른 점
복원성 약화 알면서도 면피용 개조조건 걸어
선박개조 승인해 준 한국선급협회도 잘못
바텀 터치로 기울어져 해수 유입됐을 가능성
제주해협서 사고 났다면 생존자 더 적었을 수도
선사측 책임 가장 크고 선장·1등 항해사 등 순
해경 아닌 해군이 초기 구조 나섰어야
신상철 전 대표는 해양·조선전문가다.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소위로 임관해 중위로 전역했다. 수송함 근무 시절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개 도서를 주로 다녔다. 전역 후 한진해운에 입사해 항해사로 태평양 항로, 극동미주항로의 컨테이너선 항해사로 근무했다. 한진해운에서 신조선프로젝트(선박 건조)에 참여했고 거제 삼성조선소, 울산현대중공업 대우옥포조선소에서 8년간 13척의 배를 건조했다.
- 대참변이다. 이번 세월호의 사고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양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는 급선회로 인해 전복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 전체를 조명하는 결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선박은 얼마든지 최대 변침을 할 수 있고, 그럼에도 전복되지 않아야 한다. 선박이 버스처럼 과속으로 달리다 급하게 핸들을 틀면 뒤집어지는 것처럼 설명하는데, 선박은 급선회한다고 해서 전복될 수 없고 전복돼서도 안 된다. 만약 급선회를 해서 전복했다면 화물을 잘못 실은 것이다. 선박에서 변수는 화물이다. 정원이 921명인데 승객 476명은 침몰 변수가 안 된다.”
- 세월호는 지난해 운항 초기부터 과적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과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안정성과 복원성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켰다.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는데 첫째, 한국선급이 실시한 세월호 복원성 계산결과에 따르면 세월호의 화물량은 2천437t에서 987t으로, 여객은 88t에서 83t으로 각각 줄이고 평형수는 1천23t에서 2천30t으로 늘려야 복원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변경으로 무게중심이 올라간 만큼 여객과 화물을 포함한 최대 적재량을 1천450t 줄이고, 평형수는 1천7t가량 늘려야 복원성이 유지된다. 평형수란 배의 아래와 양쪽에 위치한 밸러스트 탱크에 들어가는 바닷물이다. 이곳에 물을 넣어주면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가 배의 균형을 잡아준다. 반면, 이곳에 물을 빼고 공기를 채우면 배는 위로 올라가게 돼 낮은 수심을 통과하는 데 용이하지만, 무게중심이 올라가 배가 불안정해지고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 청해진해운은 이 기준을 어기고 화물을 3배 넘게 실었다. 청해진해운은 15일 밤 세월호 출항 전, 인천항 운항관리실과 해운조합에 화물 657t과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보고했는데, 이 무게가 3천608t이라고 밝혀졌다. 한국선급이 승인한 복원성 유지를 위한 화물량 987t을 기준으로 하면 화물을 3배 이상 과적한 셈이다. 화물을 과적하면서 평형수는 승인조건보다 적게 실었을 것으로 보인다.”
- 과적과 관련해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인가.
“화물고박(Lashing·선박 내 화물고정)의 문제다. 선박은 유체 위에서 좌우앞뒤로 흔들면서 이동하는 수송수단이기 때문에 선박의 화물은 철저히 고박돼야 한다. 그런데 늘 다니는 항로라고 해서 기상상태가 양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장비의 부실함이나 시간, 인력 등 경제적 이유로 고박을 제대로 안 했다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는 제대로 화물고박을 하지 않았다. 갑판 위 컨테이너박스의 경우 앞과 뒤 ‘X밴드’ 형태로 고박을 하고, 내부고박은 끼워 넣기 형식으로 고박을 하지 않아 운행 중 컨테이너박스가 흔들려 쏟아지는 현상이 나타나 급격히 침몰했다. 또 내부화물인 승용차 150대와 탑재 트레일러의 경우, 턱없이 약한 쇠사슬을 형식적으로 걸쳐놓았다. 승용차는 아예 고박을 하지 않았고 바퀴받침목만 끼워 넣는 방식으로 적재했다.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전직 항해사 증언을 통해 발표된 사실이다.”
- 또 다른 원인은 없나.
“화물 고박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박개조다. 세월호는 1994년 4월 일본에서 건조돼 18년간 운항됐다. 2010년에 중고선(船) 시장에 나와 2012년 10월 퇴역했다. 2013년 3월 한국에 재취역한 이 여객선은 842명이던 승객정원을 늘리기 위해 921명을 태울 수 있는 증설공사에 착수해 갑판 위 3~4층에 280t 정도의 무게를 늘렸다. 선박은 물 위에서 안정성을 가져야 하는데, 문제는 허가해주는 관청인 한국선급협회(KR)가 개조 승인 조건으로 화물과 승객을 줄이라고 요구한 점이다. 선사에서 승객과 화물을 늘리겠다는 의도로 개조했는데, KR는 선박의 복원성이 나오지 않은 걸 알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선박개조조건을 걸었을 뿐이다. 해운회사가 화물을 줄여서 싣겠느냐. 결국 지켜지지 않을 권고를 한 KR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해운회사와 조선소, 선급협회의 나쁜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선박 개조문제, 복원성을 무시한 화물적재, 고박불이행 등 세월호는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 달, 아니면 그 다음 달이라도 언젠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인재였다.”
- 안개 때문에 세월호 출항이 2시간30분이나 늦었다고 했다.
“맞다. 출항할 당시 안개가 낀 것으로 나왔는데 출항이 늦을 경우 시간을 단축하라고 독려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화물이 늦게 도착하면 하주에게 제때 돈을 받을 수 없기도 하거니와 수학여행을 맡은 관광회사 또한 학생들의 관광스케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름길 항로를 택하고 과속을 했다. 그렇게 운항하다 보니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름길로 가다 보니 섬과 섬 사이 위험한 저수심 지대를 통과했다. 실제 이번에 구출된 승객의 증언에 따르면 군산 앞바다를 지나는 시점(밤 11시30분~자정)에 선박에서 경미한 손상이 있었다고 했다. 복수의 증언자에 따르면 ‘찌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배가 기우는 것을 느꼈다고 하고,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캔 맥주가 갑판 위로 굴렀다고도 했다. 어떤 이는 15도 정도 기울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 그럼 출발 약 2시간 후부터 사고원인이 감지됐다는 말인가.
“바텀 터치(Bottom Touch·배바닥 스침) 또는 록 크래싱(Rock Crashing)이 있을 수 있다. 선박좌초의 경우 그라운딩(Grounding)으로 부르지만 경미한 바텀 터치로 여객선 선미좌현 하부가 찢어져 손상이 발생한 게 아닌가 추정한다. 두 사람 이상의 증언으로 볼 때 배가 기울었다는 이야기에 근거해 추론한다. 배가 15도나 기울 정도면 해수가 유입됐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안정성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다.”
- 해수가 유입됐다면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세월호가 인천항에 계류했을 당시 우현계류를 했다. 차량화물을 우현램프(Lamp·차량을 지탱하는 통행로와 유압장치를 비롯한 주변의 일체구조물)로 탑재했는데 좌측은 닫힌 상태였다. 세월호가 좌현접안을 했으면 좌현램프를 내리고 차량을 싣고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램프가 갖고 있는 커다란 구멍의 하부와 수면의 높이가 1.5m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램프의 뚫려있는 부분은 완전수밀(Perfect Tight)이 아니다. 완전수밀(물이 새는 것을 방지함)이 되려면 거대한 고무패킹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설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물을 과적하고 난 뒤 배가 15도 정도 기울었다면 선박은 파도, 바람 등에 흔들리며 10~20도 사이를 흔들거리며 항해를 하게 되는데 이때 해수가 선박 안으로 유입될 수 있다. 그 결과 자유수면효과(Free Surface Effect)로 유입된 해수가 좌우앞뒤로 돌아다니며 가하는 운동에너지에 의해 선체가 불안정해진다.”
- 세월호 침몰에 앞서 초기대응에 문제가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각종 인터넷커뮤니티사이트에 따르면 배가 침몰하던 16일 오전 7시20분, KBS 자막에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글을 봤다는 사람이 꽤 많다. 또 진도의 어민이 세월호가 정지한 상태로 있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당시 선박을 운항하던 사람은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실을 해경에 통보해야 한다. 이때 선사가 해경의 구조요청을 취소하고 선박으로 하여금 항해할 것을 요구했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 선사 입장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구조해야 한다면 그 많은 승객과 화물의 경비를 어떻게 환불해야 할 것이며, 또 어떻게 제주도로 이송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엄청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선사 측이 선장과 1등 항해사에게 계속 항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을 물었을 것이다. 만약 ‘제주까지 가보라’는 요구가 있었다면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도 중대한 상황이니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 그렇다면 사람보다 선박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불안정한 상태에서 속도를 높이다가 전복됐다면 이미 복원력을 상실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 만약 제주해협에서 사고가 났다면 생존자를 구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곳은 섬과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수심도 100m나 된다.”
- 선박의 침몰이 급선회나 선장의 과실로 침몰됐다고 해선 안 된다는 말인가.
“해경 역시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수사를 받을 대상이 침몰수사를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볼 땐 선사의 책임이 가장 크고 다음은 선장, 1등 항해사 순이다. 왜냐하면 선장은 선박에 대한 총괄책임자이고, 1등 항해사는 운항책임을 비롯해 화물적재, 배의 안정성 등을 관장한다. 2등 항해사는 항해만 책임지고, 3등 항해사는 보좌하는 임무다. 선장이 조타실에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 경력이 6개월밖에 안 된 3등 항해사가 명량해협을 제외하고 물살이 가장 세다는 맹골수도 해역에서 운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협수로와 저수심, 조류가 센 곳을 지나면서 이제 몇 달 되지도 않은 3등 항해사에게 항해를 맡겼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이는 갓 운전면허를 딴 초보운전자로 하여금 야간에 시내도로를 질주하도록 자동차열쇠를 준 것과 같다. 3등 항해사가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선장으로선 억울하겠지만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 사고 후 구조가 원시적이었다는 말도 있다.
“비행기든, 차든, 기차든, 지하철이든, 배든 언제 어디서나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가장 소중한 것은 인명구조다. 그건 삼척동자도 안다. 철저히 사고원인을 밝히고, 있는 그대로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뒷북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축소는 물론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런 것이 계속 이어졌다. 서해에서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구조구난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했어야 했다.”
- 승객을 구조하는 방식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침몰지역 수심이 40m도 안 될뿐더러 섬이 다 보이는 지역이다. 보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 헬기가 선박에 접근해 바스켓으로 사람을 구조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구조전문요원을 헬기에 싣고 배 위에 내리게 한 다음 도끼로 창문을 깬 다음 로프나 와이어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했어야 했다. 또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을 바다로 내보냈어야 했다. 구조화물선을 비롯해 어선 등이 이들을 구조하러 왔지 않은가. 아니면 와이어로 배를 당기든지, 저수심대로 배를 밀든지, 로프로 걸어서 끌고 가든지, 도대체 구조구난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다. 초기에 이러한 것을 할 수 있는 데가 UDT나 SSU 등 잘 훈련된 해군인데 왜 해경이 주도했나. 또 가장 잘 훈련된 잠수부를 투입해야 하는데 청해진 회사와 업무계약을 한 언딘에 구조 전체를 맡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 현재 천안함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에 재판이 있었다. 천안함과 관련한 23회째 재판이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재판이 아직 1심에서 진행 중이다. 80명 가까운 증인 가운데 50명이 증언했고, 30명 정도가 더 증인석에 설 것이다. 내년이 돼야 1심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 참조 : 영남일보 박진관 기자님(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