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니>가 갔단다!
고교동창 자전거 친구 간진이가 2019년2월16일 먼저 갔단다. 부고(訃告) 받고 빈소 가서 검은 테 두른 영정과 미망인도 보고 왔으니 간진이는 저승으로 간 게 분명한데 “갔단다”라니?
지금이라도 자전거 함께 타며, “명수야! 이길 아니잖아, 저리로 가야돼!” 하고 툭 튀어나와 우격다짐을 놓을 것만 같아서 그렇다.
지난해 초부터 라이딩에 못나와 왜 그런가? 했더니 발병사실을 알려왔었고, 그 후로도 타고 난 천하장사 같은 체력으로 투병했지만, 병이 깊을 대로 깊어갔고, 죽기 8일전 바이콜릭스 대장 창인이와 힘든 통화를 겨우 하면서, “하느님을 보았다”고 했단다, 그래서 떠나보낼 날이 오늘내일이겠거니 했었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으니 그렇다. 고교동창 자전거동호회 바이콜릭스 대원으로 10년 넘는 세월을 거의 매주 함께 자전거 타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던 친구가 갔으니 그런가 보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니 간진이에 대한 상념(想念)이 이것저것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간진이는 다양한 성격의 만화 같은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지극한 유아독존 자기중심적이어서 공중도덕과 질서는 아예 무시하고 친구들의 걱정도 들은 채 않았지만, 점점 교정해 나가는 발전을 보여주었다.
우락부락하고 성격이 괄괄해 걸핏하면 시비 걸고 싸우면서도 정이 깊었고, 친구들 경조사 참여도 들쭉날쭉, 경제적 이득을 밝히며 인색하기도 하면서도 상황과 사람에 따라선 통 크게 베풀기도 했다. 술 먹고 속 썩이고 난폭해 아내한테 불신을 사기도 한다고 했었지만 아내 사랑이 지극했다. 요리와 장보기도 자기가 할 정도로 가정적이기도 했다.
자전거이든 요리든 가정경제이든 관련 지식을 알면 확실하게 알았다. 평상시 자전거로 장보기를 할 정도로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 돼 있어, 스카이천과 함께 손 놓고 타는 것도 자연스럽고 그 실력은 한 수 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솔직 담백한 게 최고의 미덕이었다고 할 것이다.
내게 간진이는 고교동창이지만 재학시절엔 알지도 못했다, 노는 물이 엄청 달랐으니 그랬을 것이다. 졸업 후 2006년이었던가? 고교동창 산악회의 괴산 낙영산 등산에 따라나섰다가 본 게 처음이다. 공림사로 하산하면서 같이 걸어내려 오는데, 첫 인상은 엄청난 배불뚝이 사장님이고 운동하곤 담을 쌓았을 듯싶었다. 그 체격에 홍금보처럼 유연하고 힘이 넘쳤다고 봐준다면, <수호전>의 <노지심>이가 딱 맞는 이미지였다. 하여튼 도저히 친근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06년9월 고교동창 자전거동호회 바이콜릭스를 결성하니 2007년 말 거기에 나타났다. 이후 간진이와 동호회 활동을 함께 하면서 보고 느꼈던 걸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중언부언 늘어놔 보겠다.
자전거 타면서 그 배불뚝이가 엄청 줄어들었었다. 남들에겐 결코 호감 가지 않는 사나운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바이콜 친구들에겐, 수시로 불감당(不堪當)이긴 하지만, 정 많은 친구였다.
매사 자기감정에 솔직한 친구였다. 자전거 닉네임을 베어킴이라고 지어준 게 나다. 곰처럼 힘도 좋고 지혜로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전거 타는 힘도 좋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다툰다. 대장과 다투고는 한 동안 라이딩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우리 라이딩 후기를 다 읽어보고 있었다,
평소 지랄 지랄하다가도 내가 성질내고 뭐라 그러면서 다독이면 금새 가라앉기도 했다, 그래서 몇 번 전화했더니 슬그머니 다시 나타났다. 별로 겸연쩍어 하지도 않고 언제 그랬었냐는듯 나오긴 했는데, 자기가 점심 낼 생각으로 작정한 동두천까지 라이딩 하자는데 일동이 그냥 의정부에서 라이딩을 멈추고 점심을 먹자 또 혼자 내빼 버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아독존 안하무인이었다. 공중도덕 같은 건 완전무시다. 그렇게 말려도 소주를 맥주 컵으로 단숨에 퍼붓는다, 점점 나이 들어가자 이내 취하고 취한 상태에서 내리막을 달리다 자전거와 함께 나딩굴어 갈비뼈가 박살나기도 했다. 그래도 곧 회복하는 여포 같은 친구였다. 규정상 자전거 휴대가 불허된 노선의 전철 승무원과도 막무가내로 다툰다. 친구들이 사과하고 겨우 예외적인 탑승 승낙을 받았는데, 일 저질러 놓은 저는 그 사이 혼자 전철타고 내빼버렸다. 매번 라이딩이 종료되는 전철역에서 작별 인사도 없이 무정하게 사라진다. 그러니 초장부터 바이콜의 유니폼을 챙길 생각도 없고 한동안은 헬매도 안 쓰고 다녔다. 라이딩 대오를 벗어나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혼자 길을 횡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안전을 염려하는 대장 창인이의 속을 엄청 썩였었다.
그런데 그런 자기를 스스로도 잘 안다, 그래서 자기는 “개잡놈”이라고 했다. 일생을 건축업으로 돈 벌면서 이 방법 저 방법 가리지 않고 험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물건 하나 사도 꼬치꼬치 따져 싸게 산다. 그래서 이기적이거나 이악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자기보다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더 가까이 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또 그래선지 바이콜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라이딩하며 친구들이 먹을 음료수와 간식을 배낭이 터져라 무겁게 잔뜩 짊어지고 나타나 내놓는다, 직접 정성스럽게 삶아오는 달걀과 고구마를 비롯해, 라이딩에 내놓기 위해 우정 코스트코로 가서 사와 내놓는 각종 외제 초컬릿, 스낵, 비스킷. 햄과 치즈 등등의 간식은 늘 양도 많고 다양했다.
웃기는 구석도 많았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애니박 오벨로 써니영 예지니 등 친구 부인들의 자전거 닉네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끝까지 분간 못해 부인들의 이름을 바꿔 불러 학천이 부인이 종국이 부인이 되기도 하고, 종국이 부인이 명수 부인이 되기도 해 배꼽을 잡게 한다, 그래서 “아 미안해!” 하지만 다음에도 마찬가지고 그런 실수에 대해 별로 괘념하는 눈치는 전혀 없다.
바이콜의 여성대원들은 아직도 간진이의 그런 정성스러운 간식 봉사에 감탄하고, 어처구니없는 유머에 쓴웃음을 지으며 울퉁불퉁 거칠게 선 굵은 그의 정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는 인색하다 할지 모르지만, 바이콜 친구들에겐 참 많이 베풀었다, 비가 와 쉬던 날 태릉에서 장어도 사고, 집 근처에서 생선구이도 샀으며, 김포에 새로 마련한 빌딩1층에서 청요리도 대접했다,
현재 사는 월계동에서 김포 빌딩으로 이사해 노년을 보낼 것이라고 꿈꿨었는데 그 꿈도 이루지 못하고 갔다, 그래서 다시 반복해 기억나는 모습들이 이리 많은 모양이다.
고기리 라이딩 때 대왕골펜션에서 낯 술 마시고 내려오다 가드레일 들이박고 골창에 꼬라박힌 일. 아라운하 다녀오다 전철 승무원과 싸우던 일, 암 투병 중에도 무수천 라이딩에 나와 굳이 점심을 사던 일, 마지막 동행 우이천 라이딩에서도 힘에 붙인 가운데 잔뜩 간식을 질머지고 와 나누어주던 모습, 김포 빌딩을 가 보기위해 계양천 수로라이딩을 해 청요리로 우릴 대접하며 몹시 즐거워하던 모습아 자꾸만 겹쳐진다.
부고를 받던 날인 16일은 아들이 여자친구를 처음 집으로 데려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약속돼, 못 오고 다음날 17일 저녁에야 빈소를 찾았었다.
그날 낯에는 태릉동기생 자전거동호회 라이딩 코스를 안내했었는데, 코스 중의 고기리 유원지 동막천 최상류 대왕골펜션은 2008년5월25일 바이콜이 라이딩해 갔었고, 2017년8월13일 학처니와 함께 광교산 바라재를 넘어 산길 라이딩을 했었을 때도 들렸던 곳이다, 그리고 그 두 라이딩때 간진이도 함께 했었는데 앞서 말했던 에피소드처럼 술먹고 달리다 골창에 빠졌던 곳이 그 길이고, 바라재 넘어 바라산휴양림에서 산을 넘어 오며 엄청 힘들어 했던 곳이 또한 그 길이다, 그 길을 가자니 이미 저승행을 하고 있을 간진이의 생각이 꾸역꾸역 밀려든다, 새벽 성당미사에서도 간절하게 그 명복을 빌었지만, 가슴 속에 종일 안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빈소를 찾던 날 영정 앞에, 그 좋아하던 맥주컵에 따른 소주를 한잔 올리고, 나는 작은 소주컵에 따라 부디쳐 건배하고, 다른 조문객에게 볼성사나울까봐 도로 가져와, 친구들이 더 찾지 않는 객방의 빈 식탁에 혼자 앉아 간진이의 술잔을 마주보며 계속 대작하고 돌아왔다.
따지고 보면, 고교 졸업 직후부터 원칙과 규율 속에 살아온 나와 천방지축 자유로운 영혼의 간진이와는 영 맞지 않는 친구였을 것인데, 이리 떠올릴 일이 많은 건지, 아마 그게 좋든 나쁘든 인간냄새 푹푹 풍기는 간진이의 매력이었던 모양이다. 서로 다룸은 서로 배울 것이 많아서일까?
간진아! 잘 가시게나! 평안히 쉬시게나! 나라도, 떠나간 너를 이리도 생각하고 생각하니, 그것만이라도, 먼저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로부터 떠나면서 네가 가질 미련과 애석함을 달래는 위로로 삼았으면 좋겠다.
2018년 저녁 쉐도우수 일고 김명수가
바이콜의 베어킴 간진
앵커를 보며 잉아고개 넘던 베어킴
바라산휴양림 임도에서의 베어킴
마지막 동행 우이천 라이딩에서의 베어킴


첫댓글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 지는 글일세. 나를 위한 글은 아니지만, 명수 정말 고맙네. 이렇게 감동적인 글은 근래에 처음 대하네.
형기의 글이 늘, 자신이 생각하고 겪는 체험적이고 사실적인 것이어서 감동적인데, 요즘 대하기가 힘들었네. 다시 자주 대했으면 좋겠네.
간진이의 문상을 하지못하고 이 글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되 살아나고 같이했던 시간이 즐겁고 오래 간직할 좋은 시간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먼저 간 친구의 명복을 빌며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했구나하는 미안한 마음을 떠난 친구에게 보내고싶다.모든 기억을 토해낸 명수에게도 천재적인 기억력에 감탄하며 감사! 꾸 뻑!
천재는 무슨, 워낙 간진이의 개성이 독특해 추억거리가 많을 뿐인데, 그리 봐주니 나도 감사, 남은 친구들이라도 후회하지 않게 되도록 더 자주 만나야 할 텐데, 내 사정이 여의치 못하니 유구무언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