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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루카12,39-48>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오늘 복음 말씀은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불충실한 종은 “’주인이 늦게 오는 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루카12,45-46) 라고 하십니다.
즉 관리자로서 형제들을 책임진 이들에게 내리는 권고로, 집사는 중요한 임무를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1코린4,1-2 참조).
이러한 불충한 이들을 주님께서는 ‘처단할 것’ 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처단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둘로 잘라 버리다’를 뜻합니다. 이는 옛날 페르시아의 극형 방식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다니13,55.59 등). 더러는 쿰란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전문 용어로서 파문(破門)이나 격리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이런 강력한 언어를 쓰시는 것은 중요한 임무를 맡은 관리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완벽하게 무엇을 하고자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매여 있게 되면 불충한 종이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과 세상에 대해 분노에 사로잡히기 때문이지요.
그 분노는 다름 아닌 칠죄종입니다.
내 힘으로 완벽하려고 할 때 분노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완벽함을 자신의 힘으로 달성하려하는 교만을 예수성심께 비워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느님께 비워내기 보다는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댑니다.
결국 내 자신이 완벽함에 사로잡히거나 그 결과로 분노하거나 절망빠지는 것은 악이 좋아라 하는 것입니다.
완벽함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충실한 종이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분노의 에너지는 힘이기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바뀔 뿐입니다.
분노의 에너지가 이러한 기쁨의 에너지로 바뀌려면,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중요한 것은 “영spirit”이 “하느님의 영Spirit”을 향하도록, 즉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도록 정화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1.말씀 묵상
1)기도
(1)성서를 2번~10번 읽습니다.
(2)눈을 감고 영화를 보듯이 내용을 바라보고, 성령께 의탁하여 등장인물 중에 한 인물이 되어 예수님을 만납니다.
(3)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4)30초~1분 동안, 침묵으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2)정화
(1)기도 중에 만난 예수님과 생활 안에서 함께 합니다.
2.단순 기도
1)기억
(1)정화
“영spirit-혼soul”의 기능인 지성, 기억, 의지가 있습니다.
내 지성이 십자가 상 아래에 계신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께 대한 믿음을 갖고,
내 기억을 마음(영spirit)으로 내려놓고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과 일치하려는 소망을 갖고,
내 의지로 모든 기억들을 성모성심을 통해 예수성심께 봉헌하면 됩니다.
(2)기도
내 일생에 대한 기억이 한 번 봉헌될 때마다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에 30초~1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이러한 과정이 10번 이상 반복되면, 기억이 나도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2)몸
(1)정화
내 지성이 십자가 상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통한 예수성심께 대한 믿음으로,
내 몸(에 대한 기억)을 마음(영spirit)으로 내려놓고 십자가 상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통한 예수성심과 일치하려는 소망을 갖고,
내 의지로 내 몸(에 대한 기억)을 십자가상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통해 예수성심께 봉헌하면 됩니다.
(2)기도
내 몸이 한 번 봉헌될 때마다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에 30초~1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은 누구신지?”를 세 번 묻습니다.
침묵 중에 올라오는 것들을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께 봉헌합니다.
내 기억이 다 봉헌되고 몸(에 대한 기억) 마저도 봉헌되면,
점차적으로 “영spirit-혼soul”의 기능인 “지성, 기억, 의지”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점차 변화되면서 “‘나’라는 영spirit”이 “하느님의 영Spirit”을 향하게 됩니다.
또한 영성체를 통해 내 살과 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어 “‘나’라는 영spirit”이 “하느님의 영Spirit”과 마음으로 하나가 됩니다.
내 영이 하느님의 영과 일치를 이루어,
내 머리가 예수님의 머리,
내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
내 팔이 예수님의 팔,
내 발이 예수님의 발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 저절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단계이니 만큼,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luke12,39-48>
39 Be sure of this: if the master of the house had known the hour when the thief was coming, he would not have let his house be broken into.
40 You also must be prepared, for at an hour you do not expect, the Son of Man will come."
41 Then Peter said, "Lord, is this parable meant for us or for everyone?"
42 And the Lord replied, "Who, then, is the faithful and prudent steward whom the master will put in charge of his servants to distribute (the) food allowance at the proper time?
43 Blessed is that servant whom his master on arrival finds doing so.
44 Truly, I say to you, he will put him in charge of all his property.
45 But if that servant says to himself, 'My master is delayed in coming,' and begins to beat the menservants and the maidservants, to eat and drink and get drunk,
46 then that servant's master will come on an unexpected day and at an unknown hour and will punish him severely and assign him a place with the unfaithful.
47 That servant who knew his master's will but did not make preparations nor act in accord with his will shall be beaten severely;
48 and the servant who was ignorant of his master's will but acted in a way deserving of a severe beating shall be beaten only lightly. Much will be required of the person entrusted with much, and still more will be demanded of the person entrusted with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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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작업 기억을 가능케 하는 측두엽의 정보 창고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기까지 잠시 판단 과정에 동원된 기억을 작업 기억이라 부른다. 이 작업을 지시한 건 의식적인 전두엽이고, 판단에 필요한 모든 정보, 지식, 기억등은 잠재의식의 창고인 측두엽에서 나온 것이다.
좀 더 학술적인 분류를 한다면 잠재의식은 쉽게 의식화될 수 있는 것들이고, 무의식은 상당한 노력을 해야 의식화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의 뇌 현상을 설명할 땐 잠재의식만으로 충분하다.
잠재의식, 잠재 능력, 나도 모르게, 절로….등의 표현이 이젠 이상처럼 쓰이게 된 것도, 그간 많은 학자의 연구 보고도 그렇고 우리/ 일상 중에 누구나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생각이나 행동은 잠재의식의 이해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만큼 의식은 잠재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의식 없이는 의식이 성립되지도 않는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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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양심에 따라 한 행동이 그릇된 경우 하느님 앞에 죄가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검토하고 확실하게 판단했다면, 설령 그릇된 일을 행할 위험이 있을지라도 무조건 양심의 소리를 따라야 합니다.[1790-1794, 1801-1802]
도덕과 관련한 모든 사항은 논리적으로 결국은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결코 세속적인 이유들에 근거를 두지 않습니다.(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년), 독일의 철학자, 사회학자)
하느님은 양심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 세상에 초래된 불행의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따랐다고 잘못 생각한 것에(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48)/
근거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고문하며 배반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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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그릇된 판단
->1790 인간은 언제나 양심의 확실한 판단에 따라야 한다. 고의로 이런 판단을 거슬러 행동한다면 이것은 자신을 단죄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양심이, 하고자 하는 행위나 이미 행한 행위에 대해서 알지도 깨닫지도 못할 수 있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1791 이러한 무지는 많은 경우에 자신의 책임이다. “사람이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데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죄의 습관으로 양심이 흐려져 거의 다 어두워졌을 때에”(사목 헌장, 16항)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경우에 자신이 저지르는 악에 대해 책임이 있다.
->1792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무지, 다른 이들이 주는 나쁜 표양, 감정에 사로잡힘, 양심의 자율성을 잘못 이해한 주장, 교회의 권위와 가르침에 대한 거부, 회개와 사랑의 결핍 등은 도덕적 행위에 대한 판단을 빗나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1793 만일-이와 반대로-무지가 극복될 수 없는 것이(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72)/
거나, 그릇된 판단에 대해 도덕적 주체의 책임이 없는 경우라면 개인이 저지른 악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악이고, 부족함이며, 무질서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도덕적 양심을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1794 선하고 순수한 양심은 참된 신앙으로 밝아진다. 왜냐하면 사랑은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과 순수한 믿음에서”(1티모1,5)(1티모3,9; 2티모1,3; 1베드3,21; 사도24,16 참조) 동시에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바른 양심이 우세하면 개인이나 집단이 무분별한 방종에서 더욱 멀어지고 객관적 도덕 기준에 부합하도록 더욱 노력한다.(사목 헌장, 16항)(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73)/
->1801 도덕적 양심이 무지에 머물 수도 있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이러한 무지와 그릇된 판단이 언제나 죄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1802 하느님 말씀은 우리 길의 빛이다. 신앙과 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이를 실천해야 한다. 양심은 이처럼 형성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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